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세요?"
지난달 25일, 한 남성이 서울시청 2층 기자실 입구에서 통화를 하던 제게 대뜸 기자냐고 물어왔습니다. 손엔 '광화문시민위원회 정기총회 자료집'이란 책자가 들려있었습니다. 그는 "이건 도저히 아닌 것 같아 제보하고 싶어 '기자실'이란 명판만 보고 무작정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47살 이 모 씨를 그렇게 처음 만났습니다.
▶ [8뉴스 리포트] '새 광화문 광장' 시민 의견 듣는다더니…"토론 대신 통보" (2019.02.12)
● 시민이 밑그림 그린 광장?
이 씨는 스스로를 광화문광장 시민위원으로 소개했습니다.
"광장을 시민 친화 공간으로,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만들어내겠다, 그런 취지로 모집 공고가 서울시 홈페이지에 났습니다. 예전부터 광화문광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원한 거죠."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광화문광장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 드리기 위한 역사적인, 대역사의 시작을 알리고자 합니다. 새로운 광화문광장의 밑그림을 그린 주인공 역시 '시민'들이었습니다." - 박원순 서울시장(지난달 21일)
하지만 시민위원 이 씨가 들려준 지난 반년의 활동은 서울시 설명과 전혀 달랐습니다.
● 반년 동안 '위촉장'으로만 남은 '시민위원'
"숙의나 토론 과정은 없었습니다. 사실 저도 서울시에 묻고 싶은 건데, 사실은 제가 한 게 지난달에 모바일로 설문 조사한 게 전부예요."
실제 지난해 7월, 위촉식 이후 공식 모임은 설계 공모 당선작 발표 직후인 지난달 말에 열린 정기총회, 단 한 차례였습니다. 그마저도 이 씨가 마치자마자 기자실을 찾아올 만큼 시민들이 참여할 기회가 많지 않은 행사 자리였습니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당선작에 대한 시상과 설명, 전문가들의 발표가 중심이 됐습니다. 시민들이 질문을 하고 의견을 내는 시간은 30분 남짓이었습니다. 더구나 시민위원 100명 중 32명은 아예 위촉식과 정기총회 둘 다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알았고요. 서울시에서 메일을 가끔 보내줬는데 그건 이미 보도된 것들을 보내준 것이고요."
실제 광화문광장 시민위원회 명단을 입수해 확인해봤더니, 건축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50명의 전문위원들은 3~4번에서 많게는 10번 넘게 지속적으로 모임을 가져왔습니다. 100명의 시민위원 중에선 추첨을 통해 뽑힌 4명만 네 차례 열린 '분과 대표회의'에 1~2번 참석했을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96명의 시민에겐 이런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 서울시 "설계 공모에 집중하느라 소통 소홀"
서울시는 "그동안 설계 공모에 집중하느라, 시민참여단과의 소통이 소원했다"며 시민참여를 소홀히 한 점을 인정했습니다. 또 "앞으로 당선된 설계안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의 활동을 활성화하겠다"는 해명도 내놨습니다. 하지만 시민참여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있느냔 질문엔 "아직 구체적 방안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광화문광장 시민위원회' 출범 7개월째, 아직도 '시민참여'는 말뿐, 구체적인 방법은 찾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해명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시민을 행정 홍보를 위한 '들러리'로 세웠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다시 이 씨 이야기입니다.
이 씨는 광화문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서울시의 생각에 공감해 시민위원에 지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미 '시민의 광장'이란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지난 2016년 겨울부터 22차례 촛불집회에 참가해 4천 점이 넘는 사진과 영상을 국가기관에 사료로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광화문광장 시민위원회 출범 전에 '광화문포럼'에 참가해 의견을 내오기도 했습니다.
광장에 이 정도로 애정을 가진 한 '시민위원'의 말을 서울시는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시민의 광장은 말(言)과 선언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진=SBS 8뉴스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