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지하철이 아직도 지옥철인 진짜 이유

질서를 위해 필요한건 '시민의식'이 아닙니다.

윤나라 기자 invictus@sbs.co.kr

작성 2012.01.14 14:38 수정 2012.01.14 16:0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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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성탄전야였습니다. 부산의 한 지하철역에서 10대로 보이는 청년이 노인에게 막말을 쏟아 냅니다.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냐. 싸우자는거냐". 뜨악한 노인은 도망치듯 지하철에 오릅니다. 노인이 청년에게 건넨 말은 "지하철이 복잡하니 줄 좀 서자."

이 동영상을 보고 지하철 질서, 특히 줄서기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뉴스로 제작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퍼뜩 떠오른 곳은 혼잡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신도림역. 오전 9시쯤 신도림역에 도착해보니 의외로 신도림역은 질서정연하게 줄서기가 잘 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되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저녁 6시쯤부터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하더니 이내 역사 안은 콩나물시루가 됐습니다. 줄서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잡했습니다. 지하철이용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신도림역을 비롯한 몇몇 역은 출퇴근 시간에는 줄서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에 떠밀려 둥둥 떠다닐 정도로 복잡하지요.

왜 그럴까요. 시민의식이 성숙하지 못해서? 아닙니다.

지하철역의 설계상 혼잡함이 극에 달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신도림역 같은 경우 1980년에 지어진 역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3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인 셈입니다. 당시 신도림역의 일일 평균 이용 예상고객은 8만여 명. 설계상 충분히 수용 가능한 인원이었습니다. 하지만, 30년이 흘렀습니다. 주변에 아파트도 생겼고 회사도 많이 생겼습니다. 84년 2호선 환승역이 되면서 이용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도림역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35만여 명. 설계당시보다 4배가 넘게 늘어났습니다. 8만 명을 기준으로 설계된 승강장에 그 4배가 넘는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역사내부의 혼잡은 피할수 없는 일이 됐습니다.



게다가 신도림역을 이용하는 하루35만 명의 승객 가운데 14만 명이 출퇴근 시간에 몰려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종로3가역도 마찬가지라 출퇴근 시간에 하루 이용객의 40%가까이가 몰려있습니다.·하루 평균 이용객의 40%가 출퇴근 시간 2시간 동안에 몰려있는 셈입니다. 예상 이용객의 4배가 넘는 사람이 하루중 2시간에 몰려있다면 역사가 콩나물 시루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서울시와 지하철 운영회사 측에서도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알고 지난 2008년부터 역사 구조개선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넓히고 이동로를 다시 정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우선 신도림역의 개선공사가 내년 완공예정인데요, 지하철 운영사측은 공사완공으로 역의 혼잡도가 크게 낮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든 책임소재를 찾는 것이 원인을 찾는 것보다 쉽고, 간편합니다. '경제가 어려운 원인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은 어렵지만, '경제가 어려운게 누구 때문이냐'라는 질문이 답하기가 쉽지요.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찾지 않고 책임소재만 찾아서는 해결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무질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본바로는, 지하철이 여전히 지옥철인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늦게나마 당국이  지옥철의 책임소재가 아닌 원인을 찾아 해결에 나서서 다행입니다. 저도 출퇴근을 주로 지하철로 하는데요, 내년부터는 조금 더 여유로운 출근길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