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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연가 - 비로소 대학로가 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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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 만나는 마로니에 공원은 생기 없는 창백한 모습이다. 찬바람이 부는 날이면 공원은 왠지 스산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마로니에 공원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마로니에 공원 안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뚝딱 뚝딱’ ‘아. 아. 한나~ 두울~ ?! 한나~ 두울~ ?! 마이크 테스팅 마이크 테스팅’,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마이크 에코 소리처럼 공원에 울려 퍼지고,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놀러 온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재잘 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그 분주한 울림 사이를 비집고 졸졸졸 흐른다. 주말의 마로니에 공원은, 들떠 있다.

영하의 온도까지도 내려갔을 차디 찬 벤치들도 지금은 빼곡히 앉아있는 사람들의 체온으로 후끈 달아오른 듯 보인다. 찰칵, 찰칵, 찰칵. 마로니에 공원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려온다. 마로니에 공원을 경비병처럼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 옛 서울대 본관 건물이었던 문화예술위원회 그리고 아르코 미술관과 아르코 예술극장의 붉은 벽돌들이 카메라 플래시에 번쩍인다. 그때, 와~ 하는 환호와 박수 소리가 나를 그 붉은 벽돌의 공간으로 끌어당긴다.

사람들. 검정색 둥근 점들이 수북이 쌓인 듯 아르코 예술극장 앞마당에는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그리고 그 검은 머리들 너머, 까무잡잡한 얼굴의 한 사내가 통기타를 어깨에 둘러맨 채 좌중을 휘어잡고 있다. 한 때는 TV 브라운관에서 볼 수 있었던 개그맨. 그다지 큰 인기를 얻지 못해 소리 없이 TV 브라운관에서 프레임 아웃됐던 그 사내다. 그가 내 뱉는 말 한 마디에 까르르 웃음이 번지고, 그가 부르는 노래에 박수가 이어지고,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들이 터진다. 기타소리, 말소리, 웃음소리, 박수소리, 셔터소리가 떠들썩한 대학로의 주말 오후가 간다. 어느새 석양빛이 아르코 예술극장의 붉은 벽돌에 드리워졌다. 그리고 붉은 벽돌 위로 보이는 글귀가 눈에 내 눈이 박힌다.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

대학로는, 사람들이 있어야 대학로다. 관객이 있어야 연극이 비로소 존재하듯 대학로도 사람들이 있어야 비로소 대학로다. 운집해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나는 파노라마처럼 나의 시선을 돌려본다. 마로니에 공원, 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미술관, 아르코 예술극장, 그리고 이 공간을 조성했을 사람들을 떠올린다. 30여 년 전, 문화예술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그 사람들의 노력들이 만들어낸 공간 대학로에 지금 사람들이 ‘놀고’ 있다. 어쩌면 아르코 미술관과 아르코 예술극장을 지었던 작고한 건축가 김수근은 이 ‘놀고’있는 사람들을 보며 ‘웃고’ 있겠지, 생각해 본다.

사람들이 노는 공간 대학로는 사람들이 만들었다. 뉴욕의 브로드웨이처럼, 런던의 웨스트엔드처럼 사람들이 놀 수 있는 문화 예술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그런 사람들에 의해 대학로는 조성되기 시작했다. 생각과 뜻은 있었지만 철저히 계획된 시나리오는 없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우연히, 하나씩 하나씩,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갔다. 학문의 공간 숭교방, 젊은 유생 그리고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던 악인(樂人)들이 살았던 터는 젊음과 예술의 공간 대학로로 만들어져 갔다.

대학로가 지금이 대학로서의 모습을 갖춘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 모른다. 필연(必然). 그리고 그 필연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동으로, 예술의 공간 마련이라는 주제의식을 향해 일관되게 진행돼 온 하나의 작품이었다.

