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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순간에 엇갈린 삶과 죽음...기구한 운명들

[월드리포트] 순간에 엇갈린 삶과 죽음...기구한 운명들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에 있는 한 제약사의 CEO인 마이클 로젠버그는 월요일 아침 워싱턴 DC에 사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경비행기에 올라 탔습니다.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갖고 있던 로젠버그는 가끔씩 다른 지역에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가게 될 경우 경비행기를 직접 조종했습니다. 이날도 여느 때처럼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노스 캐롤라이나 공항을 가볍게 이륙했습니다.
 
순조롭게 날던 경비행기가 메릴랜드 주에 들어서면서 뭔가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기체가 좌우로 기우뚱거렸고, 정상 고도보다 낮아진 동체를 끌어올리려고 조종간을 있는 힘껏 잡아 당겼지만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메릴랜드 주 게이더스버그 주택가 상공을 날고 있을 때 기체는 더욱 심하게 떨렸습니다. 근처 도로에서 차를 타고 지나던 목격자 트레이시의 목격담입니다. “조종사가 조종간을 붙들고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행기가 조금 올라가는가 싶더니 다시 고도가 떨어졌어요. 비행기 날개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고 상당히 불안 불안하게 날고 있었어요”
 
주택가를 향해 고도가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하자 비행기는 어떻게든 주택가를 피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떨어지기 시작한 비행기의 조종간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한 주택의 지붕에 쿵 하고 부딪힌 비행기는 그 충격으로 잠시 솟구쳤고 다시 두 번째 집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두 번째 집에 동체가 부딪치자 날개가 떨어져 나갔고 그 날개는 가속이 붙은 채 날아가 세 번째 집을 강타했습니다. 이 비행기 날개에는 기름이 남아 있는 엔진이 붙어 있었고 충돌로 인해 일어난 화재는 삽시간에 세 번째 집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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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이미 불길은 집 전체로 번졌고 접근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열기와 심한 유독가스를 내뿜어댔습니다. 집에 사람이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고 어떻게든 불부터 끄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집은 집의 일부가 심하게 파손되긴 했지만 큰 불이 나지 않아 인명 피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세 번째 집만이 절반 정도는 충돌에 의해 날아갔고 나머지도 불길에 타버려 숯덩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집 안에는 사고 당시 3명이 2층방에 있었습니다.
 
36살의 주부 마리에 겜멜은 2층 방에서 요람에 누워 있는 일곱 달 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바로 그 옆에서는 3살 된 아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느닷없이 콰당 콰당 하는 굉음이 들리더니 순식간에 불길이 눈 앞에서 타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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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근처에 사는 이웃 주부 발렌시아의 목격담입니다. “평소에도 이 동네에는 비행기 지나는 소리가 자주 들려요. 주방에서 아들의 수학 숙제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큰 비행기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저희 집 바로 위를 나는 듯한 소리였어요. 그리고는 바로 쾅 하고 굉음이 들렸고 얼마 있다가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났고요.” 만일 추락한 경비행기의 고도가 1도만 낮았어도 겜멜이 아닌 발렌시아는 아들과 함께 사고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36살의 가정 주부 겜멜과 3살짜리 둘째 아들, 그리고 일곱 달 된 막내 아들은 추락한 비행기에서 떨어져 나온 엔진 날개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됐습니다. 겜멜의 5살 된 첫째 아들과 남편은 그 때 집 밖에 있었습니다. 굉음과 함께 연기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면서 ‘설마 우리 집은 아니겠지’ 하고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 겜멜은 잿더미가 된 집 안에서 부인과 두 아들이 숨진 채 들것에 실려 나오는 것을 보면서 미친 듯이 울부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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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남편이 첫째 아들과 함께 잠시 나가 있지 않았다면 집에 머물렀던 부인,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어쩌면 숨졌을 운명이었는지 모릅니다. 또 만일에 겜멜의 집이 비행기 동체가 부딪힌 첫 번째 집이었거나 두 번째 집이었더라면 운명은 또 바뀌어 있을 지 모릅니다. 삶과 죽음의 운명은 이렇게 기구하게 몇 초, 몇 분의 차이를 두고 엇갈렸던 겁니다. 뒤늦게 밝혀진 한가지 기구한 운명은 숨진 주부 겜멜의 페이스 북에서 발견된 사연입니다. 월요일 오전에 이웃 주부가 겜멜 부인과 근처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 하자고 제안했던 모양인데, 겜멜 부인은 “월요일 오전에는 그냥 집에 있고 싶어”라고 답장한 겁니다. 이날 오전에 겜멜 부인이 집에 머물지 않고 밖에 나가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고 왔다면 화를 면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사고로 인해 산산조각 난 비행기 안에는 세 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조종석에 앉아 있던 로젠버그, 그리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함께 타고 있었는데 모두 사고로 인해 숨졌습니다. 로젠버그가 월요일 아침에 왜 아들을 보려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근처 공항 관제탑에는 어떤 SOS 요청이나 위급 상황을 알리는 무선 교신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NTSB (미국 교통안전 위원회)가 수거해 간 블랙박스를 조사해 봐야 사고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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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로젠버그는 이번에 사고가 난 지역 근처 공항에서 사고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2010년 3월 1일, 그 때도 자신이 직접 조종간을 잡았는데, 활주로에서 백 피트 가량 벗어나 나무를 들이받고 진흙탕에 곤두박질쳤던 겁니다. 당시 큰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로젠버그는 가벼운 상처만 입었습니다. 사고를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2010년에 사고를 무사히 넘겼던 로젠버그는 4년 만에 근처 지역에서 현재까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겁니다. 
 
넓은 땅덩이만큼이나 워낙 사건 사고가 많은 미국에서 하루에 적어도 수백 명씩 사건이나 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사건이나 사고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고는 기구한 운명들이 얽혀 있어서인지 지역 언론뿐 아니라 메인 언론사들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면서 Gofundme 사이트에는 겜멜 가족을 돕기 위한 모금 페이지가 개설됐습니다. 기자가 접속했을 때는 사이트가 개설된 지 8시간 밖에 안됐는데도 1,468명이 6만3천여 달러, 우리 돈 7천 만원가량을 모금한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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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하늘에 날벼락으로 두 아들과 함께 세상을 떠난 주부 겜멜과 오랜 만에 멀리 떨어진 아들을 보러 가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체 이상으로 세상을 등지게 된 로젠버그, 그리고 유명을 달리하고도 그 신원조차 확인할 수 없는 두 사람 등 6명 모두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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