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명 지휘자 이반 피셔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지휘봉 대신 마이크를 들었다. 통역자도 대동했다.
"우리는 부다페스트에서 왔습니다. 최근 참담한 사고가 있었던 곳입니다."
차분하면서도 또렷한 어조로 이어진 이반 피셔의 추모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모든 헝가리 사람들과 오케스트라 단원들, 그리고 저는,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주오
저 바다에 바람 불면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파도 소리 물새 소리에 눈물 흘렸네
오케스트라는 한국에 오기 전에 이 곡을 직접 골라 정성 들여 연습했다. 한국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낯선 외국 노래를 연습했을 단원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현장에서는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 짓는 관객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동영상으로만 봐도 가슴 뭉클한 감동이 느껴졌다.
이반 피셔는 연주가 끝난 후에도 1분 가까이 침묵하며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 프로그램 책자에도 헝가리 대통령의 추모글이 실렸다. 헝가리 대통령은 오케스트라가 헝가리를 대표해 깊은 조의를 표할 것이라며, 음악으로 위로를 전한다고 썼다.
나는 이 오케스트라의 연주 일정 중 첫날인 24일 공연이 진행된 롯데 콘서트홀에서 동영상을 제공 받아 방송뉴스용 기사를 썼다. 본래 공연 실황은 저작권 문제가 있어 쉽게 촬영하거나 방송할 수 없지만, 추모곡 연주 부분만 오케스트라의 양해를 얻어 외부에 공개했다 한다. 내가 쓴 기사는 25일 밤 나이트라인에 방송되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연주를 짧게나마 직접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취재파일을 썼다.
▶ 6월 25일자 나이트라인 - 헝가리 오케스트라, 다뉴브강 사고 희생자 추모곡 연주
얼마 전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다뉴브 강가에서 한국 민요 '아리랑'을 부르며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모습이 전해졌다. 그들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에서 감동을 느꼈는데, 이번에는 한국을 찾아온 음악가들의 '기다리는 마음'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음악은 이렇게, 진심을 전하는 훌륭한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