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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혈통 보존 때문에' 빼앗긴 아이

[월드리포트] '혈통 보존 때문에' 빼앗긴 아이
아빠의 품에 안긴 6살 렉시 페이지는 아빠 몸을 팔과 다리로 휘감은 채 떨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렉시를 안고 집을 나서는 아빠를 엄마가 울부짖으며 따라 나서지만 아동 보호기관의 관리의 제지에 금세 가로 막혔습니다.

이 집 주변에서 ‘렉시를 데려가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는 수백 명의 주민을 뚫고 아동 보호기관 관리들은 렉시를 차에 태워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 클라리타에 있는 한 집 앞에서 현지시간 20일 아침에 벌어진 광경입니다.
바로 전날에도 렉시의 아빠 러스티 페이지는 아동 보호기관에 찾아가 아이를 제발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아동 보호기관은 렉시 가족의 절규에 가까운 호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기구하고 슬픈 사연을 소개해드립니다.
렉시는 4년 전인 2012년, 페이지 가족의 품에 처음 안겼습니다. 태어난 지 17개월이 되던 때였습니다. 렉시의 친 엄마는 약물에 절어 오랫동안 자녀들을 학대해왔습니다. 렉시는 6남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렉시의 친 아빠는 갖은 범죄를 반복하며 교도소를 들락거렸습니다.

결국 친부모는 아이들의 양육권을 포기했고 아이들은 각지에 보내져 양육됐습니다. 렉시의 원래 이름은 알렉산드리아였지만 페이지의 집에서 양육되면서 렉시로 불려 왔습니다.
페이지 부부는 이미 세 자녀가 있었지만 어린 렉시를 처음 본 순간 혈육 이상의 정을 느꼈고 친 자녀보다 더 큰 사랑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렉시를 양육하게 된 순간부터 입양을 결심했고 법원에 입양 신청을 냈습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았던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렉시는 미국 토착민 종족, 다시 말해서 인디언 ‘촉토’족의 피가 섞여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1978년에 제정된 ‘인디언 아동 복지법’이 있었습니다. 인디언의 혈통 보존을 위해 인디언 아동은 양육 가정이 없을 경우 해당 종족이 양육권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한 법입니다.

페이지 가족이 렉시의 양육권을 신청하자 촉토족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법적 공방이 벌어졌고 결국 ‘인디언 아동 복지법’ 때문에 페이지 가족은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촉토족은 렉시의 양육을 유타 주에 있는 렉시의 먼 친척에게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새로 렉시의 양육을 맡게 될 유타주에 있는 먼 친척은 인디언 부족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디언과 결혼한 친척의 친척이었습니다. 오히려 렉시를 양육했던 페이지 부부 중 부인이 인디언 출신이었습니다. 촉토족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촉토족은 렉시의 양육을 이 친척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던 겁니다. 
페이지 가족이 얼마나 렉시를 애정으로 길렀는지 잘 아는 동네 주민들은 한데 모여 합창과 기도를 하면서 렉시를 페이지 가족에게서 떨어뜨리지 말 것을 호소했습니다. 남녀 노소 함께 모여 “렉시를 놔두세요. (Keep Lexi Home)’라고 호소했습니다. 아동보호기관 관리들이 양육 아빠 페이지의 품에서 렉시를 받아 차에 태우는 순간 모두가 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습니다. “렉시야! 사랑해!” (Lexi! We love you)
렉시의 양육 부모 페이지 부부는 대법원에 호소할 계획입니다. ‘인디언 아동 복지법’의 위헌 여부도 함께 가려 달라고 청구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렉시 경우와 비슷한 사례가 지난 2011년에도 있었습니다.
2009년, 카포비앙코 부부는 갓 태어난 인디언 체로키족 아이 베로니카를 입양했습니다. 베로니카의 친부모가 이혼하면서 두 사람 모두 베로니카의 양육권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시 인디언 아동 복지법에 가로막혀 아이를 빼앗길 운명에 처했고, 카포비앙코 부부는 법정 싸움을 벌였지만 패소해 2011년 베로니카를 빼앗겼습니다. 카포비앙코 부부는 미국 대법원에 호소했고 당시 대법원은 이 부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카포비앙코 부부는 지금은 베로니카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포비앙코 부부의 사례는 페이지 부부의 사례와 다소 상이한 점이 있어 페이지 부부가 렉시를 찾게 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일요일 아침, 엄마의 절규와 아빠의 흐느낌, 그리고 수백 명 주민의 기도와 합창 속에 아동 보호기관 차에 강제로 태워진 렉시의 품에는 아빠가 오래 전 사준 테디 베어 인형이 안겨 있었습니다.

(사진=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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