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월드리포트] 美 '묻지마' 살인…같은 곳에서 13년 전 '쌍둥이' 사건

[월드리포트] 美 '묻지마' 살인…같은 곳에서 13년 전 '쌍둥이' 사건
지난 금요일 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타 바바라에서 있었던 무차별 총격 사건으로 미국 전역이 나흘째 들썩이고 있습니다. 보도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엘리엇 로저라는 22살 대학생이 범행 전에 140쪽에 달하는 글과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대량 학살’을 예고한 뒤 BMW 승용차를 타고 길거리를 질주하면서 반 자동 권총을 마구 쏴댔습니다. 3명의 목숨을 앗아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의 집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남학생 세 명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이로써 자신을 포함해 7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치게 됩니다.

월드용


로저는 외톨이였습니다. 그 자신의 표현대로 ‘숫총각’이었습니다. 어떤 여자도 자신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수심이 치밀어 올랐던가 봅니다. 차 안에서 찍은 셀프 동영상에는 “여대생 기숙사에 있는 모든 여대생들을 죽일 거야. 그리고 아일라 비스타(지명)를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사람은 모두 다 쏴 죽일 거야.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돌아왔어”라고 분노에 가득 찬, 그러면서도 차가운 표정으로 덤덤하게 독백하고 있습니다.

로저는 금요일 밤 9시 반, 젊은 이들이 많은 거리를 질주하며 그야말로 ‘묻지마’식 총질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두 명의 여대생은 길거리에서 그리고 남학생 한 명은 델리 가게 안에서 총에 맞아 숨지게 됩니다. 또, 8명이 총에 맞아 부상당했고 4명은 미친 듯 달리는 로저의 차에 치어 골절상을 입는 중상을 입었으며 1명은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경찰은 로저의 아파트를 수색한 끝에 세 구의 남성 시신을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이름으로 볼 때 모두 중국계 미국인으로 보입니다. 로저의 집에선 또 4백발의 실탄과 함께 복수심 가득한 140페이지짜리 글도 발견됐습니다. 여기까지가 이번 사건의 개요입니다.

월드용


그런데, 13년 전인 2001년에 바로 이 도시에서 놀랍도록 유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로 불리는 불리는 사건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2001년 2월 21일, 아일라 비스타에 살면서 UC 샌타 바바라 대학에 다니는 1학년생 데이비드 아티아스는 ‘사브’ 승용차를 몰고 시속 60마일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중심가를 질주합니다. 사람이 보이는 쪽으로 돌진해 크리스토퍼 디비스 등 20대 청년 4명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이 사고로 또 다른 1명은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됩니다.

묻지마 식 돌진으로 사람을 죽인 아티아스는 이 자리를 벗어나 도주한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차를 세우고 차 위에 올라서서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죽음의 천사다!” 그는 그 자리에서 체포됐고,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이듬에 판결에서 ‘정신병’이 있다는 점이 감안돼 감옥이 아닌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월드용

이번에 사건을 저지른 로저는 차량 돌진뿐 아니라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차 안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스스로 한 것으로 판단) 숨졌다는 점에서 아티아스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무차별적 살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여학생과의 교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전반적으로 대인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다른 사람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들의 행동에 의해 인간애를 구해낼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아티아스는 자신을 ‘죽음의 천사’라고 불렀고 로저는 자신을 ‘신’이라고 떠들었습니다.

묘하게도 두 사람의 가족 관계에서도 유사점이 발견됩니다. 이번에 사건을 저지른 엘리엇 로저는 한국에도 개봉된 영화 ‘헝거 게임스’의 조감독인 피터 로저의 아들입니다. 2001년 사건을 저지른 아티아스의 아버지는 ‘The Sopranos’ 나 ‘True Blood’와 같은 인기 TV영화를 연출한 대니얼 아티아스 입니다. 대니얼 아티아스는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던 아들에게 지속적으로 약 복용을 권유했지만 아들이 듣지 않았고, 피터 로저도 ‘아들이 정신적으로 불안하다’면서 지난 4월 경찰에게 아들 집에 가 봐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두 아버지 모두 아들을 끔찍이 걱정했지만 근본적이고 강력하게 아들을 보살피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면을 보입니다. 상당히 유사한 두 사건 모두 샌터 바바라의 작은 해변도시 ‘아일라 비스타’에서 일어났습니다. 13년의 시차를 두고 선량한 사람들이 두 미치광이에게 목숨을 빼앗긴 겁니다.

월드용


얼마 전 기자는 미국의 총기 문제에 대해 취재파일을 쓴 적이 있습니다. 내전 상태가 아닌데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총격사건이 일어나는 미국의 근본적 질병에 대해 언급한 적 있습니다. 미국 서부의 아일라 비스타에서 무차별 총격 사건이 일어난 지 하루 만에 미국 동남부의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해안 도시 머틀 비치에서는 총격 사건이 발생해 3명이 숨졌습니다. 이번 총격사건의 희생자 가운데 하나인 크리스토퍼의 아버지는 기자회견을 통해 ‘도대체 이 미친 짓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합니까? 미국 총기협회는 얼마나 더 죽어야만 된다는 겁니까?”라며 울먹이면서 총기 규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미국 사회의 충격은 대단하지만 총기 규제 문제는 또 다시 총기협회의 강력한 로비에 막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또, 인터넷과 SNS 시대, 개인간의 네트워크는 과거에 비할 바 없이 활성화됐지만 그만큼 현실세계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소외감은 더욱 커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언제, 이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지 모를 일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