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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한국 언론사 최초 '마약 땅굴' 취재기

[월드리포트] 한국 언론사 최초 '마약 땅굴' 취재기

멕시코와 접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샌디에이고는 멕시코 마약 갱단들이 미국으로 마약을 몰래 들여오는 주요 통로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사람이나 말을 통해 마약을 들여왔지만 미국이 국경을 정비한 이후부터는 날이 갈수록 교묘하고 지능적인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약 땅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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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약 땅굴을 취재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 3월 초였습니다. 샌디에이고 국경 순찰대에 취재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일주일 뒤에서야 되돌아온 회신은 한마디로  ‘불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외국 언론사에 마약 땅굴을 공개한 적이 없으며 취재팀이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면서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수 차례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방법을 찾았고 결국 미국 국무부의 신원조회 과정을 거치기로 했습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어떤 대상이나 장소를 취재하려면 반드시 취재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개 건물 앞 인도는 그 건물의 땅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 땅 안에서는 촬영해선 안 되고 공공 도로까지 나가서 촬영해야 합니다. 지난해 미국 장애인 택시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취재 요청을 한 뒤 허가 회신이 올 때까지 3주가 걸렸으니 대강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실 겁니다. 역시 이번에도 그렇겠지 했는데 마약 땅굴의 취재허가 회신이 온 것은 5월 중순이었습니다. 취재 요청을 하고 허가를 받기까지 두 달 반이나 걸린 셈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취재 허가를 받기까지가 어렵지만 일단 취재허가를 하고 나면 매우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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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이 샌디에이고 국경에 도착하자, 안내하는 국경순찰대 요원이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취재 차량은 국경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국경 순찰대가 제공한 밴 승합차에 타고서 국경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취재팀은 국경이 그저 철조망으로 연결된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전혀 달랐습니다.

우선 멕시코와 미국 땅이 맞닿는 곳에 오래 전에 세워진 철판 담장이 있었습니다. 높이는 성인 두 사람 키 크기 정도로 매우 오래된 탓에 녹이 잔뜩 슬어 있었습니다. 그 담장으로부터 미국 쪽으로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또다시 촘촘한 철망으로 된 흰색 담장이 또 세워져 있었습니다. 높이는 성인 3명 크기였고 이 담장을 따라 50여 미터 간격으로 조명 등이 설치돼 있고 백여 미터 간격으로 카메라들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주간에 찍는 카메라와 야간에 찍는 적외선 카메라들이 쉴새 없이 돌고 있고 모니터 실에서는 24시간 4교대로 나뉘어 이 카메라 영상을 모니터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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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땅굴 앞에서 ‘르누아’라는 대원이 취재팀을 맞이했습니다.  우선 안전모와 벨트 등 안전 장구를 착용한 뒤 마약 땅굴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한국 남자는 군대를 다 다녀오기 때문에 이런 게 필요 없다고 농담했었는데 막상 철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깊이가 30미터에 달했으니까요. 저도 그랬지만, 무거운 ENG 카메라를 들고 내려가는 카메라 감독은 땀을 비오듯 흘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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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전선이 벽면에 길게 매달려 있고 아래에는 지름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환풍구(고무관처럼 생겼음)도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처음 발견 당시부터 있었다는데 멕시코 갱단들이 땅굴을 파고 마약을 옮기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미국 쪽에서 전기와 공기를 보내고 있는데 혹시 몰라 제 허리띠에는 공기의 상태를 측정하는 경보기 (산소량이 적거나 이산화탄소 수치가 오르면 경보가 울림)를 달아줬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사람이 몸을 숙이고 움직여야 할 정도의 크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이런 대형 땅굴이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지난 15년 동안 56개가 발견됐는데 지난해에 발견된 5개 모두 이런 대형 땅굴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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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사암’이라 아주 쉽게 파지지만 제법 견고해 크게 뚫어도 잘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지상에서 10미터 깊이로 파 들어 왔지만 지금은 이렇게 30미터 이상 깊이 사암 지대를 파고 들어오면서 더 큰 땅굴을 뚫는 게 가능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땅굴을 발견하냐고 물었더니 지금까지 발견된 56개 땅굴 가운데 70%는 정보원이 제공한 첩보로 발견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30%는 탐지견이 발견하거나, 아니면 파 들어오다가 무너지는 바람에 저절로 발각됐다는 것이었습니다.  멕시코 쪽에서는 주로 가정집 화장실 같은 곳에서 땅굴이 시작되고 미국 쪽으로는 창고로 나오게 돼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던 대로 미국 쪽 담장만 넘으면 도시나 농촌과 연결되는데 멕시코 갱단이 미국으로 들어와 적당한 곳에 창고나 집을 하나 사서 그쪽으로 땅굴을 뚫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땅굴 속 지면은 멕시코 쪽이 10도 가량 낮습니다. 이는 물이 스며들면 멕시코 쪽으로 저절로 흐르게 한 건데 멕시코 쪽으로 쌓인 물은 배수 펌프를 이용해 가정집 욕실로 퍼내면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땅굴 취재를 마친 취재팀은 즉석에서 국경 순찰대쪽의 펜스를 따라 더 가볼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땅굴도 볼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순찰대원은 의외로 취재팀을 태우고 국경을 따라 가면서 이곳 저곳을 보여줬습니다. 취재도 취재지만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된 취재였던 만큼 이것 저것 순찰대원에게 물어가면서 호기심을 채워갔습니다. 게다가 국경 순찰대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 화면까지도 제공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초 마약 땅굴 하나만 방송할 예정이었다가 밀입국까지 두 편을 만들게 된 것도 이런 협조 덕분이었습니다.

▶ 가정집에서 시작된 '거대 마약 땅굴'…현장 포착
▶ 콘크리트 기둥까지 등장…美 국경은 전쟁 중

취재를 마친 뒤 반나절 동안 쉬지 않고 취재팀을 안내해 준 순찰대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방송이 끝난 뒤 화면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물론 한국말로 방송되는 탓에 번역본도 함께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굳이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지만 두 달 여 동안 계속 전화하면서 귀찮게 한데 대한 미안함이 작용했습니다. 

이번 취재는 마약 땅굴 안에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는 개인적 호기심에서 출발해 오랜 기다림의 짜증도 있었지만 한국의 시청자들에게 이런 곳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미국의 마약 밀매와 밀입국 실태를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었던 취재였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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