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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삼바 분식회계 의혹은 '이재용 승계'의 마지막 퍼즐인가?

삼바 사태 이해를 위한 매뉴얼

[취재파일] 삼바 분식회계 의혹은 '이재용 승계'의 마지막 퍼즐인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엄청난 사건입니다. 증권선물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분식회계 규모가 4조 5천억 원이 넘습니다. 검찰 수사와 재판을 거쳐 혐의가 확정된다면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갈 것이고 주식시장도 큰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 분식회계 의혹에 관심이 더욱 집중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위한 경영권 승계작업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의혹입니다. 특히 검찰은 삼바 분식회계가 '승계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이었다는 의심을 가지고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뜻 보기엔 동떨어진 두 개의 사건으로 보이는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 사이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요? 이 취재파일에서는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를 최대한 상세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워낙 복잡한 내용이라 의혹을 설명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사안의 연결고리로 지목되는 '콜옵션'이 삼성 승계작업과 삼바 분식회계 의혹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중심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승계작업'은 어떤 관계인가?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 사이 관련성 의혹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삼성은 적어도 2015년 삼성물산 합병 이후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된 콜옵션을 장부에 부채로 계상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증선위 판단에 따르면 분식회계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콜옵션을 삼성물산 합병 이전에는 장부에 부채로 계상하지 않았던 이유가 석연치 않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한 비율로 상성물산을 합병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전체 경영권을 강화하려는 작업, 이른바 '승계작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고의로 콜옵션을 은폐한 것 아닌가?"

이 문장이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배경과 맥락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삼바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보도가 중요성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 이 때문입니다. 단편적 사실에 대한 기사는 종종 나오지만, 복잡한 배경과 맥락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면 삼바 분식회계 의혹의 온전한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삼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됐다는 의심을 받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작업'에 대한 배경 설명부터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제일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은 2015년에 성사된 삼성물산 합병입니다.
※ 용어 설명

'승계작업' : 승계작업이란 박영수 특검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에 대해 기소하면서 제시한 개념입니다. 특검팀은 승계작업이라는 개념을 "최소한의 이재용 부회장 개인자금을 사용하여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들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하여 사실상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일련의 작업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특검팀은 '승계작업'을 도와달라는 것이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네며 부탁한 "부정한 청탁"의 내용이라고 규정했습니다.(제3자 뇌물죄 적용) 이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1심과 2심, 그리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재판부는 '승계작업'이라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2심 재판부는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삼성 그룹 내부에 승계작업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이제 대법원에 맡겨져 있습니다.
삼성바이오 ·삼성물산 · 제일모직
● 분식회계 의혹과 승계작업…2015년 삼성물산 합병의 중요성

2015년 5월 26일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모직과 (옛)삼성물산의 합병 추진계획이 발표됩니다. 핵심은 '적정 합병비율'이었습니다. 합병은 말 그대로 두 회사를 합쳐서 하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두 회사 주식의 가치를 각각 어느 정도로 평가할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제일모직 주식은 1주당 100원으로 평가되는 것이 정당하고, (옛)삼성물산 주식은 1주당 200원으로 평가되는 것이 정당하다면, 합병 이후 제일모직 주식 1주를 가진 주주가 통합된 회사의 주식 1주를 가져갈 때, (옛)삼성물산 주식 1주를 가진 주주는 통합된 회사의 주식 2주를 가져가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제일모직 주주들 입장에선 제일모직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것이 유리하고, (옛)삼성물산 주주들은 정반대 입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합병 계획을 발표한 시점에 정해진 제일모직과 (옛)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0.3500885였습니다. 삼성물산 주식 1주의 가치가 제일모직 0.35주의 가치와 같다는 뜻입니다. 제일모직 1주의 가치가 삼성물산 1주의 거의 3배에 달한다고 정해진 것입니다. 참고로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일모직 가치가 높게 평가되면 당연히 이 부회장에게는 유리합니다. (※ 이 부분은 전체 사건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꼭 기억해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문제는 이 합병비율을 제일모직뿐만이 아니라 (옛)삼성물산 주주들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 반대에 부딪힌 합병 계획…구원 투수로 나선 국민연금

