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경남 거제시 둔덕면 포도 농가에서 농민이 최근 호우 당시 피해를 본 포도를 바라보고 있다.
"사람도 24시간 숨을 못 쉬면 죽잖아요. 우리 포도나무도 다 죽었겠지요."
오늘(20일) 오전 경남 거제시 둔덕면 하둔리의 한 포도 농가에서 만난 이 모(79)씨는 흙투성이가 된 포도나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둔덕면은 거제에서 포도 산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광복절 연휴 쏟아진 집중호우로 이 씨의 포도밭은 24시간 넘게 물에 잠겼습니다.
수해 발생 나흘째인 오늘까지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한 포도밭에 인근 둔덕천에서 범람한 물이 빠져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 바닥은 여전히 진흙으로 질퍽거렸고, 포도나무 이파리는 흙도 털어내지 못한 채 회색빛으로 말라 있었습니다.
수확을 앞두고 탐스럽게 익었던 포도송이에도 진흙이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이 씨는 포도나무 잎과 줄기에 남은 흙탕물 자국을 가리키며 당시 물이 180㎝만큼 높게 차올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물이 24시간 이상 차 있었으니 열매는 모두 쓸 수가 없다"며 "살려보려고 해도 물에 잠긴 포도는 상품으로 내놓을 수 없어 모조리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올해는 병충해도 없어 포도 작황이 유난히 좋았다"며 "13t 정도는 출하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제 막 출하하려던 찰나에 이렇게 돼버렸다"고 토로했습니다.
농민들의 걱정은 올해 수확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루 넘게 물속에 잠긴 포도나무가 뿌리부터 상해 고사하면 내년 농사까지 기약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사람도 하루 동안 숨을 못 쉬면 죽는데 나무라고 괜찮겠느냐"며 망연자실했습니다.
피해가 심각하지만 복구 작업도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근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홍 모(76)씨는 "복구하려고 해도 일손이 없어 아직 제대로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족들이 농장에 나와 침수 잔해를 치우고 있지만 이곳은 외곽이라 자원봉사자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에게 포도밭은 생계인데 농민들끼리만 복구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년 개최되던 둔덕면 대표 축제인 '둔덕포도축제'도 결국 취소됐습니다.
극한호우는 포도밭뿐 아니라 농사에 필요한 각종 영농자재까지 집어삼켰습니다.
인근 둔덕농협 영농자재종합판매장 약 200평 규모 창고도 물에 잠겼습니다.
수해복구 나흘째인 오늘 창고에 들어찬 물은 대부분 빠졌지만, 농사에 필요한 용품들은 죄다 못쓰게 됐습니다.
비료를 비롯한 영농자재와 가축 사료 수백포, 소금 약 1천600포 등이 침수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둔덕농협 측은 복구 과정에서 피해 규모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오늘 둔덕농협 소속 직원들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 속 창고에 있던 젖은 물품을 주차장으로 옮기는 작업을 이어 나갔습니다.
둔덕농협 관계자는 "복구가 급한 상황이라 작업을 계속 해야 한다"며 "적기에 필요한 영농자재가 물에 다 젖다 보니 올해 포도와 배추 농사에도 지장이 생길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수해 복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보상받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막막한 심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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