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씨는 "아이들은 존중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행복을 느낀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집이 행복한 집이 아닌가싶다"고 답했다.
누가 누구를 진심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하물며 가족 사이에서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즐거운 나의 집>에는 행복이란, 아니 행복한 상태란 뭘까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들이 곧잘 등장하는데, 그 중 한 대목이다.
'할머니는 잠깐 생각을 하는 듯 망설이더니 말했다.
"참 이해가 안 가는구나. 마누라 있고 딸자식 있고
어쨌든 너도 에미에게 가서 잘 적응하고 있고 그런데 뭐가 안 행복하냐?.....
나는 노인정에서 광 팔고 나서 다른 사람들 열심히 화투치는 동안
뜨듯한 바닥에 등 대고 누워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던데."'
공지영씨는 이 말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시어머니가 했던 말이라고 했다.
공지영씨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까?
얼마전 동인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은희경씨는 “살아가면서 늘 나를 힘들게 하는 나의 비관에 감사합니다." 라고 한 것처럼 작가라고 하면 왠지 섬세,예민하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할 것 같지만 공지영씨는 좀 다른 부류의 사람인 것 같다.
그가 작가로서 섬세, 또는 예민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그는 스스로를 훌훌 잘 털어버리고 담아두지 않는 스타일인 것처럼 말했다.
이를테면 문학 평론가들은 공씨의 소설을 그리 높이 쳐주지 않는데, 이에 대해 공씨는 "나는 나를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안쳐다본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만 보고 산다." 고 받아치는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 공지영씨가 요즘 질투하는 작가가 한 사람 생겼다고 했다.
뜻밖까진 아니지만 바로 해리포터를 쓴 조앤 롤링이다.
공지영씨는 그동안 사회학적으로 너무 억압받아서 상상력이 제약됐지만 자기가 어차피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못받기 때문에 다른 유명 작가에 비해 자유롭다면서(^^) 미지의 영역으로 나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래전부터 추리소설을 한번 써볼까 생각해왔다고 했다.
** 상상력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떤 기업에서는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이 너무 실무와 현업을 잘 파악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실무를 너무 많이 알면 상상력이 제약되기 때문이란다.
기자도 그런 측면이 있다. 대충 알면 쓰기 부담없는 것도 알면 알수록 어려워진다.
다 이해되고 기사 안되고 그런다.
다큐 몇 편 연출하면서도 비슷한 걸 느꼈는데, CG고 촬영장비고 편집 장비고 간에 기술적인 측면을 많이 알면 도움이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긴 한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스스로 제약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