(옛)삼성물산 주주 중 일부는 거세게 합병에 반대했습니다. 합병비율이 제일모직 주주에게 너무 유리하고 (옛)삼성물산 주주에게는 불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옛)삼성물산 주식을 소유하고 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합병에 강하게 반대했고, 국제적인 투자자문회사인 ISS도 합병비율이 (옛)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을 추진해서, 삼성그룹 전체 지배구조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회사인 삼성물산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높여, 그 결과로 그룹 전체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계획 아니냐'는 비판이 이때 이미 나왔습니다. 결국 삼성은 2015년 7월 17일 (옛)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반대세력과 표 대결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 합병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을 한 기관이 국민연금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은 당시 (옛)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습니다. 국민연금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합병 성사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국민연금은 2015년 7월 17일 (옛)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삼성의 손을 들어줬고, 삼성물산 합병은 성사됐습니다.

국민연금은 왜 삼성의 손을 들어줬던 것일까요? 국민연금은 주주총회가 열리기 1주일 전인 2015년 7월 10일 내부 투자위원회를 열어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표를 던지는 결론을 확정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국민연금 리서치팀장은 두 회사가 발표한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조금 불리해 보일 수 있지만,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감안하면 불리함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취지로 보고했습니다. 회의 결과 투자위원 12명 중 8명이 합병에 찬성하고, 1명은 중립 의견을 내고, 3명은 기권(사실상 반대)해서 합병 찬성 결론이 확정됐습니다.
국민연금
●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미스터리

2017년 초 국민연금 홍완선 전 본부장을 기소한 박영수 특검팀은 투자위원회 회의에서 리서치팀이 보고한 '시너지 효과'가 사실상 조작됐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시너지 효과에 앞서 살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2015년 당시 국민연금이 작성한 "제일모직/삼성물산 적정가치 산출 보고서(2015.07.10)"에는 합병비율에 대한 4개 기관의 의견이 인용돼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국민연금 내부 리서치팀이 산출한 적정 합병비율과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한 국제적 투자자문회사 ISS가 산출한 적정 합병비율이 먼저 인용됐습니다. 여기에 안진 회계법인이 산출한 적정 합병비율과 삼정 회계법인이 산출한 적정 비율도 적혀있었습니다. 네 기관은 적정한 합병비율로 볼 수 있는 수치의 범위를 각각 제시했는데, 결론적으로 삼성이 제시한 합병비율 1:0.35는 ISS를 제외한 3곳이 제시한 적정 합병비율 범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 ISS는 삼성이 제시한 수치와 한참 벗어난 수치를 적정 합병비율로 제시했습니다.)

결국, 특검이 조작됐다고 지적한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없었더라도 삼성물산 합병비율은 ISS를 제외한 다른 3곳의 의견대로라면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의 비율이었던 것입니다.

(※ 물론 허용 범위라는 것과 합병에 찬성하는 것이 국민연금에 이익이 된다고 말하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홍완선 전 본부장에 대한 1,2심 판결문에 따르면 2015년 당시 투자위원 상당수는 시너지 효과에 대한 리서치팀의 설명이 합병 찬성표를 던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고 합니다.)

● 여전히 남는 문제 : 제일모직 가치는 정상적으로 평가됐나?

문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진 이후 (특검이 조작됐다고 지적한 '시너지 효과'는 논외로 하더라도) 삼성물산 합병비율의 기초가 되는 제일모직의 가치 평가 자체가 애초에 잘못 계산된 것이었을 가능성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제일모직과 (옛)삼성물산의 적정 합병비율을 찾기 위해서는 당연히 제일모직의 가치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전제돼야 합니다. 제일모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제일모직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들의 가치를 따져봐야 하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자회사입니다. 당연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는 제일모직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만약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막대한 규모의 부채를 가지고 있다면 제일모직의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고, 제일모직과 (옛)삼성물산 사이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주주에게 불리한 범위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제일모직에 대한 가치평가가 낮아지면 제일모직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던 이재용 부회장은 불리해집니다.

● '부채'가 빠진 채로 평가된 제일모직? : 콜옵션 문제

그런데 증권선물위원회는 2018년 11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분식회계 혐의로 고발하면서 2015년 합병 이전에 이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장부에 부채로 표시했어야 할 '무엇인가'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이 '무엇인가'가 서두에서부터 이야기했던 삼성바이로직스 관련 '콜옵션'입니다.

