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전두환이 흘린 '무장 폭동설', 혐오 악순환

이경원 기자 leekw@sbs.co.kr

작성 2020.05.15 21:00 수정 2020.05.18 09:2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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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0년이 흐른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유언비어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사실은 팀의 연속 보도, 오늘(15일)은 광주시민 무장 폭동설을 살펴보겠습니다.

광주시민이 먼저 무기를 탈취했기 때문에 군이 발포를 했다는 주장인데, 자세한 내용은 이경원 기자가 설명하겠습니다.

<기자>

1980년 5월 21일, 낮 1시.

계엄군은 금남로에 모인 시민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합니다.

100여 명이 죽거나 다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광주시민이 이미 그날 오전 폭동을 일으켜 무장을 했고, 결국 군이 발포할 수밖에 없었다는 무장 폭동설이 최근 다시 등장했습니다.

[유튜브 영상물 : 아침에 무기고의 조직적인 탈취가 이뤄졌습니다.]

이 유언비어의 정점에는 전두환 씨가 있습니다.

[전두환회고록/1권. p.403 : 시민군 측 주장과 달리 그날 오전부터 이미 무기고 습격이 진행됐다는 기록들이 있다.]

시민들의 무장 시점이 발포 이전인 오전이냐, 발포 이후인 오후냐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전두환 씨 주장처럼 1980년 수사 당시 오전에 무기고 습격이 있었다고 진술한 사람이 2명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신빙성이 낮아 1995년 검찰 수사 결과 발표에서 빠졌습니다.

반면에 오후였다는 기록은 많습니다.

5·18 당시 경찰 기록 같은 공적 문서들, 89년 국회 진상조사에서의 수많은 증언, 심지어 80년 군법회의 판결문을 보면 당일 시민들이 무기를 가지고 나온 시간은 오후였습니다.

[김정호/변호사 : (전두환 씨 측은)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발포했 다 고 주장하고 있는데 5·18 당시 군·경찰 관련 자료를 보니까 시민이 무기고를 탈취한 시간이 다 오후입니다, 원칙적으로.]

무장 폭동설이 문제가 되는 이유, 단순히 거짓이라서가 아닙니다.

무장 폭동설은 당시 광주시민을 폭도로 만들고 이를 근거로 한 호남 혐오가 계속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유언비어의 가장 큰 해악입니다.
호남혐오[홍성수/숙명여대 법대 교수 : 역사 왜곡이라고 하는 건 늘 그렇게 혐오 이런 것과 연결될 때 힘을 갖고 또 확산되는 것이고…]

유언비어가 계속되는 한 1980년 광주는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상편집 : 조무환, CG : 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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