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검찰 고위직 인사에 비친 정권의 불안감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작성 2020.01.14 11:16 수정 2020.01.16 16: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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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전례 없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자신 있거나, 불안하거나. 자신감의 다른 이름은 여유, 불안감의 다른 이름은 조급함이다. 자신감은 비판에 관대하지만, 불안감은 비판에 적대적이다. 최근 단행된 검찰 고위직 인사와 청와대의 대표 얼굴들이 전면에 나서 검찰 수사 비판에 열을 올리는 전에 없는 모습은 자신감 때문일까, 불안감 때문일까.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현 정부를 겨냥한 수사팀 지휘부와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 참모들의 교체 가능성은 일찍이 제기됐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페르소나라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와 현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감찰 무마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 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국정원 댓글 사건을 비판하며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현 정부에게 있어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해 온 박찬호 전 대검 공공수사부장의 교체는 상수로 두는 관측도 많았다.

근거는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 단행된 검찰 고위직 및 중간 간부 인사 결과다. 당시 현 정권을 겨냥했던 수사팀('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정권 실세를 겨냥했던 수사팀('손혜원 의원' 사건) 지휘부는 줄줄이 좌천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청와대와 여당을 향한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당부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 나왔던 인사로,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확실히 보여준 인사였다.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반기를 들었던 문무일 前 총장의 측근들도 좌천성 인사를 받았던 만큼, 윤 총장 측근 참모의 교체 가능성도 함께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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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인사와 청와대의 행보는 자신감 때문일까, 불안감 때문일까.

그래도 '설마' 하는 예상이 함께 제기됐던 것은 수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손혜원 의원 사건'은 인사 이전에 이미 수사가 종결됐지만, '감찰 무마 의혹 사건'과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한창 수사가 진행 중이다. 때문에 최소한 수사를 마무리할 때까지는 해당 수사팀 지휘부 교체가 보류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진행 중안 사건 수사팀장) 갈아 치우기는 명백한 수사 외압이자 수사 방해이며 검찰에게 더 이상 수사를 하지 말고, 적당히 덮으라고 강요하고 있는 꼴(2013. 10. 21. 김한길 민주당 대표, 민주당 최고위 회의)"이며, "수사 책임자를 내 친 상황에서 납득할 수 있는 수사 결과가 나오겠냐?(2013.11.19 추미애 의원, 국회대정부 질문)"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설마'가 아닌 '역시나' 이었다. '감찰 무마 의혹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지휘부 교체와 함께 윤석열 총장 측근 참모들도 모두 교체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균형 인사'라고 자평했다. 불과 6개월 전 같은 인사권자에 의해 단행된 인사는 '불균형 인사'이었음을 자인하는 셈이었다.
▲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 '윤석열 라인 인사'에 대한 비판에 귀 닫았던 정부

6개월 전, 대검 참모들을 이른바 '윤석열 라인', 그리고 소위 '특수통' 위주로 채우는 인사에 대해 여당에서부터 우려가 나왔다. 대검에서 윤 총장과 다른 목소리가 실종될 수 있다는 우려, 검찰 조직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였다. ([취재파일] 윤석열 호 첫 검찰 인사…여러 뒷말 나오는 까닭은) 하지만, 인사권자는 공감하지 않았고, 인사 결과는 우리가 목격한 그대로였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조직에 활력을 부여하고, 업무와 전문성을 중심으로 (인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회적 요청을 반영한 인사'가 불과 6개월 만에 '불균형 인사'로 평가가 바뀐 이유가 뭘까. 특히 평가가 바뀐 인사를 전례 없는 잡음까지 발생시키면서 진행한 이유는 뭘까. 잡음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까, 잡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했어야만 한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인사 과정에서 여유와 절차가 생략되고, 조급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자신감보다는 불안감 때문인 듯하다.

