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기다리는 것도 짜증스러운 일인데 무뚝뚝한 직원의 업무 태도를 보면 울화가 치밀 때가 적지 않습니다. 아무리 개인적 사정을 하소연해봐야 돌아오는 답변은 “None of my business!!”. 즉, “그건 당신 사정이고, 내 알 바 아니다”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살아보면 한국의 관공서가 그토록 좋은 곳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오늘은 미국의 DMV에서 최근에 자주 일어나는 일을 소개하겠습니다. 결코 남의 일로 여길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에 사는 두 여성이 겪은 일입니다. 운전 면허증을 갱신하려고 DMV를 찾아갔습니다. 사진을 새로 바꿔야 하는 만큼 DMV 사진대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DMV 직원이 “화장을 지우세요” 라고 했답니다. 무슨 황당한 얘기냐고요? 사실 이 두 여성은 트랜스젠더, 그리니까 성전환자들 이었습니다. 원래는 남성이었다가 여성으로 성을 전환했는데 면허증에는 원래대로 남성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장만 지울 게 아니라 속눈썹도 떼고 입고 있던 치마도 바지로 갈아입고 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미국 트랜스젠더 인권 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면허증의 사진은 평소 그 사람이 다니는 대로 찍어서 올려야 신분 확인이 되는 게 아닐까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이 성전환자는 평소 여성으로 다닐 겁니다. 만일 차를 운전하던 중에 경찰이 이 차를 단속한다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할 터인데, 사진 속 인물과 실제 모습이 다르다면 경찰은 운전자를 상대로 이것 저것 심문하거나 심하면 경찰서로 연행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전환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법적인 불일치입니다. 버클리 카운티에 사는 트러디 키츠밀러라는 성 전환자가 최근에 겪은 일입니다. 법적으로 성전환을 인정하는 제반 서류를 들고 DMV를 찾아가 면허증 갱신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DMV 직원 역시 화장을 지우고, 목걸이를 빼라고 했고 한 발 더 나아가 머리가 너무 길다며 짧게 깎고 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제 면허증에 ‘남성’(M) 인지 ‘여성’(F)인지 뭐라고 쓰여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저는 제 모습 그대로 신분증에 사진이 들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키츠밀러는 고민 끝에 면허증 갱신을 거부하고 DMV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살기 어려운 곳인데도 면허증 갱신을 포기하고 불편을 감수하기로 한 겁니다.
CNN 기자가 웨스트 버지니아의 DMV 책임자를 찾아가 인터뷰했습니다. “저희 직원들은 성전환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언행을 한 적이 없으며, 현행 법에는 면허증에 찍혀 있는 성별에 따라 사진을 찍도록 돼 있다”는 답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본인이 여성의 모습대로 사진을 찍고자 한다면, 법원에서 여성으로 바뀌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와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복잡한 논란 같지만 얘기는 간단합니다. 법원으로부터 성전환을 인정받는 판결문을 들고 오면 M(남성)에서 F(여성)으로 바꾸고 그러면 화장을 지우라고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미국에서 논란이 되는 이유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성전환 수술을 거쳐야만 법적으로 성전환이 인정되는데 성전환 수술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더구나 미국은 한국에 비해 의료비가 수십 배 비쌉니다)이 걸림돌이라는 겁니다.
성 정체성 혼란을 겪은 뒤 사실상 생리적 수술을 받지 않았을 뿐 성을 전환해서 사는 미국인들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많겠지요. 따라서, 이런 DMV에서의 논란은 거의 매일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그냥 묻혀 있었던 겁니다. CNN이 이 문제를 다루게 된 계기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결국 엄청난 비용 때문에 성전환수술을 받지 못한 많은 성전환자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현실적인 모순이기는 하지만 면허증에는 M(남성)의 모습으로 사진을 남기고 실제로는 여성의 모습으로 운전하고 다니다가 경찰과 실랑이를 하거나, 아니면, 면허증 갱신을 포기하고 차 없이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문제는 면허증 갱신을 포기하고 결국 무면허 상태에서 운전을 하는 사례가 많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면허증 갱신이 안 됐으니 보험도 안 될 것이고 사고가 나면 본인 뿐 아니라 상대방도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남의 나라 얘기를 장황하게 한 것 같습니다만,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인 만큼 결코 남의 일로만 여길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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