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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삼바 분식회계' 기소, 그 이후

[취재파일] '삼바 분식회계' 기소, 그 이후
지난주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옛 삼성 미래전략실 고위 관계자 등 11명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1년 9개월의 수사 끝에 검찰은 이들이 이 부회장의 효율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다양한 불법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기소 이후 극단의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와 박용진 의원 등 삼성 경영권 승계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이들은 "사필귀정"이라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반면 일부 학자들과 경제 관련 매체에서는 "기소를 위한 기소", "회계를 이해하지 못한 검찰의 무리수"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삼성 측도 장문의 입장문을 내 검찰의 기소 결정을 맹렬히 비판했습니다.

논쟁은 특히 이번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 수사의 출발점,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를 두고 더욱 치열합니다. 지난 2018년 11월,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가 '고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1차 판단을 내린 뒤 주식 거래가 정지되면서 투자자들은 이미 한 번 지옥과 천당을 오갔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그늘을 뒤로하고 삼성바이오 주가가 주식시장에서 다시 불을 뿜은 상황 속, 검찰 기소 결정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때문에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검찰이 기소한 삼성그룹의 불법 혐의들 중,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합니다. ▲우선 1년 9개월의 수사로 검찰은 무엇을 더 밝혀냈다고 하는 것인지, 그리고 삼성은 무엇이 억울하다고 하는 것인지 추가 취재된 내용을 통해 상세히 짚어보겠습니다. ▲또 곧 시작될 삼성의 '법원의 시간'에서 눈여겨봐야 할 관전 포인트들을 짚어본 뒤, ▲이번 사건 수사와 기소가 던지는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2018년 11월 증권선물위원회의 결정 배경은 아래 SBS 정혜경 기자의 [취재파일] 풀어 쓴 '분식회계 서사시'…삼성바이오 남은 쟁점은에서, '삼바 분식회계' 검찰 고발 뒤, 경영권 승계 의혹과 함께 이뤄진 검찰 수사 상황은 아래 SBS 임찬종 기자의 [취재파일] 삼바 분식회계 의혹은 '이재용 승계'의 마지막 퍼즐인가?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 檢 "14년도 콜옵션 공시도 허위 공시"…처음부터 '삼바'는 에피스 지배권 없었다?

그간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논란은 주로 2015년도의 회계기준 변경을 둘러싸고 전개돼왔습니다. 삼성바이오가 '종속회사'로 두고 있었던 삼성바이오에피스 (이하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하면서 자산가치 '뻥튀기'를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었습니다. (이 부분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서도 다루겠지만, 글 서두에 언급한 취재파일에 좀 더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2018년 금융감독원 조사와 증권선물위원회의 거래정지 결정에서도 이 부분이 주되게 다뤄졌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시간표를 1년 더 앞당겨 2014년도 공시부터 공소 논리를 전개합니다. 2014년도 삼성바이오 재무제표 주석에 언급되는 '콜옵션' 공시부터가 고의로 이뤄진 '허위공시'라는 게 검찰 주장입니다. 2015년도 회계기준 변경이 분식회계가 되는 것도 이 2014년도 '허위공시'와 연관이 있다는 게 검찰 논리입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2015년 4월, 삼성바이오는 전년도인 2014년도 재무제표를 공시할 때 주석에 '에피스 콜옵션' 존재 사실을 처음으로 기재합니다. 2015년 4월 1일자로 공시된 삼성바이오의 연결감사 보고서 재무제표 주석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28. 우발부채와 약정사항
28-1 Biogen Idec Therapeutics Inc.은 지배기업과의 주주간 약정에 따라 종속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을 49.9%까지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합작사인 미국의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 종속기업인 에피스 지분 49.9%를 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내용의 콜옵션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삼성바이오가 공시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이게 왜 허위라고 주장하는 걸까요?

검찰 조사에 따르면, 삼성바이오가 미국 바이오젠에게 준 권리는 이 콜옵션뿐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글로벌 제약시장에 처음 뛰어든 삼성은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에피스 합작을 함께한 바이오젠에게 그 대가를 줘야 했고, 에피스가 소위 '대박이 터져' 가치가 올라갔을 때 행사할 수 있는 '콜옵션' 외에도 '다른 선물'들을 더 줬다는 겁니다.

