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결혼 할래? 아니면, 감옥 갈래?"

[월드리포트] "결혼 할래? 아니면, 감옥 갈래?"
지난 달, 미국 텍사스주의 스미스 카운티의 한 형사 법정 피고 석에 21살 조스텐 번디가 앉아 판결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재판정 뒤쪽 방청석에 앉아있던 번디의 가족과 그의 여자 친구인 19살 엘리자베스 제인도 숨 죽이며 재판 과정을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번디도, 제인도 잠시 뒤에 있을 판결이 미국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Josten Bundy and Elizabeth Jaynes (Source: KLTV)

 지난 2월, 번디는 우연히 여자친구인 제인의 전 남자친구와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가 제인에 대해 갖은 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참다 못한 번디는 전 남자친구에게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한바탕 육박전이 벌어졌고 번디는 이 남자친구의 턱에 주먹을 두 차례 날렸습니다. 전 남자친구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번디는 출동한 경찰에 체포돼 끌려갔고 그로부터 5개월 뒤, 재판정 피고 석에 앉게 됐습니다.
▲ According to court transcripts, Judge Randall Rogers ordered a defendant to get married or face 15 days in jail. (Source: KLTV)
 
근엄한 자세로 사건 과정을 경청하던 판사 랜달 로저스는 번디에게 물었습니다. " 여자친구인 제인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번디는 잠시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4명의 누나 동생과 함께 커 왔습니다. 누군가 제 누나나 여동생에게 그런 무례한 행동을 했을 때 저는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만일 어떤 녀석이 여성에게 그같이 무례한 언행을 한다면 저는 아마도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판사 로저스는 두꺼운 돋보기 안경 너머로 번디를 한동안 쳐다 본 뒤 판결을 내렸습니다. “피고 번디에게 보호감호 2년을 선고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판결이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피고 번디는 자기 억제를 할 필요가 있으니 카운셀링을 받도록 하고, 성경 구절을 노트에 하나하나 적도록 하세요.”  성경구절을 적으라는 판결만 가지고 언론에 대서특필 되지는 않았겠죠? 판결의 핵심은 바로 그 다음이었습니다. “피고 번디는 여자친구인 제인과 30일 이내에 결혼하도록 하세요. 만일 결혼하지 않을 경우에는 15일 동안 감옥에 가게 될 겁니다.”
 
판결을 들은 번디와 제인 그리고 가족 모두 황당했습니다. 우선 번디는 여자친구인 제인과 사귄 지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만일 15일 동안 감옥에 가게 되면,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해고될 처지였습니다. 번디는 결국 제인과의 결혼을 택했습니다. 제인 역시도 이 결혼을 승낙했습니다.
▲ Elizabeth Jaynes and Josten Bundy. (Source: KLTV)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그냥 동화 같은 해프닝에 불과한 얘기일 겁니다. 이 판결 내용과 함께 두 사람의 결혼이 보도가 되면서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됐습니다. 해외에 사는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쇄도했고 방송사 기자들의 문의가 몰려들었으며, 각종 방송사 쇼 프로그램 출연 요청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30일 이내에 결혼해야 하다 보니, 제대로 된 결혼 준비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어렸을 때부터 멋진 결혼식을 꿈꿔왔던 제인은 실망스럽게도 목사 앞에서 반지 하나 교환하는 결혼식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양가  가족들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번디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화가 났습니다. 미칠 지경이죠. 아무리 법원이라고 하더라도 누구에게 결혼식을 하라 마라 판결할 수는 없는 겁니다.”
 
변호사들도 이 판결에 대해 불법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지금이 총질을 해대는 서부 시대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만, 지금 같은 시대에 법원이 누구에게 결혼하라 마라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구금 당하게 되는 상황에서는 그 결혼 명령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 반 헌법적인 결정입니다.”
 
급기야, 어떤 사람은 판사 로저스의 판결은 미국 수정헌법을 위배한 것이라며 ‘백악관 청원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이 청원 사이트에는 673명이 서명했습니다.
▲ Source: LIDTIME.com
 
당사자인 번디와 제인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자신들의 결정에 의해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법원이 ‘결혼할래? 아니면 감옥갈래?’하는 식의 반 강요에 의해서 이뤄진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번디는 제인을 미안한 듯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변호사를 구할 충분한 돈이 없어요. 그리고 직장을 잃지 않으려면 판사의 판결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고요.”   
 
21살과 19살 두 젊은 청춘의 남은 미래에 중대한 변수가 될 이 결혼을 반 강요한 판사 로저스는 당시 어떤 생각을 갖고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요? 일파만파 파장이 커지자 각 언론사들이 판사 로저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를 거부한 채 지금까지도 굳게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