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생적 테러”…발표부터 엇박자
미국 수사당국은 일단 이번 사건이 IS를 추종하는 미국 내 급진 이슬람교도들의 자생적 테러로 보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는 아직까지 파룩과 말릭 부부가 IS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겁니다. 현재까지의 증거나 정황에 비춰 볼 때 미국 수사당국의 이런 잠정 결론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합니다.
사건 현장에서 경찰과 공조 수사를 지휘해온 데이비드 보디치 FBI LA지부 부지부장은 이날 오전 현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파룩과 말릭 가운데 1명이 FBI수사망에 올라 있는 테러리스트 용의자와 전화 접촉들을(복수로 표현) 가졌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말릭이 페이스북에 가명으로 IS의 지도자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사실은 언론이 먼저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것이었고 FBI가 뒤늦게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경찰이건 FBI건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잘 모른다”고 하거나 “답할 수 없다”고 하지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있을 후 폭풍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사실은 FBI의 현장 책임자가 인정했다는 점에서 분명 사실(facts)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또, 현재로서는 두 사람이 IS와 연관 지을 증거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같은 기관 그것도 FBI의 두 고위 책임자가 몇 분 차이를 두고 다른 설명을 한 겁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만, 만일 이번 사건에 IS가 직접 개입했다면 오바마 정부로서는 매우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에 대한 직접 도전을 단지 공습으로만 대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코미 국장의 설명보다는 보디치 지부장의 설명이 더 진실에 가깝게 들립니다.
● 무기의 출처와 자금 경로
파룩과 말릭 부부는 소총 2정과 권총 3정, 특히 7천여발의 탄약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파이프 폭탄 12개와 사제 폭탄을 만들 수 있는 장비 백여 개, 그리고 리모트 컨트롤로 폭발시킬 수 있는 폭탄까지도 갖고 있었습니다.
한 달 수입이 5백만원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아파트 월세가 최소 월 2천달러, 각종 전기요금 등 유틸리티 비용이 5백달러, 자동차 유지비도 만만치 않게 들 것이고, 게다가 6개월된 딸까지 있었으니 월급 가지고 생활비 대기에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그들이 이 많은 무기들을 무슨 돈으로 사 모았던 걸까요? 이 또한 FBI가 수사하고 있는 대상입니다.
● 범행 과정에서의 의문들
이번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부터 제기된 의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을 사건 발생 3시간만에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한 제보 때문이었습니다. 경찰은 이 제보가 어떤 내용인지 누가 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파룩이 사건 당일 송년 모임에서 다른 동료와 종교 문제로 싸우고 나갔다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경찰의 초동 수사 발표 내용을 보면, 파룩이 동료와 싸우고 나간 뒤 말릭과 함께 되돌아와 총을 난사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파룩과 말릭은 검정색 군복 차림 (기동타격대 같은 차림인 듯) 이었고 얼굴에 복면을 썼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총을 난사하고 강당에 원격 조종되는 폭탄을 남기고는 검정 SUV를 타고 달아났다는 것이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입니다.
사건 발생 직후 기자들은 “테러범이라면 굳이 왜 얼굴을 가렸을까? 그리고 테러로서는 그다지 상징성도 없는 이 시골 마을에서 공무원들에게 총을 쏴댔을까?”라는 의문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당당히 테러를 저지르고 알라 신을 외치는 테러범의 행태’도 아니었고 ‘동료와 다툼으로 욱한 나머지 범행을 저지른 우발 범행’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런 점이 초동 수사 때는 ‘직장 내 갈등’으로 발표했다가, 테러 가능성에 대한 현지 언론들의 보도가 나오면서 테러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던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 베일에 싸인 말릭의 행적
사건 발생 초기부터 부인 말릭의 신원과 행적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파룩의 사진은 사건 다음날부터 공개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말릭의 사진은 사건 발생 사흘만인 지난 금요일에서야 처음 공개됐습니다.
(말릭의 비자 사진이 있었을 터이니 수사 당국은 사진을 갖고 있었겠지만 언론에는 사흘 뒤에야 공개됐습니다.) 6개월된 딸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범행에 나선 여성, 아무리 봐도 상식적으로 일반적인 여성은 아닐 터인데도 사건 발생 초기에 말릭에 대해서는 경찰도 언론도 이렇다 할 내용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말릭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보유한 파룩과 달리 파키스탄 태생입니다. 19살 때 사우디 아라비아로 이주해 살다가 5~6년 전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했습니다. 담당 교수는 그녀가 매우 조용하고 성실했다면서 테러를 저지를 인물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말릭은 파룩과 온라인 데이트 서비스를 통해 만난 뒤 지난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약혼 비자’로 입국한 뒤 결혼을 통해 합법적인 미국 영주권을 획득하게 됩니다. 파룩의 지인들이 파룩이 독실한 이슬람 교도였지만 폭력적이지는 않았다면서 그가 최근 1~2년새 급진화됐다고 말합니다.
말릭과 교제 기간과 우연히 일치합니다. 미국 수사당국은 이번 사건을 자생적 테러로 보면서 IS와의 관련성에 대해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지만 한마디로 ‘독한 어머니’이었던 말릭이 언제, 어떤 계기로 급진화됐는지 그리고 그녀가 IS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계속 수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 과연 둘 만의 범행일까?
사건 발생 초기 현지 언론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범인이 3명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경찰도 이런 목격자 진술에 근거해 파룩과 말릭을 사살하고 두 사람 집 근처에서 도주하던 한 명을 체포해 조사했지만 혐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이번 사건의 범인은 파룩과 말릭 두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들이 범인이라는 증거들을 없애는 대신 누군가와 교신의 수단이 될 장비들은 발 빠르게 없앤 겁니다. 그들은 과연 누구와 교신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무엇을 그리도 감추고 싶었던 것일까요? FBI가 두 장비의 복원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겁니다.
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알리는 것이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진=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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