검찰은 이 '다른 선물'들로 ▲50% 이상이면 주총 결의를 통과하는 통상의 경우와는 달리 52% 동의가 있어야 주총 의결이 되는 조항,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땐 바이오젠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항 등을 들었습니다. 공시만 보면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더라도, 삼성바이오는 지분 50.1%를 여전히 보유한 최대주주로 지배권을 갖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정 반대로, 이 '다른 선물'들 때문에 삼성바이오가 에피스의 실질적 지배권을 처음부터 갖지 못했다는 게 검찰 공소 논리의 핵심 토대입니다.

요컨대 검찰의 논리는 '공시된 콜옵션은 수면 위에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빙산의 본질과도 전혀 다른 조각'이라는 것입니다. 빙산의 일각만, 그것도 빙산의 본질이라 볼 수 없는 것만 뽑아 공시했으니 '허위공시'라는 주장입니다.

이재용, 17시간 30분 조사..여전히 혐의 부인

● 콜옵션 공시, '고의' 있었나?…檢 "고의 물증 있다" vs 삼성 "재판 가서 보자"

하지만 이러한 검찰 논리가 맞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재판에 넘겨질 만한 '범죄'가 되려면 '고의'가 입증돼야 합니다. 바이오젠의 '콜옵션' 존재만 공시하고 바이오젠에게 줬던 '다른 선물'들은 빼놓는 방식으로, 삼성바이오가 에피스 지배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투자자들을 속일 '고의'가 있었느냐는 겁니다.

검찰은 이 고의를 '물증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삼성 그룹 차원에서 고의를 갖고 이러한 '허위 공시'를 지시한 '물적 증거'를 수사 과정에서 확보했다는 겁니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 그룹 차원에서 삼성바이오에 콜옵션 공시 관련 지시를 내렸음을 보여주는 문서 형태의 직접 물증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물증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앞둔 삼성 그룹이 에피스 콜옵션 공시에 따르는 충격을 줄이고자 내린 세세한 지시가 담겼다는 게 검찰 설명입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논란이 많은 사안에서 진술 외에 직접적인 물증이 없었다면 기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성 측은 검찰이 기소를 위해 일종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그러면서, 검찰이 갖고 있다는 '물증' 대부분이 이미 대검 수사심의위에서 근거 없다는 판단을 받았다며, 법정에서 모두 반박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아직 검찰이 이 물증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장외 공방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앞으로 열릴 재판 과정에서 이 허위 공시의 고의를 입증할 '물증'이 존재하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지켜보는 게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앞서 설명드렸듯, 이 14년도 허위공시의 '고의' 부분은 검찰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를 구성하는 논리의 중요한 주춧돌입니다. 삼성 말대로 검찰의 물증이라는 게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에도 기소 결정을 한 검찰을 향해 재판 내내 공소권 남용 비판이 제기될 겁니다. 반면 검찰이 법정에서 공개할 '물증'이 이 14년도 허위공시의 '고의'를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라면, 거대 경제 권력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의 정당성은 분명 평가받아야 할 겁니다.

● 논란의 '회계기준 변경'…검찰이 이재용까지 공범으로 기소한 이유는?

다시 이번 수사의 시작이었던 삼성바이오의 '회계기준 변경' 주제로 돌아오겠습니다. 삼성 바이오가 지난 2018년 증선위로부터 '분식 회계' 판정을 받은 데에는 '내부자 문건'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박용진 의원이 원본을 공개한 이 문건에는 '회계기준 변경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삼성 주장과는 다른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2015년 11월 작성한 걸로 추정되는 이 문건은 미국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 자회사 에피스에게 가진 콜옵션이 회계상 '부채'로 잡히는 점을 우려합니다. 부채로 잡히는 콜옵션 평가 금액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삼성바이오가 완전자본잠식 상태의 부실 기업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문건에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있지는 않지만, 이 경우 당시 이미 성사됐던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에 논리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자본잠식으로 평가된 삼성바이오의 모회사, 제일모직의 가치가 실제로는 산정된 합병 비율보다 낮은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건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으로 '회계기준 변경'을 제시합니다. 에피스가 장부가액으로 가치 평가를 받는 '종속회사'에서 시중 가액으로 평가받는 '관계회사'로 변경되면, 자산 평가 가치가 훨씬 커집니다. 때문에 콜옵션을 '부채'로 반영하더라도 에피스를 소유한 삼성바이오는 외려 이익이 나는 우량 회사가 되고, 삼성바이오 모회사인 제일모직 가치 평가에도 문제가 없어진다는 묘책입니다. '회계 기준 변경은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삼성 측 논리가 내부 문건으로 반박되면서 2018년 증선위도 삼성바이오의 회계기준 변경이 '분식 회계'였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삼성물산 합병 의혹 이재용 구속영장 청구