증선위는 주주총회에서 합병이 결정된 2015년 7월 17일 이전에도 이 콜옵션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장부(재무제표)에 부채로 기록됐어야 하는데 기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증선위 주장대로 2015년 7월 이전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재무제표에 부채로 기록됐다면, 삼바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제일모직의 가치도 낮아졌을 것이고. 제일모직과 (옛)삼성물산의 적정 합병비율은 당연히 실제 성사된 것보다 더 불리한 방향으로 계산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에게 불리한 방향입니다. 하지만, 삼바는 콜옵션을 장부(재무제표)에 부채로 반영하지 않았고, 제일모직은 가치평가가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콜옵션'은 무엇이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돼 문제가 된 콜옵션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콜옵션은 주식 같은 기초자산을 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삼성전자가 A라는 스타트업에 1억 원을 투자했다고 가정합시다. 당시 A라는 스타트업의 주식(지분) 100%는 전체 가격이 1천만 원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A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1억 원을 투자하면서, 대신 특정 시점에 A회사의 주식 50%를 1억 원에 사들일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습니다. A 회사의 현재 가치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대신, 성장 이후의 과실을 가져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은 것입니다. 이 권리가 바로 '콜옵션'입니다. 시간이 흘러서 A라는 회사는 엄청난 성장을 했고 지분 100%의 가치는 1천억 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 시점에 삼성전자는 투자 시점에 확보했던 콜옵션이라는 권리를 행사합니다. 애초 계약대로 1억 원만 지불하면 A라는 회사의 지분 50%, 즉, 5백억 원의 가치에 달하는 주식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자 비용이 조금 발생했겠지만, 가상의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초기 투자금 1억 원과 콜옵션 행사대금 1억 원까지 모두 2억 원만 지불하면 500억 원을 벌게 되는 셈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 증선위 "부채로 인식했어야 함을 2015년 인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실제 상황에서 미국의 한 회사와 이와 비슷한 계약을 맺습니다. 2012년 삼바는 미국 회사인 바이오젠과 합자해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과정에서 삼바는 에피스 지분 약 90%를 보유하게 되지만, 대신 바이오젠에게 '콜옵션'을 내줍니다. 향후 두 회사가 약속한 가격에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바이오젠이 에피스 지분을 "50% - 1주"까지 취득할 수 있도록 보장한 것입니다. 문제는 콜옵션 행사 가격 등 콜옵션의 구체적 계약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삼바는 2015년 7월 합병 결정 이전에 콜옵션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삼바는 에피스라는 자회사의 지분을 약 90%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분에는 조건이 걸려있었습니다. 특정 가격에 미국 회사 바이오젠이 지분의 절반 정도를 확보할 수 있는 권리, '콜옵션'이었습니다. 앞서 콜옵션에 대해 설명할 때 말했듯이,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 삼바는 미국 회사 바이오젠과 지분을 나눠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증선위는 이 콜옵션 계약이 성립된 이후인 2012년 이후부터는 삼바가 재무제표에 콜옵션을 부채로 인식했어야 했다고 규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삼바는 증선위가 2012년부터 부채로 계상했어야 한다고 지적한 콜옵션을 2015년 7월 제일모직(=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모회사)과 (옛)삼성물산의 합병 이전에 부채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제일모직의 가치는 증선위 말대로 회계처리를 했을 경우와 대비해 훨씬 높게 평가됐고,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이 산출됐으니, 제일모직 주식을 다수 보유한 이재용 부회장이 이득을 본 것입니다.

● 삼성의 '고의'에 대한 의심 : 합병 이전에도 부채를 인식했는가?

검찰이 주목하는 것은 이 과정에 '삼성의 고의'가 개입했느냐입니다. 바꿔 말해, 승계작업의 일환인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불리한 결론이 나오는 것을 막고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삼성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장부에 부채로 계상되어야 할 콜옵션의 구체적 내용을 고의적으로 숨겨서, 회계처리를 조작한 사실이 있느냐는 것을 검찰은 들여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검찰은 삼성이 콜옵션을 부채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 시점이 언제인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증선위는 (적어도) 삼성물산 합병이 완료된 2015년 말에는 삼성이 콜옵션을 부채로 계상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2015년 7월에 합병이 결정되기 이전부터 삼성이 콜옵션을 삼성바이오로직스 장부에 부채로 계상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는데도,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을 돕기 위해 이를 은폐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승계작업을 돕기 위해 경영진이 회사 주주들에게 고의적으로 손해를 끼친 혐의가 입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 고의 은폐 의혹의 출발점이 된 삼바 내부 문건

