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대상 성범죄자의 대명사가 된 이름이다. 2008년 12월 11일, 조두순은 당시 8살인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한 상해를 입혔고 법원은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추가 범죄의 발생을 막아 이 사회를 보호하고, 피고인의 악성을 교화, 개선시키기 위하여는 장기간 이 사회에서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고 조두순은 오는 12월 12일, 형을 마치고 출소한다. 출소 즉시 전자발찌를 부착해 7년 간 보호 관찰받게 되고 5년 간 신상정보도 공개된다. 그간 조두순 출소를 막아 달라는 국민 청원에 청와대는 "불가능하다"면서도 "조두순이 피해자나 잠재적 피해자 근처를 돌아다니는 일은 반드시 막겠다"라고 답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이 조두순 말고 또 다른 '조두순'들에 주목했다.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들 말이다. 이런 범죄는 얼마나 발생했고 또 제대로 처벌받아 왔는지, 죗값을 치른 뒤 관리는 잘 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조두순이라는 상징에 가려 수많은 조두순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 보는 게 이번 보도의 목표였다.
● 또 다른 '조두순들', 실형 82.0%·집행유예 16.3%
조두순에게 적용된 죄명은 미성년자 강간 등 상해·치상이다. [마부작침]은 조두순과 비슷하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강간과 유사강간을 저지른 성범죄자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살펴봤다. 선고일 기준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7월 31일까지 1년 7개월 간 전국 법원의 1심 판결 300건이 분석 대상이었다. 여기에 미성년자 간음죄가 적용됐으나 내용 상으로는 강간과 다름없는 사건들도 일부 포함시켰다. 적용 법률은 형법,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성폭력처벌특례법 등이다.
전체 판결문 300건 중 298건이 징역형 선고였다. 그 외엔 벌금형 1건, 소년부 송치 1건 있었을 뿐이었다. 징역형 실형이 246건으로, 전체의 82.0%를 차지했다.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이나 유사강간범 5명 중 4명은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평균 형량은 6년 2.2개월로 나타났다. 집행유예는 49건(16.3%)였는데 평균 형량은 징역 2년 3.7개월, 집행유예 3년 3.9개월이었다.
2018년과 비교해도 실형 비율이 좀 더 늘어났다. 형사정책연구원의 '2019 아동청소년 성범죄 동향과 추세 분석'을 보면 2018년 1년 간 선고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사건 판결문을 분석했는데 강간과 유사강간의 1심 실형 선고 비율이 각각 75.6%, 76.3%, 집행유예는 강간 23.1%, 유사강간 22.7%였다. 둘을 합치면 실형 75.7%, 집행유예 23.1%로, 2018년에 비해 2019년부터 2020년 7월까지 판결은 실형 비율이 늘고 집행유예 비율이 감소했다.
평균 형량도 증가했다. 2018년엔 강간 등의 실형 평균 형량이 5년 3개월이었는데 이보다 9.2개월 더 무거운 선고가 내려졌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듯 대체로 이전보다 이들 성범죄자 처벌이 엄중해진 것으로 보인다.
● 전자발찌 12.3%, 신상정보 공개 17.0%
전체 판결문 300건 가운데 247건에서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을 이수하라는 명령이 나왔다. 징역형만 선고한 것보다 치료프로그램 이수 같은 추가 처분이 함께 나온 비율이 훨씬 높았다. 247건 중 절반 이상(127건)이 40시간 이수였는데, 이는 하루 8시간 기준으로 보면 닷새 간의 기본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되는 처분이다.
신상정보 공개명령 대상자는 치료프로그램 이수자보다 훨씬 적었다. 전체의 17.0%인 51건에 공개명령이 부과됐는데 공개 기간은 평균 6년 10.4개월이었다. 2018년 성폭력 범죄의 공개명령 대상자 비율은 11.9%였는데 이 중 [마부작침]이 분석한 성폭행·유사성폭행으로 좁혀보면 19.9%에 이른다. 이전에 비해 신상정보 공개명령은 소폭 감소한 셈이다.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은 그보다 더 줄어들어 37건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12.3%에 불과한 수치다. 평균 부착 기간은 14년 1.9개월. 특별 관리 대상인만큼 이들 37건의 형량은 전체 평균보다 훨씬 무거웠다. 전체 징역형 평균은 6년 2.2개월이지만 전자발찌 부착 37건은 평균 9년 2.3개월로 3년가량 길었다.
● 친딸 성폭행범인데 전자발찌 면제... 그때 그때 다른 기준
CASE A
피고인은 2009년 겨울 자신의 주거지에서, 피해자(여, 12세)가 자고 있던 방에 들어가 피해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친족 관계에 있는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는 동시에 13세 미만인 미성년자를 상대로 유사성행위를 하였다.
CASE B
피고인은 2014년 8월 말 자신의 거주지에서, 피해자(당시 12세)에게 성인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아빠랑 한 번만 하자"라고 말하고, 피해자가 "싫다"라고 거부하자… 위력으로 13세 미만의 피해자를 간음하였다.
A는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에서 지난 5월 선고된 사건이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친아버지로 친딸 2명을 상대로 수 차례 성폭행과 강제추행을 저질렀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12년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120시간 이수를 선고했다. 전자발찌 부착명령은 기각했다. B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서 작년 8월에 선고된 사건인데, 이 역시 친아버지가 친딸에게 범죄를 저질렀다. 이 사건의 재판부도 징역 12년을 선고했는데 출소 뒤에도 20년 간 전자발찌를 차도록 명령했다.
