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책 1권 읽기 힘든 당신께 드리는 '북 메뉴'

'북적북적' 두 낭독자가 추천하는 '올해의 책'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8.12.31 10:05 수정 2018.12.31 15:4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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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년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기간 일반 도서를 1권이라도 읽은, 성인의 독서율은 59.9%였습니다.(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 제외) 뒤집으면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았다는 것. 1994년 조사 시작 이래 최저치라고 합니다. 책을 1권 이상 읽은 이들의 독서량은 평균 13.8권, 이중 종이책은 8.3권. 책 읽기를 가장 어렵게 하는 요인은 '일 때문에 시간이 없다'가 가장 많았고 '휴대전화 이용, 인터넷, 게임' 혹은 '다른 여가 활동'으로 시간이 없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습니다.

서두부터 독서 실태를 꺼낸 이유는, 독서·책을 둘러싼 이런 상황에서 '책 낭독 팟캐스트'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기 위해섭니다. 저마다 바쁘고 여유 없는 일상에서 '팟캐스트 잠깐 듣고 이를 통해 괜찮은 책을 알게 되고 책 읽기로 이어진다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은 꼭 책 읽기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잠시라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거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북적북적'이 책 한 권 읽기 힘든 분들에게 드리는 '북 메뉴'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해 북적북적은 1월 7일 첫 방송을 업로드하고 12월 30일 연말 특집 방송까지 모두 52회 업로드했습니다. 특집을 제외하면 51회 방송에서 53권(또는 53부)의 책을 다뤘습니다.(두 권씩 읽은 방송이 2회 있고 8권짜리 한 부인 소오강호 같은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업로드했고 결방은 없었습니다. 심영구 기자 29회, 권애리 기자 15회, 조지현 기자 5회, 화강윤 기자 2회씩 책을 읽었습니다.

● 독자들 호응이 가장 많았던 책은?
관련 사진내부 데이터를 통해 독자 참여와 조회수 등으로 순위를 매겨봤습니다. 북적북적 청취자가 가장 많이 듣고 호응했던 책은,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와 故 노회찬 의원 인터뷰집 <진보의 재탄생>이었습니다.

<당신이 옳다>를 12월 2일 낭독한 권애리 기자는 "지난 15년 동안 심리적인 외상들이 아우성친 현장들에 참여해 온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가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정 박사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여러 종류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도와왔고, 무수한 트라우마가 무수한 사람들을 덮치는 것과 그들의 인생이 '진정한 공감'을 만나며 변화하는 모습을 봐 왔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내면서 '심리적 CPR'이란 용어를 제시합니다. 마음에 하는 심폐소생술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치유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인식하는 게 얼마나 긴요한 일인지 힘주어 전달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무시하다 큰 코 다친다'는 생각을 새삼 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생존 매뉴얼'이라는 것을, 읽어가다 보면 조금씩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당신이 옳다> 듣기)

노회찬 의원이 떠나고 2주 뒤인 8월 5일, 심영구 기자는 2010년 출간된 노회찬 인터뷰집 <진보의 재탄생>을 낭독했습니다. 심 기자는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계급투쟁과 혁명을 외치고 머리띠 두르고 파업현장에만 다닐 것 같지만, '내 곁의 유령' 같은 청소노동자를 비롯해 여성, 비정규직,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이 사회의 약자로 불릴 만한 이들에게 두루 관심을 갖고 특유의 유머와 끈기로 진보의 외연을 확장하려 노력했던 그"라고 노 의원을 소개하며 "저에게 아이돌 같은 정치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한 기자는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있고, 국회의원도 있고, 기업인도 있고, 청소부도 있고, 장애인도 있고. 노인도 있고, 어린아이도 있고... 이런 장례식은 처음 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SNS엔 한동안 고인과의 인연과 에피소드를 회상하는 포스팅이 넘쳐났습니다. 이토록 다양한 이들이 저마다의 인연을 떠올리며 추모하는 모습도 처음 봤습니다"라고 소회를 적었습니다.(☞<진보의 재탄생> 듣기)

관련 사진
현직 부장검사가 18년 검사 생활을 돌아보며 쓴 김 웅 검사의 <검사내전>, 올해만 '위안부' 피해자 8명이 별세했는데 '한 명'만 남는 그 미래가 현재라면... 돌직구 질문을 던지는 김 숨 작가의 <한 명>,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의 각종 혐오를 본격 분석한 홍성수 교수의 <말이 칼이 될 때>도 청취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 나오자마자 읽었다! 9일 만에 방송한 책들은?

출간일과 '북적북적' 방송 날짜의 상관관계. 신간을 많이 소개하는 만큼 그 차이가 적을수록 따끈따끈한 새 책이었다는 얘깁니다. 출간일과 방송일 차이가 가장 적었던 건 어떤 책들이었을까요?

