[취재파일] 방사능 식자재 NO, 태극전사 '식사 전쟁'

이것이 도쿄올림픽 ⑦

권종오 기자 kjo@sbs.co.kr

작성 2020.02.20 09:23 수정 2020.02.25 17: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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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밥이 보약'이고 '밥심'에서 메달이 나온다는 말까지 하고 있습니다. 2013년 IOC 총회에서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일본 도쿄가 선정됐을 때 대한체육회는 내심 반겼습니다. 일본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식자재 조달도 쉽고, 우리 선수들이 일식에도 잘 적응할 것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헛된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 의혹이 있는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올림픽 선수촌 메뉴에 사용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일본에는 후쿠시마산 식자재 외에도 좋은 식자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베 일본 총리는 굳이 방사능 우려가 있는 후쿠시마산 식자재 사용을 강행하겠다고 나서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저는 그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카야 마사 조직위 대변인의 답변은 불행히도 저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그의 대답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유치에 나설 때부터 후쿠시마 지역의 부흥을 모토로 내걸었다.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사용하는 것은 피해 지역인 후쿠시마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하는 것이다. 또 FAO(국제농업기구)와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2018년에 엄격한 국제기준으로 공동 조사를 했는데 방사능 검사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2013년 이후 방사능 기준치를 초과한 식자재는 단 하나도 없다. 따라서 후쿠시마산 식자재 사용을 취소할 계획은 전혀 없다."

다카야 마사 대변인의 말은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의 공식 입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하지만 도쿄 조직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신뢰하기에는 여러 의문점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일본의 권위 있는 의학자와 병리학자 8명은 2018년 후쿠시마현 니혼마츠시의 방사능 오염 실태를 조사한 논문을 국제 학술 저널에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17년 니혼마츠 시에서 측정된 버섯 가운데 무려 40.7%가 발암물질인 세슘 137의 기준치인 100 베크렐을 초과했습니다.

결국 일본 학자들의 연구 조사에 착오가 있었거나 아니면 일본 정부나 도쿄 조직위가 불리한 자료를 일부러 축소했거나 은폐하고 있는 것,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측이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어찌 됐든 일본은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선수촌 메뉴에 올릴 것이 확실합니다. 이를 제지할 유일한 힘을 갖고 있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년 가까이 수수방관하며 사실상 묵인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206개국 선수단은 대부분 선수촌 내 식당에서 식사 문제를 해결합니다. 문제는 어느 메뉴에 후쿠시마산 식자재가 들어있는 지를 알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선수촌 내 식당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안 먹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각국 선수들이 올림픽에 입촌하면 훈련과 경기가 반복되는데 선수촌 내 식당에서 식사하는 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대한체육회는 후쿠시마산 식자재가 이슈로 떠오른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선수촌 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우리가 직접 만든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헨나 호텔 외경대한체육회는 3차례 답사 끝에 선수촌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헨나 호텔에 급식 지원센터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행정 구역으로는 치바현 우라야스 시입니다. 대회 기간 호텔의 주방과 식당을 통째로 빌리는데 총비용은 17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선수촌에서 더 가깝고 식당과 주방이 더 큰 호텔도 있었지만 비용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이곳으로 확정했습니다.
헨나 호텔 식당헨나 호텔 식당은 동시에 약 120명을 수용할 수 있어 한국선수단이 식사를 하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이곳에 파견된 14명의 조리사가 호텔에 상시 머무르며 선수들의 주문에 맞춰 매일 한식과 특식을 제공합니다. 도시락은 하루 평균 200개를 만드는데 방사능 우려가 있는 일본산 식자재는 철저히 배제할 방침입니다. 식자재는 가능한 한국에서 조달하고 통관이 여의치 않은 품목은 헨나 호텔 인근에 인근 마트와 별도로 계약한 업체에서 마련할 계획입니다.
헨나 호텔 인근 마트걱정거리는 크게 2가지입니다. 도쿄올림픽은 7월 24일에 개막해 8월 9일에 폐막합니다. 가장 더울 때 올림픽이 열리는 것입니다. 기온이 섭씨 35도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돼 선수촌으로 도시락을 배달할 때 음식이 상할 가능성이 큽니다. 만의 하나 식중독이 발생하면 4년 동안 굵은 땀을 흘린 선수들은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주저앉게 될 수도 있습니다.
헨나 호텔 주방헨나 호텔 주방또 하나 어려운 점은 헨나 호텔의 주방의 규모가 8평으로 턱없이 작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오븐, 식기세척기, 제빙기는 갖춰져 있고 부족한 냉장고와 냉동실은 추가 구입이 가능하지만 주방이 워낙 협소해 조리사가 6명 이상 작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한체육회 조리팀은 궁여지책으로 호텔 주차장에 간이 주방을 설치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이지만 찜통더위에 가스 불을 켜고 요리를 할 수밖에 없어 조리사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으로 전망됩니다.

일본이 후쿠시마산 식자재 사용을 굳이 고집하는 바람에 우리 국민의 세금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가고 우리 조리사들이 아주 힘든 여건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이 먹는 문제로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취재파일] 방사능 식자재 NO, 태극전사 '식사 전쟁'하지만 올림픽은 이제 5개월밖에 남지 않았고 우리 선수들은 어떤 방법을 쓰든 잘 먹어야만 합니다. 선수촌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고 해외 올림픽 경험이 풍부한 신승철 검식사는 "태극전사들의 힘을 북돋울 수 있는 다양한 보양식은 물론 설렁탕, 닭고기조림, 쇠고기, 제육볶음, 전복 요리, 김치찌개, 떡볶이, 김밥 등 선수들이 원하는 메뉴를 최단 시간 안에 만들어 제공할 것이다. 무더위 때문에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겠다"며 "우리가 준비한 음식을 선수들이 맛있게 먹고 금메달을 따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후쿠시마산 식자재가 포함된 선수촌 음식을 먹지 않으려면 헨나 호텔에 와서 먹든지 아니면 대한체육회 직원들이 선수촌으로 도시락을 배달해야 합니다. 하루 평균 200개 정도의 도시락을 만들어 신속하게 배달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폭염에다 선수촌 통관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메달을 따기 위해 구슬땀을 흘려온 태극전사들과 대한체육회 소속 조리사들은 메달 획득만큼이나 힘든 '식사 전쟁'까지 치러야 할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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