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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페트병 200개 넣어야 2,000원…12억은 왜 통장에 못 갔나

지난달 중순, 서울 양천구 신월7동의 무인회수 시설. 주민들이 봉지를 하나씩 들고 서 있다. 화면에 전화번호를 누르고, 투명 페트병을 한 개씩 투입구에 밀어 넣는다. 기계가 카메라로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면 10원이 붙는다. 하루 30개까지다.

페트병 회수기

"그냥 버리느니 여기다 넣자"

신월7동에 사는 남정은 씨는 1년쯤 됐다고 했다. 운동 삼아 지나가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걸 보고 시작했다.

"그전에는 재활용 버리는 날에 페트랑 이렇게 해가지고 다 버렸는데, 여기 이제 페트 넣으면 1개에 10원씩. 하루에 30개씩 넣을 수 있다 그래 가지고, 여기다 이제 그냥 버리느니 여기다 넣자 하고 이제 꾸준히 넣어봤죠."

보통은 2~3일에 한 번씩 온다. 생수병이 많이 나와서다. 불편한 점을 묻자 대기 시간을 먼저 꺼냈다.

"오랫동안 1시간 반, 길면 2시간을 기다려야 되는. 그런 기계가 한 대 더 설치가 되면 더 좋은데."

다툼이 생기는 일도 왕왕 있다. 먼저 왔네 안 왔네 하는 실랑이다. 

같은 기계 앞에서 만난 또 다른 이용자 김미희 씨는 딸이 앱을 깔아준 뒤부터 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나오는 것만 하자고 했다.

"욕심이 생기니까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가서 가져오거든요. 다들 뭐라고 하는데, 내 운동이 되고 즐거우니까요."

몇 달 동안 7만 원이 모였다. 계좌로 받아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요. 아직은 초보라. 아직은 없어요."

페트병 회수기

현금이 되기까지 넘어야 할 문턱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이학영 의원실이 전국 17개 시도에서 받은 무인회수기 운영 현황 자료를 전수로 들여다봤다.

자료에 적힌 설치 건수는 2,057건. 구입비는 확인된 것만 443억 6,290만 원이고 대부분 지방비로 샀다. 2017년 경북 의성에 한 대로 시작한 기계가 지금은 2천 곳을 넘었고, 그중 절반 이상이 최근 3년 사이에 깔렸다. 이용자에게 지급된 포인트 가운데 현금으로 가지 못한 돈이 12억 1,756만 원. 지자체가 숫자로 적어낸 것만 더한 값이고, 비율로는 14%다.

이 돈이 남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문턱이다. 2,000포인트, 그러니까 페트병 200개를 모아야 본인 명의 계좌로 옮길 수 있고, 업체에 따라서는 3,000포인트를 채워야 하는 곳도 있다.

제조사 측은 운영 부담을 들었다.
 
"저희 인력적인 부분들도 있고, 실제로 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몇십 원 단위까지 지금 모두 하기에는, 환전을 하기에는 건수가 너무 많아서겠죠."

이 기준은 2017년 첫 기계가 깔릴 때 만들어져 2019년 약관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은행 이체 수수료 때문이었다고 했다. 10원, 20원을 돌려주면서 500원 수수료를 낼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주 거래 은행이 바뀌고 투자를 받으면서 지금은 수수료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기준은 7년째 2,000원이다.
 

80개 들고 와도 넣는 건 30개

두 번째 이유는 하루에 넣을 수 있는 개수다. 하루 투입 개수 제한은 원래 없었는데, 한 사람이 300개씩 넣어 기계를 독점한다는 민원이 지자체로 몰리면서 지자체가 업체에 상한선을 정해달라고 요청했고, 지금은 대부분 30~50개 사이로 묶여 있다.

문제는 어르신들이 30개에 맞춰 모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본인이 80개를 들고 왔어요. 근데 30개를 넣는데 50개가 남았네? 그럼 이게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러니까 일단 아들 딸 전화번호로 넣는 거죠."

