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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빚'에 시달리는 고령층…한미가 똑같다

[취재파일] '빚'에 시달리는 고령층…한미가 똑같다

"60세 이상 고령층들이 빚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은퇴를 미루거나 생활수준을 낮추고 있다”

7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의 보도 내용입니다. 미국 고령층이 그렇다는 얘기인데, 사실 우리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경제가 갈수록 팍팍해지면서 가계 부채 문제는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을 만큼 일반화된 얘기가 돼 버렸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1년간 연수를 하다가 지난 7월 말에 귀국했습니다. 연수를 하면서 그간 표면적으로 알아왔던 미국이란 나라의 이미지와 또 다른 미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미국인의 씀씀이입니다. 몇 년 전 "마시멜로 이야기"가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책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아껴 쓰라는 겁니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오늘을 성실히 살라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그 동안 미국인들은 버는 대로 써 왔고, 즐기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책이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것도 어찌 보면 뻔한 교훈이 가슴에 와 닿을 만큼 우리의 씀씀이도 미국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빚에 쪼들리는 美 고령층

다시 월 스트리트의 기사 내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몇 가지 통계 수치가 눈에 띕니다. 2010년 현재 미국의 60~64세 가구주 가운데 39%가 1차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았으며 20%는 2차 담보 대출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1994년에는 1차 담보대출이 22%, 2차 담보대출이 12%였습니다. 거의 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얘깁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월 스트리트는 그 이유를 주택 가격의 하락에 두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60대 자기 주택 보유자들이 기존 주택을 팔아 차익을 챙기고 작은 집으로 갈아타기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주택 가격이 하락해 그렇게 할 수 없는데다, 일부는 주택 가격의 하락으로 대출액과 집값이 역전되기도 했다는 겁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과 참 비슷해 보이죠?

올해 2분기 미국의 가계부채는 11조 4천억 달러입니다.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1999년에 비해 두 배 수준이지만 2007년보다는 감소한 수치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인들이 빚을 줄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다시 미국 연수 때의 경험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몇 년 전 부동산 시장을 비롯해 경제가 활황일 때 흥청망청 써대던 미국인의 소비 패턴이 2-3년 전부터 바뀌었습니다. 모기지론 사태가 변곡점입니다. 그 이후부터 씀씀이를 줄이면서 사상 처음으로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1년 중 가장 큰 폭의 세일을 하는 날)을 위해 새벽 0시에 문을 여는 백화점이 생겼습니다.

반면, 철 지난 상품을 싸게 파는 마샬이나 TJ맥스와 같은 할인 매장의 매출은 늘었습니다. 장사가 안 된다는 하소연을 여러 사람한테서 들었고, 한인 타운에도 문을 닫는 업소가 늘면서 현지 한인 신문에 크게 기사화 된 적도 있습니다. 처음으로 미국인의 저축률이 소비를 넘어섰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도 보도됐습니다.

소비 지출을 줄여도 가계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세금 감면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고, 급기야 지난해 말 중간 선거 때 돌풍을 일으킨 티 파티 운동까지 나오게 됐습니다.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이라는 요구가 봇물 터지듯 나왔고, 급기야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부도사태 직전에 정부 재정지출 감소를 야당인 공화당과 합의하게 됐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면서 워렌 버핏 같은 갑부가 스스로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2) 우리나라 사정은 어떤가?

자, 이쯤에서 우리나라와 비교를 좀 해 보겠습니다. 7일 자 기사를 들여다 보겠습니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말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 두 달간 가계대출이 10조 2천억 원 늘었다고 어제(6일) 발표했습니다. 4년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입니다. 지난달 은행의 가계 대출은 2조 5천억 원이 늘어 7개월 연속 증가했습니다. 전세 값 폭등에 따른 전세 자금과 마이너스 통장 대출 등 신용대출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6월말 기준으로 가계 빚은 876조 3천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입니다. 한 가구당 5,042만 원에 달합니다. 대출 금리는 계속 오르고 뛰어 오르는 전세 값을 대기 위해 또 빚을 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의 널뛰기 장세에 빚을 내서 주식 투자를 하다 망해서 자살하는 사태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도하 언론의 모든 기사가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가관리 기구인 한은의 무능도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미국과 아주 비슷해 보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른 점도 눈에 띕니다. 미국에서는 정부에 재정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줄이라는 요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복지냐 재정이냐 논란 속에 결국 복지 쪽에 대한 지지가 커지는 느낌입니다. 막대한 국가부채로 무디스마저 한국의 국가 부채를 걱정하고 있는 이 때 국민들은 국가 부채에 신경 쓸 겨를 없이 가계부채 문제를 고민해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정부에 내는 세금을 줄여달라는 요구보다는 내는 세금만큼 정부로부터 복지 혜택을 받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 여론에 등 떠밀린 정부 여당이 어제 감세 정책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제2의 오바마가 되기 싫었던 탓일까요? 내년 선거를 앞두고 복지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을 터이고, 그렇다고 이를 감당할 재원 마련은 어려울 테고…어찌 보면 정부 여당은 경기의 선 순환 구조를 위해 필요하다며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주요 정책을 여론의 바람을 이용해 못이기는 척 접었을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시 월 스트리트로 돌아가겠습니다. 빚에 시달리는 고령층이 노후자금이 충분치 않아 60대 초반 가구 가운데 80%가 저축이 거의 없어 퇴직연금에 손을 대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빚을 갚아 나가려면 계속 일을 하거나 아니면 퇴직 연금을 깨야 한다는 얘기일 겁니다. 이 또한 우리나라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3) 머시멜로 두번째 이야기

불행하게도 저는 경제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경제의 순환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그러나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의 후속편도 꽤 많이 팔린 것을 보면 필자가 생각하는 단순한 해법에 대해 많은 이들도 공감하는 듯 합니다. 즉, 아껴 쓰는 게 답일 겁니다. 빚을 줄이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게 고령의 불행을 막는 길일 겁니다.

미국에서는 일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껴 쓰는 것 만으로는 해법이 되지 못하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런 노인들에게도 비록 적은 수당을 지불하지만 일거리를 주는 문화가 우리네와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마시멜로를 당장 먹어 치워 버리면 안됩니다.

정부나 여당도 정신을 차려야 할 겁니다. 나라 빚에 허덕이다 허겁지겁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면서 초조하게 시장의 반응을 살피는 오바마의 사례를 외면해선 안 될 겁니다. 가계 대출 문제가 폭발하기 전에 비록 다소간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서서히 바람을 빼면서 풍선이 터지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겁니다. 전 세계적 경기 침체의 늪에서 홀로 빠져 나갈 수는 없더라도 가계 부채와 국가 부채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내년 선거에 흔들리지 않을 중장기적이고 진지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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