검찰은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내부 문건에 콜옵션 고의 은폐 정황이 조금은 드러난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박용진 의원은 공개한 보고서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내부에서 2015년 6월부터 11월까지 작성된 문건들입니다. 이 중 2015년 11월 10일, 17일, 18일에 각각 작성된 3건의 보고서에는 "회계법인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젠 사의 콜옵션 가치에 대해 평가하여 2015년 내 부채 및 손실 반영할 것을 요구"라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삼성물산 합병이 성사된 이후 통합된 삼성물산에 대한 재무제표를 새로 작성한 회계법인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된 콜옵션이 삼바의 회계장부(재무제표)에 부채로 기록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요구해왔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회계법인의 요구에 따를 경우 삼성 입장에서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에 부딪힌다는 점이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삼바 내부 문건에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회계법인 요구대로 콜옵션을 부채로 계상해 장부에 올리게 되면, 삼바는 자본보다 부채가 더 많아지는 상황인 자본잠식에 빠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삼바 내부 보고서 원문: "(콜옵션을) 부채로 반영시 2015년 말 로직스는 자본잠식 예상")

두 번째는 보고서에 명확히 표현돼 있지 않지만 논리적으로 추측이 가능한 문제입니다. 합병 이후 콜옵션을 부채로 장부에 올리고 이에 따라 삼바가 자본잠식에 까지 이르게 되면, 합병 이전에는 이 사실을 정말 몰랐느냐는 문제가 곧바로 제기될 가능성이 큽니다. 합병 이전에도 콜옵션을 부채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고의로 이 사실을 은폐했다는 의혹, 검찰이 지금 들여다보고 있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 분식회계는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책이었나?

검찰은 삼성이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분식회계'라는 방식을 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삼바 내부 문건에는 세 가지 방안이 제시되는데, 그중 가장 유력하게 검토된 두 번째 방안에는 회계처리 방식을 변경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보고서에 언급된 두 번째 방안대로, 자회사인 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연결 회계처리에서 지분법에 의한 회계처리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회계처리 방식 변경 한 번으로 삼바가 보유하고 있던 에피스 지분의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하면서, 자본잠식이 되기는커녕 삼바의 가치가 4조 5천억 원 이상 늘어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증선위가 분식회계로 규정한 구체적 행위가 바로 이것입니다. 증선위 판단에 따르면, 삼바는 이미 2012년부터 콜옵션을 부채로 장부에 기록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15년 말 삼성물산 합병 이후 재무제표를 새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회계법인으로부터 콜옵션을 부채로 계상하라는 요구를 받자, 2015년에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는 이유를 대며 지금까지 적용하지 않았던 회계처리 기준을 적용해서, 평가차익을 크게 발생시키는 분식회계 방식으로 자본잠식을 피했다는 것이 증선위가 규정한 삼바 분식회계의 동기와 결과입니다.
※ 회계처리 방식을 바꿀 경우 두 가지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복잡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너무 상세한 내용까지 알고 싶지 않은 분은 이 대목 은 뛰어넘어도 됩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4년 회계연도까지 삼성에피스라는 자회사를 "연결하여 회계처리"해왔습니다. 이 방식으로 회계 처리할 경우 삼바가 보유한 에피스의 지분 가치는 실제 지분 취득 금액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 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지분법에 의한 회계처리"로 변경할 경우, 회계처리 변경을 할 때 단 1회에 한해서 이전의 연결 회계처리에서 실제 지분 취득 금액으로 평가했던 보유 주식의 가치를 "공정가치"(=시장에서의 평가 가치)로 바꿔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실제 지분 취득 금액보다 시장의 평가 금액이 압도적으로 높은 경우, 연결 회계처리에서 지분법에 의한 회계처리로 방식을 변경할 때 당연히 회사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하게 됩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2015년 말 벌어진 일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에피스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2천9백억 원에서 4조 8천억 원으로 불어난 것입니다.

