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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배터리 화재 실험 중 연구원들도 '으악'…가장 안전한 보관법은? [취재파일]

공포 이용해 규제 더하고 세금 축내려는 '업자' 경계해야

"액체 전해질이 기화하면서 그 가스가 배출되는... 으억!"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 17일 방재시험연구원의 '휴대용 보조배터리 화재 위험성 재현 실험' 현장. 책임자가 실험을 설명하던 중 예상 못 했던 폭발이 일어났다. 탄약통처럼 생긴 금속함에 넣어둔 보조배터리가 별안간 터져버린 것이다. 금속함은 구겨졌고, 화염이 치솟는 가운데 검은 잔해가 흩날렸다. 목전에 서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 탄식이 나왔다. 사람이 안 다친 게 다행이었다. 금속 파편이라도 튀었다면 피를 봤을 상황이었다.
[관련 기사] 금속 상자에서 '펑!'…보조배터리 '비닐백 보관' 시험했더니 (노동규 기자 SBS 8뉴스 리포트, 2025년 4월 17일)

지난 17일 방재시험연구원의 '휴대용 보조배터리 화재 위험성 재현 실험' 현장에서 보조배터리가 터지는 순간

이날 실험은 휴대용 보조배터리 내부 온도와 압력이 급격히 올라가 폭발하는 '열폭주'로 불이 났을 때, 어떤 용기에 담겨 있는 게 그나마 안전한지 알아보려는 취지로 진행됐다.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1만mAh 용량 보조배터리 내부의 보호 회로를 제거한 뒤 ▲비닐 봉투 ▲내열 파우치 ▲금속함에 각각 나눠 담고 '과충전'을 일으키는 방식이었다.

안전장치까지 떼낸 배터리로 일부러 불을 내는 극단 상황을 만든 건 지난 1월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때문이다. 사고를 계기로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보조배터리 기내 반입 규정을 강화했다. 휴대 개수를 제한하고, 단자를 절연테이프로 막든지 '지퍼백'으로 불리는 비닐봉투에 담아 지니거나 좌석 주머니에 보관하도록 했다. 규제 이후 대부분 승객은 항공사들이 제공하는 비닐봉투를 이용 중인데, 일각에선 이 방식이 '화재 확산 방지'에 맞춤하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원인

화재보험협회 부설기관인 연구원이 실험 전 내세운 '가설'은 이랬다. 비닐봉투보단 내열 파우치나 금속함에 배터리를 보관하는 게 화재 때 주변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미리 만든 3쪽 자리 보도자료엔 "내열 파우치 및 금속함 내에 보관할 경우 외부로의 화염 확산 및 주변 가연물로의 착화를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결론'까지 씌어 있었다. 하지만, 셋 다 화재 확산을 막는 덴 무소용했다는 게 진짜 결론이었다. 세 종류의 '용기' 모두 눈앞에 배터리 불길을 활활 드러냈다.

기자 눈엔 오히려 비닐봉투가 가장 '안전'해 보였다. 과충전 시작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비닐봉투 안에 담긴 배터리가 부푸는 '스웰링 현상'이 보였다. 이어 연기 발생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상 현상만 제때 알아도 열폭주와 화재로 이어지기 전 물이라도 들이붓는 안전조치가 가능하다. 반면 불투명한 내열 파우치나 금속함의 경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낌새도 못 챈 사이 급작스러운 화재와 폭발이 벌어졌다. 이런 이유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플라스틱 백' 보관을 권고한다. 국토부도 비닐봉투 사용을 권장하는 까닭이다. 다중이 이용하는 기내에서 누구든 빨리 배터리 이상 현상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고, 외부 접촉에 의한 단락을 방지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험에 쓰인 내열 파우치나 금속함의 경우, 용도가 '배터리 보관용'은 아니었다. 애초 그런 용도로는 KC 인증 기준도 없다. 연구원 최기옥 화재조사센터장은 "신속한 화재 인지와 소화 측면에서 비닐봉투가 효과 있다"면서도 "배터리 열폭주 압력을 견디거나 배출하면서 차열 기능을 만족하는 보관함 기준 마련과 개발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보조배터리 화재 실험

더 안전한 보관 용기 개발에 대한 고민은 분명 필요해 보이나 문제는 비용이다. 벌써 적지 않은 '용기 사업자'들이 국토부와 국회를 접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시민의 공포와 관료들의 행정편의주의 토양 위에서 관(官)을 낀 사업 기회를 노리는 자들은 늘 있어 왔다. 저마다 '싸면서도 좋은 기술'임을 내세울 것이다. 그런 걸 누가 만들어낼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시민 개개인이 사 들고 다닐 용기가 아니라면 으레 그래왔듯 항공사가 의무 구매하고 비치하는 규제와 티켓 가격 인상으로 돌아올 우려가 크다. '안전 비용'이라며 세금 써 개발 지원하고 사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보조배터리 자체를 안전하게 쓰는 것이다. 그 요령은 멀리 있지 않다. KC 인증 제품을 쓰는 게 핵심이다. 전용 충전기를 사용하고 고온·다습한 환경과 충격, 압력을 피하는 것이다. 모두 제품설명서에 씌어 있는 평범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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