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강력한 총기거래 규제를 담은 행정명령을 발표했습니다. 모든 총기 판매인은 연방정부의 면허를 얻어 등록하고, 구매자의 신원 조회를 의무화하는 게 그 골자입니다. 음성적인 총기 거래를 차단해 총기 폭력 희생자들을 줄여보겠다는 취지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과거 총격 사건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간다”며 눈물까지 쏟으면서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총기 규제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미국 행정부가 총기 규제책을 시행하려 하면 오히려 총기 판매가 급증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 달간 미국 전역에서 팔린 총기는 모두 160만 정에 달합니다. 2000년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월간 거래량입니다.
CNN은 오늘 특집 기사를 통해 미국의 총기 현황을 그래프와 차트로 알기 쉽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 국민이 보유한 총기는 2억 7천만정에 달합니다. 스위스에 있는 ‘Small Arms Survey’ 가 2007년에 조사한 결과니 지금은 그보다 더 많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인구 1백명 당 88.8정의 총기를 보유한 셈인데, 인구 대비 총기 보유 수에서 미국은 단연 세계 1위입니다.
FBI에 따르면 지난 해 2015년은 총기 구매를 위한 신원 조회 신청건수에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3백여만 건의 신원 조회 신청이 있었는데 이는 1998년 이 신원 조회 제도가 생긴 이래 최고치입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2012년 커네티컷 주의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직후, 총기 구매를 위한 신원조회 신청 건수가 2백80만 건가량 됐는데 지난 해 12월 2일, 캘리포니아 주 샌 버나디노 총기 난사 사건 직후 3백만 건을 넘어 기록을 경신한 겁니다.
언제 그런 총기 난사 사건을 당할지 모르니 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한 원인이 될 것이고, 지난 해 12월 6일 오바마 대통령이 총기 규제와 관련한 대국민 연설을 하면서 앞으로 총기를 구하기 쉽지 않을 테니 총기 규제책이 시행되기 전에 미리 총을 사 놓자는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총기 판매가 급증한다고 해서 꼭 총기 살인도 함께 늘어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2013년과 2014년은 총기를 이용한 살인 건수는 1천명당 4.5명으로 지난 50년 동안 최저점을 찍었습니다. 1980년 10.2명에서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겁니다. 참고로 FBI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살인 사건 10건 가운데 7건은 총기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 내 테러에 의해서 숨진 사람은 3,380명이었던 반면 같은 기간 총기에 의해 숨진 사망자는 406,496명에 달합니다. 그러니까 테러로 숨진 사람보다 총기 사건이나 사고로 숨진 사람이 120배나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총기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 그러니까 미국에서 가장 총에 맞을 확률이 높은 곳은 어디일까요? 일반 사무실이나 상업적 건물이 45.6%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학교로 24.4%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러니까 다수 대중이 모이는 공공 장소일수록 총에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LA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는 저도 운전하다가 어디선가 타이어가 터지거나 또 길을 걷다가 간판이 떨어지거나 하면, 무의식적으로 몸을 최대한 낮추고 주변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야간에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에 취재를 가게 되면 여지없이 총소리나 요란스런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듣게 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총기를 규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그런 노력이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총에 맞아 숨지는 일이 잦으니 총을 줄여야 한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생각과 달리 미국인 대다수는 남이 쏜 총에 맞아 숨지기 전에 내가 먼저 쏘겠다는 생각이 강한 듯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총기 규제 행정 명령을 발표한 오늘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사상 최대 규모의 총기 박람회에는 총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