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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군함에 '짝퉁 부품'…제2의 원전비리

[취재파일] 군함에 '짝퉁 부품'…제2의 원전비리
영화 '신세계'의 한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폭력조직과 사채에서 출발해 제2 금융권과 건설사를 잠식하며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골드문 조직의 2인자인 정청(황정민). '브라더'로 부르는 자신의 최측근 이자성(이정재)에게 중국에서 사 온 명품시계(?)를 건넵니다. 팬더곰이 그려져 있는 도금 시계는 명품시계의 알파벳과 디자인을 빼닮았습니다(?).하지만 짝퉁티가 너무 납니다. 이자성은 그래서 시계선물을 거부합니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장난치려고 했던 설정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뭐 그래도 이른바 짝퉁 시계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창피하면 끝입니다.

시계든 가방이든, 옷이든 이른바 유럽의 명품 브랜드를 모방한 중국산 짝퉁이 판치고 있습니다.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무리 단속해도 짝퉁시장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 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산술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짝퉁가방이라는 게 들통나면 한 번 창피하면 그만이거든요.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정말 황당한 제보였습니다. 가짜 부품이 군함에 들어가고 있다니... 이건 전혀 다른 문제죠. 군함이 뭡니까? 한치앞을 예측할수 없는 첨예한 긴장감이 지금도 감돌고 있는 한반도의 해역을 지키는, 더 나아가 영토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동북아 상황에서 한반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아니겠습니까? 전쟁이나 도발이 없으면 좋죠. 그러나 軍은 일종의 보험입니다. 유사시에 우리 영토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가 운영하는 대한민국의 보호막입니다.

군 전력은 첨단기술의 집약체입니다. 가장 좋은 장비로 성능을 갱신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상대국보다 우리의 화력이 뛰어나야 상대가 감히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오판을 막아주기 때문이죠. 첨단 기술로 제작되는 만큼 예민하고 성능도 우수합니다. 전함의 경우도 일반 배보다 기동성이 우수하고 민첩해야 합니다. 상대에게 타격을 가해고 상대의 공격을 잘 피할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부품은 검증된 최고 제품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첨단기술의 집약체인 군 전력에 짝퉁부품이라니... 이게 가당하기나 한 얘기입니까? 믿어지지 않는 제보라 신빙성이 있는 내용일까 의심스러워 취재자체를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 제법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취재진이 짝퉁부품 의혹을 제기한 군함은 차기호위함 5척입니다. 1호선 '인천함'은 이미 취역했고 마무리 건조작업이 진행중인 나머지 2번함부터 6번함까집니다. 차기호위함은 노후화된 기존 호위함과 호위함보다 낮은 급의 초계함을 대체하는 사업입니다. 10년 안에 20척을 새로 건조할 계획인데 현재 6척만 진행되고 있습니다. 6척은 늦어도 내년까지는 전력화해야 합니다. 3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의 바다 안보에 공백이 생겨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차기호위함이 그럼 어떤 문제가 있느냐? 군함에는 함안정 조타기라는 시스템이 설치돼 있습니다. 거센 파도에도 배의 흔들림을 잡아주는 '함안정' 기능과 군함이 신속하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조타기' 기능을 통합한 첨단 기술입니다.

함안정 조타기는 크게 6가지 시스템으로 분류됩니다. 이 중 하나가 HPU라고 불리는 유압장칩니다. 3천톤에 이르는 묵직한 호위함을 움직이려면 강한 동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동력을 공급해 주는 장치... 그야말로 호위함의 핵심장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취재진이 일단 문제를 제기한 부품은 유압장치내 레벨스위치와 가변용량펌프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방송을 통해 확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간단히 설명드리면 레벨스위치는 시스템의 이상작동을 감지해서 경고 신호를 보내주는 안전장치의 역할, 가변용량펌프는 유압장치의 힘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3천억 원짜리 군함에 '짝퉁 부품'…보증서 위조 기사 보러 가기

군함이든 전차든 조립이 완성되면 '기술교범'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나중에 또 같은 모델의 전력을 생산할때 시행착오를 없애기 위해 만드는 일종의 교과서이자 지침서입니다. 자동차에서 볼트 너트 하나도 조임에 문제가 있어도 문제가 생깁니다. 수만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군 전력에 오류를 최소화 하기 위해 부품도 이렇게 정리해 놓는 겁니다. 부품 생산회사부터 규격까지 정확하게 적혀 있습니다.

