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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역사 견뎌왔는데…숭례문 610년 수난사

<8뉴스>

<앵커>

숭례문은 조선 왕조의 수도 한양의 정문으로서 6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만큼 위기의 순간들이 많았는데 숭례문의 수난의 역사는 이상엽 기자가 보도해드립니다.

<기자>

숭례문은 오랜 세월의 풍파와 숱한 전란의 격변기를 거치며 민족의 상징이자 자부심으로 자리 잡아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10년 전에 한양의 정문으로 완성된 이래 숭례문은 그야말로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 격동기의 희생물이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도성 안의 다른 건물들처럼 파괴되거나 불에 타는 위기는 넘겼지만, 현판이 분실되는 사고를 겪기도 했습니다.

없어진 현판은 광해군 때 발견돼서 다시 숭례문에 내걸렸습니다.

그 뒤 1907년 일본 왕세자가 숭례문을 통과를 위해, 양쪽의 성곽을 허물고 도로를 내면서 숭례문은 고립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전역이 잿더미로 변했던 한국 전쟁 때에도 누각과 성곽 곳곳이 부서지고 그을리긴 했지만, 다행히 숭례문은 대체로 무사했습니다.

전쟁 중이던 1952년 대대적으로 중수됐고, 1963년에는 피해 복구를 위해 건물을 전면 해체한 뒤 지금 모습으로 다시 세웠습니다.

[강찬석/문화유산연대회의 대표 : 조선시대 초기 때에 지은 다포양식의 건축 양식이 거의 대부분이 잘 남아있는 건물이에요. 그게 이제 소실이 됐으니까 조선시대 초기 때의 다포양식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죠.]

그러나 600년을 버텨온 상징은 하룻밤새 시민들의 눈앞에서 잿더미가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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