두 사건 모두 친딸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아버지에게 내려진 판결에, 같은 징역형을 선고했는데도 전자발찌에선 달랐다. A의 경우 재판부는, 성범죄자 재범 위험성 평가가 '높음'이나 점수는 낮은 편이고, 친딸인 피해자들 상대 범행이라 불특정인 대상 성폭력을 저지를 것 같지 않다며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기각했다. 반면 B에서 재판부는 19세 미만에게 범죄를 저질렀고 2회 이상 범행해 습벽이 인정되며 범행 대상도 친딸이라 재범 위험성이 높다며 부착명령을 내렸다.
실형이 선고된 사건만을 대상으로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받은 그룹(Y)과 받지 않은 그룹(N) 형량을 비교했다. 평균은 당연히 Y그룹이 더 높았는데 N그룹에서도 27건은 평균보다 형량이 훨씬 높았다. 재판부가 그만큼 중범죄로 판단했는데도 전자발찌 부착에선 제외된 것이다.
27건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면 아예 전자발찌 부착명령 청구를 하지 않은 게 8건, 청구를 했던 건 19건이었다. 청구한 19건 중 17건은 성범죄 동종 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기각된 사건 중에는 위에 언급했던 사건 A와 B처럼 친딸이나 의붓딸 등 친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도 9건 있었다. 이들 사건의 성폭행범 모두 딸에게 성폭력을 저질렀으니 불특정인 상대로 범행할 위험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전자발찌 면죄부를 받았다.
● 또 다른 '조두순들' 91.5%는 '아는 사람'
[마부작침]은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친부, 의부, 친척, 친구, 이웃, 선배 등 30가지 항목으로 세분화해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전체 성폭력 사건 300건 중 무려 91.5%의 가해자가 '아는 사람'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낯선 사람, 즉석만남 등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은 25명으로 전체의 8.1%뿐이었다. 가족 및 친척이 37.8%를 차지했고, 혈연관계는 아닌 '아는 사람'이 165명, 절반을 넘었다.
단일 분류에서 가장 많았던 건 인터넷 채팅을 매개로 알게 된 사람으로 62명, 전체의 20.2%를 차지했다. 과거 [마부작침] 기사에서 지적했듯 인터넷 채팅을 통한 성착취에 아동·청소년이 노출된 상황을 방증한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으로 많은 건, '친아버지'였다. 모두 40명이 자신의 친딸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
가해자에 따라 형량 차이도 나타났다. 실형만 추려서 피해자-가해자 관계별로 형량을 계산해봤더니 친아버지, 친어머니, 부모 친구 순으로 평균 형량이 높았다. 이들은 모두 징역 115개월 이상, 10년 가까운 형을 선고받았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볼 책임이 있는 계부와 교사, 성직자 등도 평균 형량이 높은 편이었다.
● 감경 사유 최다는 '형사처벌 전력 없다'
법원이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받게 될 형벌의 양을 결정하는 것이 '양형(量刑)'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판사 따라 지나치게 형량 차가 나는 걸 막기 위해 특정 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정한다. 현재 아동·청소년 강간죄의 양형 기준은 기본 징역 5~8년, 가중할 경우 6~9년이다. 다만 양형 기준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이기 때문에 사건별로 양형 기준과 다른 이유를 포함할 때가 있다. 양형위원회는 법관이 다른 참작 사유를 적용하면 그 이유를 판결문에 밝히도록 하고 있다.
[마부작침]은 대법원 양형 기준과, 판결문에서 자주 언급된 양형 사유를 세분화해 분석했다. 가중사유는 30가지, 감경 사유는 24가지 항목으로 정리했다.
가중 사유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한 건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심각하다"는 이유였다. 전체 300건 중 209건에서 나왔다. 그다음은 "피해자의 처벌의사 유지"로 139건에서 제시됐다.
감경 사유 중 최다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동종 범죄나 벌금형 초과, 집행유예 초과 범죄 전력 없음 포함)로 전체의 76.3%, 229건에서 등장했다. 그다음은 "잘못을 뉘우치거나 반성"이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도 절반 가까이 나왔다.
[좀더갈자] '반인륜적 범행' 형량 68.2% 높았다
양형 사유를 바탕으로 형량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준 조건을 확인해봤다. 여러 변수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사용되는 분석기법인 다중회귀분석을 사용했다. 실제 형량에 영향을 주는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마부작침]은 양형 사유에만 집중해서 회귀분석을 진행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유의 수준 0.01) 양형 사유는 5개로 분석됐다.
가중 사유에서는 ①반인륜적 범행, ②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사람의 범행, ③가학적·변태적 행위 혹은 극도의 성적 수치심을 증대시킨 경우로 나타났다. 특히 반인륜적 범행이 형량에 미친 영향이 가장 컸는데, 그렇지 않은 사건에 비해 평균 형량이 68.2% 높았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사람의 범행은 35.2%, 극도의 성적 수치심을 증대시켰다는 사유가 포함된 경우엔 30.5% 형량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감경 사유에서는 ①나이가 어림, ②처벌 불원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나이가 어리다는 사유가 포함된 경우가 그렇지 않은 사건보다 선고 형량이 39.0% 낮게 나왔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 사건은 나머지 사건보다 22.4% 형량이 줄었다.
취재: 심영구, 배정훈, 안혜민 디자인: 안준석 인턴: 김지연, 이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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