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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살인'으로 번진 '보복 운전'…가해자는 누구?

[월드리포트] '살인'으로 번진 '보복 운전'…가해자는 누구?
CNN을 비롯한 미국 언론에서 지난주 목요일 이후 매우 비중 있게 다룬 사건이 있습니다. 네바다 주에서 일어난 일인데, '로드 레이지'(Road Rage) 이른바 '분노 운전' (우리 말로 하면 '보복 운전' 또는 '난폭 운전'에 가깝습니다)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누군가의 총에 맞아 숨졌는데 일주일 만에 붙잡힌 피의자는 10대 이웃 청년이었습니다. 아무리 '욱' 하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운전으로 인한 시비가 살인으로까지 이어졌을까요? 사건 발생 직후까지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뒤늦게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취파

우선, 사건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보겠습니다. 44살 태미 마이어는 늦은 저녁 집 근처 도로에서 15살 된 딸에게 운전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운전이 서투르다 보니 매우 천천히 달렸을 겁니다. 그런데 뒤에서 은색 승용차 하나가 이 차를 스치듯 추월했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태미가 깜짝 놀라 경적을 울렸습니다. 그러자 앞 지르기를 한 은색 승용차에서 한 남성 운전자가 내리더니 뭐라고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태미는 곧바로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밤 은색 승용차가 집에까지 찾아와 총을 쏴댔고 그 총에 맞아 태미가 숨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보도된 뒤, 태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동네 주민들의 애도가 이어졌고 분노 운전을 한 것도 모자라 총질까지 해서 아이들 엄마를 숨지게 한 범인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습니다. 범인을 빨리 잡아서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취파
 
미국이 워낙 욱하면 총을 쏴대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기사를 길게 다룰 수 없는 언론 매체의 특성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저 단순한 운전 시비 때문에 집에까지 찾아와서 총을 쏴댔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뭔가 그 중간 과정에서 분노를 자극했던 요인이 더 있을 거라고 추측은 했지만 제가 직접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언론을 통해 사실을 파악해야 하는지라 그 추측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찾아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용의자가 붙잡히면서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취파
 
경찰에 붙잡힌 피의자는 같은 동네에 사는 19살 에릭 노스취였습니다. 숨진 태미의 남편 진술에 따르면 에릭은 태미와 잘 아는 사이였고 태미가 종종 에릭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면서 관심을 갖고 지내왔던 이웃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얘기입니다. 그런 다정한 관계인데, 단지 운전 시비때문에 화가 나서 무작정 집까지 찾아와 총질을 했다는 게 말입니다.
 
경찰 수사를 통해 새로 드러난 그날의 사건을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태미가 딸의 운전 교육을 하던 중에 앞지르기를 한 에릭에게 태미가 경적을 울린 것은 앞서 전해드린 대로입니다. 에릭을 잘 알고 지낸 태미는 에릭에게 그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여 꾸중했고 두 사람간 언쟁으로 발전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태미는 22살 된 아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고 아들과 함께 다시 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게다가 아들은 총까지 들고 나갔습니다. 태미의 남편은 에릭이 태미에게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그랬다는데, 총까지 들고 에릭을 찾아 나선 것이 자기 보호라고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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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미와 아들은 차를 몰고 여기 저기 살펴보다가 에릭의 은색 승용차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발견만 하고 되돌아 왔는데 그날 저녁에 에릭이 은색 승용차를 몰고 와서 다짜고짜 총질을 해댔다는 겁니다. 이 부분도 좀 더 보강 조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추측하건대 에릭이 밤에 집까지 찾아와 보복 총질을 할 정도였다면 아마도 태미와 그 아들이 에릭을 발견했을 당시 에릭에게 뭔가 강한 협박을 했거나 적어도 서로 언쟁을 벌였을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그날 밤 태미의 집에서는 양측간에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태미가 총에 맞아 숨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실이 하나 둘씩 드러나면서, 태미의 남편은 기자들에게 강한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사건 직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태미의 불운한 죽음에 대해 동정을 불러 일으켰던 남편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태미의 남편은 피의자인 에릭이 잡힌 뒤 새로 드러나는 사실들에 대해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러니까 기분이 좋아? 좋으냐고? 내 아내와 아들을 짐승으로 보이게 만드니까 말이야. 진짜 짐승은 저 에릭 놈이라고.."
 
취파
 
경찰은 에릭과 함께 범행한 공범이 있을 것으로 보고 에릭을 추궁하고 있습니다. 에릭에 대한 예비 재판은 월요일에 열립니다. 누가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는지 그리고 그 단초가 살인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연유와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앞으로 경찰 조사와 재판을 통해 더 상세히 밝혀지겠지만, 에릭은 살인 혐의로 중형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운전 시비가 총격전과 살인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는 미국의 총기 소지 자유가 자리잡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뉴욕에서 13일 동안 총기로 인한 사망 사고가 없었다는 것이 톱 뉴스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 운전 시비가 총격전으로…주부 사망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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