고객센터에 신고가 들어온다고 했다. 앞 사람이 90개를 넣고 있다는 신고다. 시간대를 조회해 보면 앞뒤로 다른 번호가 찍혀 있다. 가족 번호다. 그렇게 쌓인 포인트는 본인 명의가 아니라서 찾을 수 없다. 자녀가 가입해주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아들 딸은 엄마가 이거 하는 게 싫어요. 가입해라, 이걸 모아놨다 해도 젊은 친구들은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래, 됐어' 이렇게 되는 거죠. 그게 훨씬 많아요."

제조사는 지난 6월 25일 약관을 바꿔 전화번호만 입력한 '준회원'에게는 포인트를 아예 주지 않기로 했다. 본인 인증을 피해 가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는 이유다. 개정 전에 본인 번호로 쌓아둔 포인트는 회사가 그대로 들고 있고, 정회원으로 전환하면 지급한다고 했다.

전환하려면 본인 인증을 하고 계좌를 등록해야 하는데, 준회원으로 남은 이유가 바로 그 절차였다. 가족 번호로 쌓인 몫은 본인이 전환해도 못 받는다. 명의자인 아들이나 딸이 가입해 자기 계좌를 등록해야 나간다.

페트병 수거 환급 기계

독일은 영수증 한 장으로 끝난다

독일의 보증금제 '판트(Pfand)'는 2003년 시작됐다. 음료를 살 때 용기값을 미리 내고, 빈 용기를 마트의 무인회수기에 넣으면 반환한 만큼의 영수증이 나온다. 이 영수증은 그 자리에서 물건값을 깎는 데 쓰거나 계산대에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페트병 한 개가 25센트, 우리 돈 400원 안팎. 문턱이 없다. 한 개를 넣어도 영수증이 나온다.

독일에도 안 돌아오는 돈은 있다. 연방환경청은 반환율을 96%로 보는데, 나머지 4%에 해당하는 약 7억 2천만 개어치 보증금은 음료 충전업체와 유통업체가 가져간다. 2015년 기준 1억 8천만 유로 규모다. 현지에서는 '판트슐루프'라 부르며 논쟁이 이어진다. 다만 그 4%는 소비자가 찾아가지 않은 몫이다. 한국의 12억 원에는 찾아가지 않은 돈과 찾을 수 없는 돈이 섞여 있다. 

노르웨이는 운영사 인피니툼이 전국 시스템을 돌린다. 2024년 보증금 반환율은 93%, 재활용 경로를 모두 합친 총 회수율은 98%였다. 회사 장부에는 보증금 부채 충당금 6억 4,170만 크로네가 잡혀 있다.

미국은 조금 다른 방식이다. 코네티컷·매사추세츠·뉴욕·메인·미시간·버몬트는 돌아오지 않은 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주 정부에 넘기도록 법으로 정해뒀다. 아이오와와 오리건은 업계가 갖는다.

미시간의 숫자는 구체적이다. 주 재무부 자료를 보면 2025년 보증금으로 걷힌 돈이 3억 8,970만 달러, 돌려준 돈이 2억 7,040만 달러다. 반환율 69.4%. 수십 년 만에 가장 낮았다. 돌아가지 않은 1억 1,920만 달러 가운데 2,960만 달러는 소매점에 배분됐고, 100만 달러는 주 경찰의 보증금 사기 단속에 쓰였으며, 나머지는 주 환경부의 정화·재개발 신탁기금으로 들어갔다. 반환율이 떨어지면 주 수입이 늘어난다. 제도가 잘 돌아가지 않을 때 이득을 보는 쪽이 생긴다는 지적이 현지에서도 나온다.

업체가 갖든 국고로 가든, 돌아가지 않은 돈이 어디로 갈지는 법에 적혀 있다. 한국의 무인회수기 포인트에는 그 조항이 없다.
 

문턱 없는 포인트, 문턱 있는 포인트 

국내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탄소중립포인트다. 