검찰 수사에서도 이 내부 문건은 중요한 자료가 됐습니다. 그런데 검찰 기소 논리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갑니다. 추가로 확보한 압수수색 자료와 관계자 진술을 토대로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종속회사'로 처리한 것부터 문제라는 걸 입증할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주장입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이 분식회계 혐의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이 공범으로 적시됐다는 겁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 저 높은 곳에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이렇게 세세한 회계처리까지 관여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 기소 이후 삼성 측과 일부 학자들에게서 나오는 비판입니다.

검찰은 에피스 설립 과정에 대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런 비판을 돌파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초기만 해도 글로벌 시장에서 '듣보잡'이었던 삼성바이오는 바이오젠의 합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콜옵션' 외에 앞서 설명한 '다른 선물'들을 제시했는데, 검찰은 이 '다른 선물'들을 실질적으로 고안해 낸 사람이 바로 이재용 부회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콜옵션은 물론 이 '다른 선물'들 때문에 삼성바이오는 에피스를 온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걸 그룹 최고위층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결론입니다. 때문에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온전한 지배력이 미치는 '종속회사'로 처리한 것부터가 '고의 분식'의 시작이었다는 게 검찰 시각입니다. 또 이렇게 에피스 설립 과정에서부터 세세한 관여를 해 온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바이오 회계기준 변경에 대해 몰랐다는 건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검찰의 논리입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12명의 회계 전문가들 의견을 방어 논리로 제시합니다. 검찰이 이런 저런 논리의 연결고리를 이어서 '분식회계'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는 회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다는 겁니다. 우선 에피스를 처음에 '종속회사'로 둔 것에 대해 삼성 측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에피스 실적이 없던 2012년~2014년 기간 동안에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일도 없었고, 따라서 사실상 삼성바이오가 단독 지배하는 형태로 볼 수도 있다는 논리입니다.

또,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기준을 변경한 것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평가'를 내릴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법 위반'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주장도 펼칩니다. 대표적인 게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의 의견입니다. 이들에 따르면 국제 회계기준(IFRS)와 이를 차용한 한국형 국제 회계 기준(K-IFRS)는 회계 처리의 원칙과 근거만을 제시할 뿐, 모든 상황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을 사전에 마련해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때문에 상황에 따라 회계 전문가들이 논의와 토론을 거쳐 회계 처리 방식의 '케이스'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이 사안에 대해 검찰이 칼로 무 자르듯 '법 위반'이라 판단하고 기소하는 건 일종의 폭력이라고 지적합니다.

서울중앙지법

● 곧 시작될 삼성의 '법원의 시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들

복잡한 사안에 대한 기소 결정이 내려진 뒤, 여론전에서 오가는 말들은 양 극단에 치우쳐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이재용에게 법정 최고형을" 외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검찰 기소 내용 어느 하나도 소설이 아닌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경제도 어려운데 삼성을 이렇게 다뤄도 되나 싶은 우려와, 언제까지 삼성은 치외법권에 있어야 하느냐는 지적이 공존합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진실은 이 극단 사이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그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어떤 의미를 찾느냐는 것입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수많은 '동학 개미'들이 금융지식을 습득해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개인 매수세가 들어오면 주식 팔아라'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됐습니다. 한국의 금융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금융 시장과 개인의 운명이 동기화되는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 공시되는 기업정보가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지는 단순히 도덕과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됐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오기업이 된 삼성바이오가 어떤 과정을 거쳐 공시를 했는지, 공개되는 증거들에 대해 법원은 물론 시민들이 냉철한 눈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자본시장은 물론, 점점 더 금융시장과 많이 연결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정입니다.

개혁의 맞바람을 맞고 있는 검찰에게도 삼성의 '법원의 시간'은 중요합니다. '검찰은 대부분의 수사권을 내려놓고 기소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하라'는 검찰 개혁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상당수 검찰 구성원들은 '특수수사 역량이 사라지면 거악을 척결할 수 없다'고 반박해왔습니다. 이복현, 김영철, 최재훈 등 검찰이 자랑하는 검사들이 재판 과정에서 공개할 수사 내용들은 검찰 특수수사 존재 이유에 대한 하나의 가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직 재판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정해졌습니다.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의 '법원의 시간'은 공교롭게도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부장판사)에서 흘러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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