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영국이 체벌 허용? '오보'입니다

윤나라 기자 invictus@sbs.co.kr

작성 2011.07.13 15:48 수정 2011.07.13 16:1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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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한 통신사가 영국 교육 당국이 '노 터치' 제도를 폐지한다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영국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신체에 접촉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있는데, 이를 폐지한다는 기사였습니다.

"영국이 학생 체벌을 전면 금지한 노터치 제도를 폐기", "(교사에게) 적절한 수준의 물리력 사용 허용"이라는 문장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통신사는 기사나 사진, 영상 같은 뉴스의 원재료를 언론사에 판매하는 곳입니다. 이 통신사의 기사가 나가자 통신사의 기사를 구입하는 언론사들이 통신사의 기사를 바탕으로 12일 이런 뉴스를 올렸습니다.

"영국, 교사 체벌권 부활" (A신문)
"영국선 체벌금지규정 완화" (B신문)
"영국, 학생체벌 전면금지 노터치제도 포기" (C신문)

통신사와 일부 신문의 기사만 보면 영국 교육당국이 교사에게 학생들을 때릴 수 있는 권한을 다시 부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노터치' 제도는 문자 그대로 교사와 학생의 신체 접촉을 금지하는 제도로, 지난 1998년 영국에 도입된 이래 굉장히 엄격하게 이행돼 왔습니다. 교사들은 학생의 몸에 일절 손을 댈 수 없어, 악기를 가르치거나 격려를 할 때도 팔을 잡거나 어깨를 두드려주는 행동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싸움을 할 때도 싸우는 학생의 팔을 잡아 말릴 수 없었고, 수업 중에 교실에서 소란을 벌이거나 교실에서 뛰쳐나가는 학생을 제지할 수도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싸우면 경찰을 불러 제지할 뿐이었습니다.

영국 교육당국이 '노터치'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은 체벌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신체 접촉을 허락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학생이 싸우면 팔을 잡아 말리고, 마약이나 흉기를 가져온 것으로 의심이 되면 학생의 소지품을 검사할 수 있게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노터치 제도 폐지 후에도 체벌은 여전히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사를 처음 작성한 통신사에서 인용했던 영국 언론(데일리 메일)의 기사와 영국 교육부에서 내놓은 자료에도 체벌을 허용한다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통신사의 기사를 인용해서 기사를 작성할 때 이런 문제가 종종 발생합니다. 통신사의 취재 내용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을 거치지 않으면 원문의 맥락을 놓치기 쉽습니다. 이번에도 처음 기사를 작성한 통신사에서 해외 언론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고, 다른 언론사들이 그 실수를 미처 바로잡지 못해서 결국 오보가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불과 한 달 전에도 이와 비슷한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허핑턴 포스트>라는 인터넷 언론사에서 빈 라덴의 일기를 입수했다며, 빈 라덴이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포르노를 즐겨봤으며 자신의 탁자를 망가트린 이삿짐 업체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사실은 미국의 한 코미디언이 웃자고 올린 거짓 일기장이었지요. 그런데도 국내 여러 언론사가 이 내용이 마치 사실인양 기사를 올리고 결국 정정기사를 올리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거짓 일기를 올린 개그맨은 트위터에 '내 개그를 한국의 언론사들이 기사로 보도하고 있다!'는 비아냥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보다 명확한 사실 확인이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때려서 가르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보고도 쉽게 믿어지지가 않아, 원문을 찾아보고서야 원문과 기사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래 그림은 유럽 국가들의 체벌 허용 여부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출처 : 세계아동체벌금지기구/ http://www.endcorporalpunishment.org/pages/pdfs/charts/Chart-Europe-CentralAsia.pdf)

 

초록색으로 표시된 나라는 가정과 학교에서 모두 체벌을 금지한 국가, 파란색은 학교에서 체벌을 금지하는 국가, 붉은색은 체벌에 대한 법적인 금지 조항이 없는 국가입니다.

체코와 프랑스가 붉은색이지만 이 나라들도 법적인 금지조항이 없다뿐이지 사회적으로 체벌이 용인되는 국가는 아닙니다. 영국 역시 체벌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로 표시돼 있습니다.

다만 영국이 노터치 제도를 폐지한 것에서 교육환경 개선에 대한 교육당국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영국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신체접촉을 금지한 이후 몇 년 동안 학교 분위기가 많이 살벌해졌다고 합니다.

2010년에는 2009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하루에 약 천여 명의 학생이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켜 정학 등의 행정 처벌을 받았습니다.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성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교육당국이 학생들을 제지할 수 있게 '노터치' 제도를 폐지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주먹을 휘두르는 학생의 팔을 잡아 싸움을 막고, 교실에서 난동을 부리는 학생을 선생이 잡아 말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국은 여전히 아이들을 때려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국 교육부 장관인 마이클 고브가 '노터치' 제도의 폐지를 언급하며 덧붙인 한마디에 교내 비폭력에 대한 영국의 의지가 묻어납니다. "나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http://www.bbc.co.uk/news/education-11458137)

30여 년 전부터 체벌의 한계를 인식하고 대안을 찾아온 영국 교육계의 고민이 어떤 해답을 찾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