가입할 때 계좌 입금이나 카드 포인트, 간편결제 포인트 가운데 받을 방식을 고르면, 한 달간 쌓인 포인트가 다음 달 말부터 그다음 달 초까지 순차로 들어온다. 얼마를 모아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계좌 정보가 확인되지 않으면 잔여포인트로 남겨둔다. 확인이 끝나는 달 말에 밀린 몫까지 나간다. 유효기간은 5년이다.

무인회수기 포인트는 200개를 채우고, 본인 명의 계좌를 등록하고, 이용자가 직접 신청해야 비로소 통장에 들어온다. 유효기간 조항은 아예 없다. 약관상 소멸 사유는 탈퇴와 부정사용 두 가지뿐이다. 회사는 그 돈을 계속 안고 간다.

대신 다른 조항이 있다. 서비스가 종료되면 회사가 정한 사용기한 뒤에 포인트가 소멸하고 복구되지 않는다. 종료 30일 전에 공지한다는 것이 전부다.
 

페트병 값 떨어지자 보상도 끊겼다

포인트를 주는 돈은 지자체 예산이 아니다. 회수한 페트병을 팔아서 업체가 댄다.  
 
"저희가 회수한 페트병을 리사이클 페트 플레이크와 펠릿으로 만들어서 재생 용기로 만들기 때문에, 거기서 재원을 마련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역시나 그게 잘 팔리고 비싸게 팔려야 되는데, 유가에 의해서 그것도 계속 왔다 갔다 하니까."

유가가 내려가면 새로 뽑은 페트가 싸진다. 재생 소재가 안 팔린다. 10원이 부담이 된다.

전주시는 7억 4천만 원을 들여 41대를 설치했다. 소유권은 시에 두고 운영만 대행업체에 맡기면서, 업체가 회수한 페트병을 가져가는 것으로 운영비를 대신하게 했다. 지난해 10월 중순, 업체가 운영 중단을 통보했다. 주민센터 회수기에는 전원이 꺼진 채 안내문이 붙었다.

"운영업체 사정으로 운영이 중단되었음을 알려드리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당 1,000원 하던 페트병 값이 떨어졌다. 철사와 라벨, 남은 음료가 섞여 들어와 원료 품질까지 나빠졌다. 업체는 시에 운영비를 요구했지만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시는 계약을 해지했다.

운영업체 두 곳 중 한 곳은 부도가 났고 다른 한 곳은 소송 중이다. 시민 470여 명이 못 받은 포인트가 약 500만 원. 돌려받을 방법은 없다.

기계는 철거도 못 한 채 서 있다. 치우는 데도 돈이 든다. 전주에서 쓰러진 쪽은 운영 대행업체였다. 아직 찾아가지 않은 포인트에 대비한 장치는 없다. 제조사는 포인트가 대금 지급 수단이 아니라서 예치금이나 보증보험을 들지 않아도 된다는 법무 검토 결과를 받았다고 했다.

노르웨이 운영사는 돌려줄 보증금을 충당금으로 쌓아둔다. 여기서는 장부에 적어두는 데서 끝난다.
 
"저희는 사실 포인트를 지금 채무로 인식하고 있거든요. 이 채무를 없애기 위한 고민들을 다각도로 하고 있는데, 그것과 지금 현실 간의 괴리가 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쿠폰으로 돌려주는 방식도 검토했지만 선불전자지급수단 등록 기준을 맞추지 못해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절반은 얼마 남았는지도 모른다

2,057건 가운데 남은 포인트를 숫자로 답한 건 1,104건이다. 나머지 953건은 무인회수기 단독 산출 불가, 확인 불가, 자료 없음이라고 적었거나 비워뒀다. 고장 신고 건수를 적지 못한 곳도 647건이다. 기계를 산 쪽은 지자체다. 그 기계에서 시민에게 얼마가 나갔고 얼마가 남았는지는 업체 서버에만 있다.

기계 앞에서 만난 이용자 10여 명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 기계가 생겨서 좋은 점이 뭐냐고. 거리가 깨끗해졌다는 답이 가장 많았다. 운동이 된다는 사람도, 버리던 게 돈이 되니 재미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1시간 반을 기다려서라도 쓰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다. 그렇게 쌓인 12억 1,756만 원이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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