문제는 회계규정상 이 같은 회계처리 방식 변경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자회사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연결 회계처리에서 지분법에 의한 회계처리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모회사가 자회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배력의 성격에 변동이 있어야 합니다. 삼바의 경우에는 에피스라는 자회사를 2014년까지는 단독지배하고 있다가 2015년부터 미국 회사 바이오젠과 공동지배하는 것으로 성격이 변경됐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근거로 회계처리 방식의 변경과 그로 인한 막대한 평가이익의 발생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바이오젠이 계약서에 정해진 가격에 "지분 50% -1주"를 확보할 수 있는 콜옵션을 2012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2015년 말 이전에는 콜옵션의 행사 가능성이 극히 낮았기 때문에 실질적 권리라고 볼 수 없어서 당시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던 삼바가 에피스를 '단독지배'했던 것이 맞고, 다만 2015년에 신약 발표 등 다양한 호재성 이벤트가 이어지면서 (콜옵션을 행사할 경우 가치가 올라간 에피스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이때부터 삼바와 바이오젠이 에피스를 공동지배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이 2015년에 갑자기 단독지배에서 공동지배로 바뀌었다는 삼성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증선위는 삼성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자본잠식을 우려해 "지배력 변경을 포함한 다소 비정상적인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며 삼성의 지배력 변경 논리가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며, 분식회계를 감추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 '부채 고의 은폐 의혹'과 '은폐 정당화 의혹'

여기까지가 2015년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까지 이르는 과정에 대한 배경 설명입니다. 설명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몇 차례 언급되긴 했지만, 결국 승계작업과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글의 서두에 언급한 대목에 요약돼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이라면 이제 이해할 수 있는 문장입니다.

"삼성은 적어도 2015년 삼성물산 합병 이후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된 콜옵션을 장부에 부채로 계상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증선위 판단에 따르면 분식회계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콜옵션을 삼성물산 합병 이전에는 장부에 부채로 계상하지 않았던 이유가 석연치 않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한 비율로 삼성물산을 합병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전체 경영권을 강화하려는 작업, 이른바 '승계작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고의로 콜옵션을 은폐한 것 아닌가?"

약간 더 어렵지만 좀 더 명확한 형태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의혹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1)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콜옵션을 부채로 장부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삼성은 2015년 7월 삼성물산 합병 결정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제일모직의 가치가 떨어져 이재용 부회장에게 승계작업에 불리한 영향을 주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 이 사실을 고의로 은폐한 것이 아닌가?
(※ 합병 이전 부채 고의 은폐 의혹)

2) 2015년 7월 삼성물산 합병 이후 콜옵션이 부채로 계상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합병 이후인 2015년 말에 이르러서야 대규모 평가 차익이 발생할 수 있는 회계처리 방식을 새로이 도입해야 하는 여러 이유가 나타났다고 주장하며 회계처리 방식을 바꿔서 자본잠식 위기를 피하는 것과 동시에 합병 이전인 2012~2014년에 콜옵션을 부채로 계상하지 않은 점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든 것 아닌가?
(※ 회계방식 변경을 통한 부채 은폐 정당화 의혹)

검찰은 큰 틀에서 이 두 가지 의혹의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은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승계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수습하고, 승계작업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한 '마지막 퍼즐' 역할이었다고 검찰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 삼성바이오로직스 의혹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

이 글을 쓰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승계작업에 대한 검찰의 의심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려고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증선위가 고발한 분식회계 혐의부터 삼성 승계작업 의혹까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설사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법원에서 무죄가 나올 가능성도 당연히 있습니다. 대법원까지 가서 최종 결론이 내려지기까지는 아마 3~4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뉴스를 보고 듣고 읽는 시민들은 국내 최대 그룹인 삼성을 지배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와 관련된 의혹, 그리고 이와 관련해 대규모 분식회계가 벌어졌다는 의혹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삼성그룹 승계작업 및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된 배경과 구도를 이해할 권리도 있습니다.

이 취재파일은 복잡하고 방대한 내용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본질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에 대해 뉴스 소비자들이 정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기 위해 작성했습니다.

삼성은 "악(惡)"이 아닙니다. 대기업이라고 무조건 "적폐"로 규정될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이든 매출 규모가 보잘것없는 중소기업이든, 자본주의 질서의 기본인 회계원칙을 위반해서 투자자와 시장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면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합니다.

특히 삼성 같은 기업은 투자자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만큼 더욱 엄정한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검찰 역시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만큼 더욱 신중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진상을 규명하고 법리를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시민과 시장을 모두 납득시킬 수 있는 투명하고 객관적인 결론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그리고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에 언론에 보도된 의혹과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을 물었습니다. 3곳 모두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 관련해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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