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전수조사 '공포', 그 시작은?
이런 분위기에서 5월부터 사상 첫 농지 전수조사가 진행됐는데, 불과 두 달여 만에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7월 30일, 첫 농지 전수조사 기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조사를 진행한 1천만 필지 가운데 27%가 농지법 위반이 의심된다고 공개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8월 28일부터 시행된 개정 농지법은 처분 명령 사유가 확인됐을 때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집행하도록 의무를 강화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농지가 법 위반 의심 받을까?
[이관호 / 경기 안성시 농민 : (농지 주인이) 자기가 직접 와서 한다고 그래서 한 1천200평인가 그거는 줬어요, 그냥. 농토를 뺏길 수밖에 없어서….]
[이돈일 / 경기 안성시 농민 : 짓고 있는 것도 자기(농지 주인)가 농사를 짓겠다, 나무 심고 밭에다가. 제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죠.]
그럼 왜 이렇게 많은 농지가 법 위반 의심을 받을까요? 바로 농촌의 오랜 관행과 현행 농지법 사이의 간극 때문입니다. 경자유전 원칙, 들어보셨을 겁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으로 헌법 제121조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가피한 경우의 임대차 등은 법률로 따로 정하고 있고 그게 바로 농지법입니다. 하지만 농촌에선 농지법이 허용한 범위를 넘어선 관행적 임대차가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고령으로 더 이상 직접 농사를 짓지 못해 옆집에 맡긴 땅, 몸이 아파서 이웃이나 친척이 대신 경작하는 땅, 종중 소유이거나 소유관계가 복잡하지만 친척 한 사람이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땅, 일부는 농지법의 임대 허용 요건에 따라 가능하지만, 법에서 정한 임대 사유에 해당하지 않거나, 농지은행 등을 통해 임대해야 하는 경우인데도 개인끼리 직접 임대한 농지는 법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이호근 / 경기 안성시 농민 : (지주의) 양도소득세 때문에, 내가 농사짓는 게 한 8천 평 정도 되는데 임대차 계약서 쓴 게 4천 평밖에 안 돼요.]
농지를 팔고 싶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지고 농지 거래가 뚝 끊기면서 농지 가격까지 떨어졌단 주장까지 터져나왔습니다.
부랴부랴 진화 나선 정부
하지만 또 불안을 남겼습니다. 농지은행 위탁 문제입니다. 농지법에선 상속 농지나 고령으로 농사를 못 짓는 경우에 농지 임대를 가능하게 하고 있지만, 1헥타르를 넘는 농지는 농지은행에 맡겨야지만 합법적 임대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농지은행에 맡기면, 현재 해당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에게 해당 땅이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단 겁니다. 결국 임차농을 쫓아내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거죠. 처분 유예일 뿐, 결국 궁극적으로는 처분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냔 불안도 남았습니다.
결국 정부는 이달 8일 또 후속 대책을 내놨습니다. 투기 목적 이외의 일반적, 관행적 위반은 이번 전수조사 결과를 근거로 처분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겁니다. 허위 영농계획서로 농지를 취득하고 무단 방치하는 등 3대 투기 유형을 제시하면서 그 이외엔 처분하지 않겠다고 물러섰습니다. 문제가 됐던 농지은행 위탁도 의무 사항이 아니라며 농지은행에 맡기더라도 현재 경작 중인 농민이 우선 지정되도록 하는 대책도 함께 제시했습니다.
왜 대책을 사전에 마련하지 않았을까?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사들인 사람을 걸러내고, 누가 땅을 소유하고 누가 실제 농사를 짓는지 정확한 자료를 만드는 건 향후 농지 정책을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입니다. 하지만 농촌 현실과 현행 농지법 사이의 간극을 먼저 정리하지 않은 채 1천만 필지가 넘는 농지를 조사하면서, 실제 농민들까지 "내 땅을 빼앗기는 것 아니냐"고 두려워하게 만들었다면 제대로 된 전수조사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건 정부의 실책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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