1월 5일 출간, 1월 14일 방송 업로드. 11월 30일 출간, 12월 9일 방송 업로드. 이렇게 출간 9일 만에 방송한 책이 두 권 있었습니다. 통상 책을 골라 읽은 뒤 낭독하기로 하고 출판사에 낭독 허가를 요청, 허가받으면 다시 책을 읽으며 어느 대목을 읽고 어떤 코멘트를 덧붙일지 정리하고 녹음과 편집을 거쳐 업로드합니다. 이 과정도 제법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만약 허가를 받지 못하면 다시 처음부터) 9일이면 초초-초단기간인 거죠. 위에도 언급했던 <말이 칼이 될 때>와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으로 잘 알려진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 책 두 권이 출간 9일 만에 방송한 책입니다. 심영구 기자가 읽었습니다. 곧 출간된다는 소식을 미리 접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읽어보니 기대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좋아서 바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심 기자는 "눈으로 읽기 좋은 글과 소리 내 읽기 좋은 글이 있습니다. 전자는 낭독해보면 툭툭 끊기거나 꼬이기 십상인데 그러면 이게 잘 쓴 글 맞나 하는 의심도 듭니다. 김영민 교수의 글은 단연 후자입니다. 김 교수가 지루하지 않게 잘 짜 놓은 가락에 몸을 맡기고 스스로도 낭독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절로 묻게 될 것입니다. 낭독이란 무엇인가"라고 소개했습니다.(☞<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듣기)
관련 사진7월 29일 권애리 기자가 낭독한, 박서련 작가의 <체공녀 강주룡>은 7월 18일 출간 후 11일 만에 읽어 세 번째로 차이가 적었습니다. 강주룡은 일제강점기에 평양 을밀대에 올라가 처음으로 고공농성했던 공장 노동자입니다. 권 기자는 이 소설과 강주룡에 대해 "인텔리가 아닌 진짜 공장 출신의 여성 노동운동가를 역사는 오랫동안 잊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의 이 소설이, 당시 인텔리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방식의 고공 농성을 먼저 생각해 내고,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앉아 "내가 배와서 아는 것 중에 대중을 위하야서는...(중략) 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지식입니다. 이래서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집중 우에 올라왔습니다." 외치던 서른 살 체구 작은 여자의 마음속에 가득했던 그 우주를 소환했습니다. 그리고 그 강주룡들은 2018년 지금도, 여전히, 있습니다. 이 여름, '체공녀 강주룡'을 한 번 만나보시라고, 지붕 위에 혼자 앉은 주룡이의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뜨겁게 권하고 싶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23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입니다.(☞<체공녀 강주룡> 듣기)

51회에 걸쳐 다룬 책들의 80%는 출간 1년 미만이었습니다. 출간 100일 내로 좁혀봐도 59%나 됐습니다.

● 두 낭독자가 뽑은 '올해의 책'
관련 사진권 기자는 순위 매기지 않고 <당신이 옳다>,<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체공녀 강주룡>,<프라하의 소녀시대>를 '북적북적 올해의 책'으로 꼽았습니다. 심 기자는 역시 순위 없이<말이 칼이 될 때>,<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고기로 태어나서>,<오늘 뭐 먹지?>,<소오강호>,<골든아워>를 추천했습니다. 혹 2019년에 읽을 책을 아직 정하지 못하셨다면, 두 기자의 발췌 낭독을 먼저 조금씩 들으시고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싶을 만한 책을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2018년 북적북적 51회 동안 낭독한 책들은 39개 출판사에서 출간됐습니다. <회색인간>의 김동식 작가 책을 유일하게 2회 낭독했고 그 외 회차에서는 모두 중복 없이 소개했습니다. '가급적 다양한 작가의 여러 책을, 그리고 규모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도 많이 소개하고 싶다'는 희망대로 진행한 것 같다고 두 기자는 자평합니다.

두 기자가 뽑은 '올해의 구절'을 소개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북적북적 취재파일
"결국 삶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을 저버릴 수 있을 뿐이지요. 어떤 유형의 삶이든 우리에게 뭔가를 가져다줍니다. 마오쩌둥은 '좋은 일이 나쁜 일로 변할 수 있지만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 항상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하는 편이었죠."
(위화 著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中)










북적북적 취재파일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 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신형철 著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中)







**'북적북적 올해의 책'에 관하여 두 기자가 나눈 이야기는 북적북적 170회 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아흔 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시아버지와 남편이 돌아간 후, 글자를 안다는 걸 숨길 필요가 없고 글씨 연습이 하고 싶어져 예순이 넘은 나이에 도라지 판 돈으로 공책을 사서 쓰기 시작한' 97세 할머니의 일기 30년 치를 추려 낸 책입니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20세기 인간의 정신과 문명을 말살하고자 했던 가장 거대한 실험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성장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 된 위화의 수십 년에 걸친 강연 등 '입말'을 묶은 책이고요. 이 두 책을 올해 '북적북적'을 준비하며 만났습니다. 한 명은 그야말로 시골 촌부, 한 명은 세계적인 작가. 그들의 책을 한꺼번에 접하면서, 인간 영혼의 꺾이지 않는 불꽃과 '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새삼 잊고 있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권애리)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아무래도 마음이 가요. <출판하는 마음>은 매우 끌렸지만, 과연 듣는 분들도 좋아할까 걱정했는데 놀랍게도 반응이 좋았어요. '아 '북적북적' 청취자들 스펙트럼이 넓구나, 진심을 다해 읽으면 이렇게 들어주는구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북적북적' 진행하며 알게 된 열정 넘치는 편집자들에게배우는 점도 많습니다. (심영구)
[취재파일] 책 1권 읽기 힘든 당신께 드리는 '북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