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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시 쓰는 민주주의>라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의외로 흥미롭네?'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정치 제도만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더라고요.
다양한 사람이 함께 각양각색의 의견을 조율하며 잘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기본 틀인 민주주의가 잘 돌아가야 하며, 그 안에서 나를 대표하는 의원들이 국회에서 내게 필요한 법안을 열심히 만들고, 그것이 정책에 반영돼 나의 삶을 바꾸는 일련의 과정에 문제가 없어야 우리 일상도 순조로우니까요. 그러고 보면 내 삶을 위해서라도 정치를 미워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관심 갖고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치가 내 삶을 보다 낫게 만들 수 있는지, 그러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현재 우리 국민들은 정치를 통해 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게다가 정치 혐오는 우려스러운 수준이죠. 2019년 SDF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를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고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60%에 달했습니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나를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고 느끼는 비율이 이렇게나 높다는 것은 심각한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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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 갈등 크다"…83.1%가 꼽은 갈등 원인은
"지금 우리는 산업 시대나 정보화 시대와는 전혀 다른 '전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혼돈스럽고 불안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 자체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인 거죠. 예를 들어, 과거와 달리 노동자이더라도 전체 노동자를 대표할 수 없는 시대가 됐죠. 지금과 같은 정당 방식은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대의민주주의를 계속 유지한다면 대표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누가, 무엇을, 어떻게 대표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을 어떻게 제대로 작동하게 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죠. 지금의 정당은 정책이나 당론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정치 팬클럽이나 언론, 시민단체에 너무 휘둘리고 있어요. 정당의 힘이 그만큼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지구당처럼 지역에 정당의 풀뿌리 조직들이 있었어요. 정당의 조직력이나 동원력이 강했던 겁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지만, 정당이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정당이 각 지역에 풀뿌리 조직을 만들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검토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산업화와 민주화 모두를 이룬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잘 해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대표성'에 문제 제기가 되고 있죠. 핵심은 비례대표 비율입니다. 역대 선거를 보면 서울 경기에서 한 정당이 100% 달하는 의석을 차지하는데, 사실 말이 안 되죠. 국회의원 선거 임박해서 선거 제도를 수정하면 2020년 4·15 총선 때 위성정당 같은 사태가 반복될 우려가 크니까 미리 검토해서 개선 반영해야 합니다."
사실 정치를 이야기할 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새로운 정치를 갈망해도 새로운 인물이 그만큼 등장하기 쉽지 않은 정치 생태계라는 점을 상장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공천 제도를 통해 '혜성같이' 등장하는 새 얼굴이 있지만 그간 새 인물이 '나를 위한 정치를 했는가'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어디 새로운 정치인 없나요?
"유권자의 알 권리 측면에서 후보나 정책을 알아볼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공천을 보면 투표 직전까지 후보를 알 수 없는 정도의 상황이 되거든요. 공천권은 정당의 자율에 맡기더라도 최소한 후보를 확정하는 시기만이라도 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이번에 무투표 당선자 가운데 200명 이상 전과가 있다는 것 아닙니까. 적어도 음주운전이나 폭행 전과 같은 경우는 애초에 후보 등록 자격 요건에서 배제를 검토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런 변화가 장기적으로 유권자들의 신뢰를 높이는 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요즘 저희 미래팀은 전·현직 국회의원과 수십 명의 정치학자, 사회학자로부터 자문을 받고 있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위기 징후가 포착되고, 정치적 양극화나 혐오도 심각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상당수가 부정적인 진단들이더라고요.
그럼에도 저희는 아직, '정치가 아름다울 때 달라지는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 역시 민주주의나 정치 같은 단어들이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염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가운데서 정치를 빼놓을 수는 없더라고요.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사회적 요구를 삶에 반영해 실현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이니까요.
올해 SDF 주제가 <다시 쓰는 민주주의>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나 정치, 모두 우리 삶의 이야기입니다. 보다 가까이 들여다보고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글 : 채희선 기자, hschae@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