대학로의 태동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스팔트 주욱 깔린 지금의 대학로 거리에는 ‘대학천’이라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당시 서울 대학생들은 그 개천을 ‘세느강’이라 불렀다. 그 세느강 위에는 조그마한 다리가 놓여 있었다. 대학생들은 그 다리를 ‘미라보 다리’라고 불렀다. 젊은이들은 그 미라보 다리를 건너 ‘학림다방’에 모여 젊은 날의 열정과 울분을 함께 나눴다. 1970년대 대한민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는 동숭동 서울대학교는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중심에 서 있었다. 대학로는, 특히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된 이후로는 '유신철폐'의 함성으로 들썩거리던 데모의 거리였다고 한다. 

대학로는 그 암울했던 시절에 잉태되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은 눈엣가시 같았을 서울대학교를 저 멀리 관악산 골프장으로 옮겨 버린다. 졸지에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야만 했던 당시 대학생들에겐 슬픈 일이었을 것이다. 군대에 갔다 복학한 학생들은 새로운 교정을 낯설어 했고 동숭동을 그리워했다. 몇몇 학생들은 서울대학교가 관악 캠퍼스로 이전했어도 만남은 동숭동에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박정희 정권에 의한 서울대학교의 이전은 지금의 대학로라는 공간이 탄생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말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일까? 

서울 한복판에 갑자기 넓은 빈터가 생겼다. 그 때는 지금처럼 강남이 개발되지 않았던 터라 광화문과 종로를 중심으로 한 강북 일대가 서울의 중심이었다. 그야말로 서울의 중심지에 금싸라기같은 빈 터가 생겨난 것이다. 1970년대는 개발이 지상 최대 과제였던 시기였던 터라, 서울시는 이곳을 고급 주택지구로 만들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래서 서울대 문리대-지금의 마로니에 공원 부지-일부만 빼고 나머지 땅을, 서울시는 주택공사에 판매했다. 그리고 주택공사는 그 땅을 다시 120평씩 나눠 평당 3만원씩, 한 필지에 360만원에 일반 분양에 들어갔다고 한다. 후일 대학로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축가 김수근씨도 이 때 한 필지를 구입했다.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인 연극 연출가 임영웅씨도 당시 극장 부지용으로 한 필지를 사려고 했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하고 그 뒤 홍대 앞 ‘산울림’으로 갔다.

서울시의 계획대로 일이 그렇게 진행되었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동숭동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을 것이다. 그렇게 됐더라면 아마 지금쯤은 재개발 바람이 불든지 아니면 이미 재개발에 들어가 더 높고 세련된 아파트가 들어섰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대학로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다른 어느 대학의 앞길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됐을 것이다.

하지만, 반전(反轉)! 서울대학교 건물들이 부서지기 시작할 즈음, 문화 예술인들에 의한 반전이 시작됐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이 조성돼야 한다면서 서울시의 계획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결과물은 문예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학로 입성이었다. 당시 문예진흥원 사무총장이었던 최창봉씨는 블도저 앞에 놓인 서울대본관 건물이 부서지는 것을 막고 나선다. 서울대본관 건물은 한국 건축계의 선구자로 평가받은 박길룡씨가 설계한 건축물로 지금은 사적 278호로 지정돼 있는 의미있는 건물이다. 최창봉씨는 당시 다른 건물에 세 들어 있는 문예진흥원이 서울대 본관 건물에 들어가겠다고 제안한다.

군인 출신이 대통령인 박정희 정권 시절은 사회 어디에서나 군인 출신들이 실세였고 큰 소리 치는 시대였다.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구자춘씨도 1961년 5.16 군사정변 2년 뒤인 1963년 대령으로 예편한 군인 출신이었다. 최창봉씨는 50년대 군대에 있었고 군 시절 군 방송 일을 했던 일찍 예편한 정훈장교 출신이었다. 훗날 KBS를 거쳐 MBC 사장까지 지낸 그는 우리나라 방송의 선구적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어떻게 해서 최창봉씨가 그의 제안을 설득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예진흥원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서울대본관 건물에 드디어 입성하게 된다. 1976년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서울시는 서울대 문리대 교정을 공원으로 지정한다. 문리대의 상징수였던 마로니에 나무의 이름을 따서 공원 이름은 마로니에 공원으로 명명했다. 대학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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