부득이하게 부품을 변경해야 할 경우에는 방위사업청이나 원청업체에 형상변경요청을 해야합니다. 사전 변경 요청없이 무단으로 기술교범에 적시된 부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범죄행위입니다.

문제가 된 부품들은 모두 독일산입니다. 국산보다 10배 이상 비싼데 왜 굳이 독일산을 쓸까요? 성능이 검증된 부품이기 때문입니다. 1~2년만 움직일게 아니라 30~50년 동안 사용할 군함이기 때문에 군 전력에 독일산 부품을 쓰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레벨스위치는 국내 공구상가에서 조립한 부품을, 가변용량펌프는 출처가 어딘지 불분명한 괴부품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품을 납품한 업체는 결국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기자에게 되묻습니다. 뭐가 문제가 되냐고 말입니다. 성능에 이상이 없다고 항변합니다.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나라를 사랑합니다. 안보를 지키는데 독일제품이 아니라 국산부품으로 만든 군함이 지키면 더 자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품의 국산화가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독일이 좋아서 독일 부품을 신봉하는게 아닙니다. 저 사대주의자 아닙니다. 10년 안에 중국 처럼 우리 독자 기술력으로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했다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그렇게 부품 성능에 자신있으면 왜 원청업체나 방위사업청에 형상변경요청을 하지 않았습니까? 몰래 부품을 끼워놓고 취재하기 전까지 줄곧 부인하셨습니까? 성능과 기술에 자신있으면 먼저 변경요청을 하고 떳떳하게 국산으로 제작하겠다고 얘기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가변용량펌프는 왜 제품보증서를 위조하셨습니까? 독일 업체의 정품이 맞다면 왜 떳떳하게 독일 본사에서 보증서를 받아 제출하지 않으셨습니까?

유압장치에 들어가는 수입부품들에 대한 수입필증과 거래내역서는 왜 떳떳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성능검사에 통과했기 때문에 기술력에 문제가 없다고 하셨습니까? 그 얘기는 30년 내구력을 장담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는 것인가요? 기술력에 자신있다면 왜 진작 국산화하지 않으셨습니까? 부품 국산화를 어느 국민이 마다하겠습니까?

군함이 아닌 일반 승용차도 고장났는데 약속된 부품이 들어가 있지 않다면 보험처리가 과연 되겠습니까? 계약은 약속입니다. 성능에 대한 논란을 제외하더라도 약속된 대로 정상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그건 국민과 국가와의 약속 위반 아닌가요? 

취재과정에서 문득 든 생각은 이번 방산비리 의혹은 '제2의 원전비리'와 많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부품을 성적서를 위조해 납품하고 이 과정에서 한수원과 업체들간의 리베이트 의혹도 불거지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짝퉁 부품 의혹이 비단 한 업체만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것입니다. 짝퉁부품 납품의 본질은 결국 열악한 협력업체가 마진을 남겨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하청구조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군 뿐만 아니라 육군도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해 육군의 전력까지 취재했다면 과연 짝퉁부품 사태가 어느정도까지 번졌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취재과정에서 확인된 모조 부품 실태는 충격적이었습니다만 차기 호위함에 또 다른 모조 부품은 없는 것인지, 이런 비리 의혹이 비단 차기 호위함과 해군만의 문제인지, 아직 실태 파악조차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취재가 시작되자  방위사업청은 정품 사용 여부와 원가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  특별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조사 범위는 언론이 제기한 한 업체에 대해서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파장을 의식해 전수조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결국 진실규명을 위해선 수사기관이 나서야 합니다. 방위사업청도 짝퉁부품 의혹에서 책임이 자유롭지 않은만큼 조사의 진정성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모조부품 사건은 단순히, 방산업체의 도덕적 해이나  허술한 관리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안보와 국민들의 안전이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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