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불과 이틀 만에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다음 날, 시시르 카날 네팔 외교 장관이 네팔 주재 중국 대사를 만나 "중국을 비롯한 특정 국가에 기후 보상을 요구할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습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기사였습니다.
카날 장관은 같은 날, 인도 언론 ANI와의 인터뷰도 진행했습니다. "미국과 중국, 인도에 보상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카날 장관의 발언이 ANI 기사 제목으로 뽑혔습니다.
카날 장관은 미국과 중국, 인도, 이 세 나라를 '콕' 짚어 보상을 요구한 당사자입니다.
책임 당사국으로 지목된 중국과 인도 언론 보도인 만큼 어떤 '의도'가 숨어 있을 수는 있지만, 카날 장관이 논란 직후 중국 대사를 만나고, 인도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는 것 만으로도 '해명'의 성격이 강했다는 걸 어느 정도 유추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팔은 어떻게 보상을 받겠다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쉽지 않습니다.
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이 이번 참사와 관련한 보상 문제를 자세히 분석했습니다.
일단, 보상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히말라야를 품은 네팔이 정말 기후 변화에 취약한가 입증해야 합니다.
이번 참사의 직접적인 촉발 요인은 빙하와 암석의 붕괴로 발생한 대규모 토석·빙하류였지만, 기후 변화 때문에 빙하와 고산 지대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전문가들의 이견은 없습니다. 특히, 히말라야에서는 고도가 높을수록 온난화가 더 빠르게 나타나는, 이른바 '고도 의존적 온난화(Elevation-Dependent Warming·EDW)' 현상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고도가 높은 지역의 기온 상승 폭이 저지대보다 훨씬 크게 나타난다는 겁니다. 2023년 6월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 보고서를 보면, 히말라야 남쪽 평원 지역인 인도의 테라이의 기온은 10년 평균 0.15°C 상승한 반면, 히말라야 고고도 지역은 10년 평균 0.68°C나 올라갔습니다.
빙하 역시 온난화에 직접 노출돼 있습니다. 히말라야 빙하 면적의 약 78%가 해발 4,500~6,000m 구간에 집중돼 있어서 온난화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눈이 많이 녹으니 참사 위험성도 커집니다.
기후 변화는 어제 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전 지구적 현상이지만, 네팔 히말라야 지역이 그 어떤 곳보다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과학적 근거들입니다.
그런데 2024년 기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중국과 미국,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8.5%입니다. 네팔의 배출량은 전 세계의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세계 89위 안팎입니다.
온실 가스 배출국 TOP3, 중국과 미국, 인도의 책임을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국 때문에 얼마, 중국 때문에 얼마, 인도 때문에 얼마"라고 계산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특정 국가의 과거 배출량과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 피해를 1대1로 연결하려면, 그 국가의 배출이 해당 재난 발생 가능성이나 규모를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이를 국가별로 정밀하게 나눠 법적 책임액까지 산정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온실가스에는 국적이 없습니다.
한반도 미세 먼지의 경우 중국의 영향이 있다는 데에는 상당한 과학적 근거가 있지만, 그렇다고 정확히 얼마가 중국의 책임이라고 수치로 단정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이 복잡한 문제를 국제사회는 어떻게 풀었을까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손실과 피해 기금(Fund for Responding to Loss and Damage·FRLD)'입니다. 기후변화의 책임을 개별 국가로 따져 피해 액수를 청구하는 게 불가능하니, 기후변화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의 피해와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입니다. 즉, 온실가스 많이 배출하는 나라들이 돈을 더 내는 식의 기금 만들고, 기후 변화로 피해와 손실이 생기면 그 돈으로 보상하는 시스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배상(reparation)'이 아닌 '보상(compensation)'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배상은 위법한 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책임 주체가 회복하는 의미가 강한 반면, 보상은 반드시 위법 행위가 전제되는 것은 아니며, 발생한 손실을 금전 등으로 보전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개별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는 정치적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카날 장관이 지난 2일 CNN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인도를 겨냥해 강한 발언을 이어갈 때도 '배상'(reparation)이 아니라 '보상'(compensation) 그리고 '정의'(justice)라고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네팔이 처음부터 '배상'이 아니라 '보상'과 '기후 정의'를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카날 장관이 중국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파리 협정의 틀 안에서 보상을 요구하겠다"고 말한 것은 일단 이 기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힙니다. 이 기금이 2015년 파리 협정 때문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기금 마련 작업의 이론적 토대가 됐습니다.
파리 협약 8조 3항
3. 당사자는 협력과 촉진을 기반으로 ……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과 관련된 손실 및 피해에 관한 이해, 행동 및 지원을 강화하여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손실과 피해 기금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약은 현재 8.2억 달러입니다. 하지만 실제 기금으로 들어온 돈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을 포함해 21개 국가들이 실제로 낸 돈은, 5월 현재 4.6억 달러 정도로 절반을 갓 넘는 수준입니다.
더군다나 중국과 인도는 현재 이 기금의 주요 공여국으로 참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 역시 기후 정책의 방향이 정권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상황이어서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 연설에서 "기후 변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기극"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전 세계의 손실과 피해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가령, 네팔 재난 당국이 어제 발표한 이번 참사의 재산·주택·사회기반시설 피해액은 3,875억 네팔 루피, 25억6천만 달러로 추산됐는데, 2만 가구를 다시 지어야 하고, 이 가운데 7,500가구는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초기 복구에만 5,260만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네팔이 입은 피해 규모와 기금의 지원 규모가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반면, 현재 손실과 피해 기금의 초기 지원 체계에서는 한 개 사업에 최대 2천만 달러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2천만 달러라고 해도 네팔이 추산한 전체 피해액 25억6천만 달러의 약 0.8%에 불과합니다. 이번 재난에 대한 긴급 지원은 아직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해결돼야 할 보상 문제, 여전히 첩첩산중입니다.
중국과 인도는 네팔에 가장 중요한 이웃이자 경제·안보·인프라 협력 상대입니다. 이들을 공개적으로 가해국으로 규정하면서 보상을 요구하기에는 외교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강대국 중심의 국제 질서, 그 냉혹한 현실을 읽어냈을 지도 모릅니다.
다만, 당위적인 문제 의식은 여전히 견고합니다. 네팔은 미국과 중국, 인도를 향한 청구서를 거둬들였을 지는 몰라도, 국제사회를 향한 근본적 질문까지 접은 것은 아닙니다.
"기후변화를 거의 만들지 않은 나라가, 기후변화로 커지는 재난의 비용을 왜 혼자 감당해야 하는가."
어쩌면 이번 네팔의 '기후변화 청구' 논란이 던진 핵심 질문은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 국가에 얼마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국제 기금 역시 아직 피해 규모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기후변화의 책임과 피해 사이의 불균형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네팔이 설령, 미국 얼마, 중국 얼마, 인도 얼마라는 청구서를 접었을 지는 몰라도, 기후변화로 누가 이익을 얻었고, 누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이번 네팔 참사는 바로 그 오래된 질문을, 히말라야를 벗어나 국제 사회에 꺼내 놨습니다.
(작가 : 김효진, 인턴 :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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