물론, 관행은 원칙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원칙이 없는 상황에서 관행이 지속된다면 관행은 원칙이 된다. 검찰 고위직 인사와 관련해 검찰은 관행을 주장하고 있다. 검찰 고위직 인사를 할 경우 법무부가 먼저 인사안을 검찰에 보내고, 전체적인 인사 구도와 관련해 인사 대상자들의 평가 자료를 검찰총장에게 보낸 후, 제 3의 장소에서 장관과 검찰총장이 인사와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는데 이번에는 이런 관행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과 6개월 전 인사 때는 지켜졌던 관행이 이번에 지켜지지 않은 건 뭔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관행은 관행일 뿐이라는 입장인 듯하다. 청와대와 여권은 "검사의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며 검찰의 '관행 중시'에 응답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6개월 전 인사 때는 왜 검찰이 말하는 형태대로 인사 절차가 이뤄졌었는지, 그때와 지금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저의 명을 거역했다"는 사극에서나 볼 법한 장관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여권의 반응은 원론적으로 옳다. 하지만 과거, 현재의 여권이 쏟아냈던 말들에 비춰보면 궁색하다. 지금과 같은 인사 관련 논란을 제거하기 위해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4년 1월 '법무부 장관은 검사의 보직과 관련하여서는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대통령에게 제청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당시 법안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 '의견을 들어'라는 문구는 최근 추미애 장관이 말한 '청취'가 아니라 '협의'에 훨씬 가깝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 '친정부 인사'를 내세운 '균형 인사'?

'균형 인사'라고 자평하는 검찰 고위직 인사 결과에서도 정권의 불안감을 짐작하게 하는 또 다른 단초가 확인된다.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장엔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 후배로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한 이성윤 전 검찰국장이 기용됐다.

이성윤 검사장은 검찰 내 대표적인 '친문 인사'로 분류되는데, 정권 입장에선 '우리 편'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를 마치고,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진행 중이던 전임 중앙지검장 대신 '친문 인사'로 '균형 인사'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강조한 이 지검장의 취임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권의 불안감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대목은 검찰 수사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이다. 일개 외청의 수사에 대해 권력의 정점이라는 청와대가 일일이 논평을 내며 비판하는 것은 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최고 권부 청와대의 수사 관련 언급은 검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과거 청와대의 검찰 수사 비판에 대해서 "대통령이 자신이 수반인 행정부의 일부인 검찰을 부정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지휘라인인 검찰총장, 법무장관, 국무총리 모두 사임해야 하지 않나"(2016.11.20 문재인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 페이스북)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엔 청와대에서 검찰을 향한 날 선 비판이 연일 나오고 있다. '보여 주기식 수사', '의도가 궁금', '무리한 수사', '압수수색 유감' 등 사용하는 언어도 전에 없이 거칠다. 최근 청와대 압수수색과 관련해선, 청와대의 설명대로 라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준 법원에 향했어야 할 비판의 화살을 검찰에 겨누고 있다. 비판의 과녁마저 잘못 겨눌 정도로 조급한 모습이다.

● 인사권자가 임명한 검찰총장에 대한 청와대의 비판…왜?

불안감의 배경은 무엇일까. 9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배경 중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4+1' 협의체를 통해 검찰 개혁 법안과 선거법 등을 개정한 여당이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한계도 실감했을 테다.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국정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시기적으로 레임덕이 예상되는 정권 후반기에 과반 의석 혹은 다수당 확보에 실패한다면 여당으로서는 여러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검찰이 현 정권을 계속 겨냥한다면, 그 결과 수사를 통해 현 정부의 치부가 혹시 드러나기라도 한다면 정부로서는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 결과는 총선에 임박해서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혹시나 현 정부에 불리한 결과가 나온다면 총선에 미칠 파급력은 가늠하기 힘들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이 불안감의 배경 아닐까.

검찰 고위직 간부 인사로 정권이 느끼는 불안감의 크기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힘들다. 그 정도를 짐작할 뿐이다. 고위직 간부는 기업으로 치면 임원 인사인 만큼, 시기나 폭은 인사권자의 재량의 범위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평사원이라고 할 수 있는 차장 및 부장, 평검사의 인사는 다른 문제다. 수사의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최소 1년 이상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했던 게 현 정부였다. 전 정권을 겨냥한 적폐 수사 때는 수사와 공소 유지의 연속성 담보를 위해 핵심 보직자들을 전례 없이 유임시켰던 것도 현 정부였다. 조만간 단행될 차․부장검사 인사는 어떻게 될까. 그 결과를 보면 현 정권의 불안감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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