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2002 월드컵 전과 후로 나뉜다. 이전엔 축구 역시 여러 종목 중 하나였고, 축구협회 역시 다른 종목단체와 비교해 특출할 게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세계 4강에 올랐던 2002년 6월, 세상은 붉게 뒤집혔고, 수많은 인생이 전환점을 맞았다. 축구계에 기업들의 투자가 쏠렸고, 뛰어난 인재가 유입됐다. 많은 일자리가 창출됐고, 그중에서도 축구협회는 우리나라 체육계 최고의 직장이 됐다. 대기업(주로 현대가)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을 차출해 가까스로 윗자리를 채우던 조직에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낮은 자리에서 미래를 꿈꾸던 젊은이들이 차고 넘쳤다.
정점은 2009년에서 2012년 사이였다. 2012년 협회 초봉이 4200만 원이었다. 상금단체인 대한체육회는 2500만 원, 삼성전자가 4100만 원이던 시기다. 오죽하면 '신이 숨겨 놓은 직장'이란 말이 나왔을까.
조중연 회장 시절이다. 앞서 16년 동안 협회를 이끌었던 정몽준(MJ) 회장의 후임으로서 '기업인 수장 시대'에서 '경기인 수장 시대'로 패러다임 시프트를 노렸다. 조 회장은 자신이 전무 시절 30억에 불과했던 협회 예산을 대폭 끌어올리며 '1000억 시대'를 열었다.
급작스러운 성장과 팽창엔 늘 부작용이 따른다. 무엇보다 리더십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 그야말로 흥청망청 돈을 썼다. '30억짜리 협회를 1000억 짜리로 키운 지분이 있으니 이 정도는 내가 써도 된다' 심리가 팽배했다. 이를 견제하려던 노조 인사는 즉각 불이익을 받았고, 노조는 맞서 싸우는 대신 지렛대 삼아 자신들의 '실익(임금과 복지)'을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축구인들의 도덕성은 바닥을 쳤다. 그라운드에선 승부조작이 벌어졌고,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며 에이전트를 가장한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렸다. 구단에선 외국인 선수와 이면 계약으로 뒷돈을 챙겼고, 이중 일부는 심판들에게 '목욕비'라는 명목으로 집행되기도 했다. 돌아보니 어느 한 군데도 멀쩡하지 않은 난장판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관행'으로 포장됐다.
조 회장은 임기를 마치고, 강한 재선 의지를 드러냈지만 MJ의 중재 속에 후퇴를 결심한다. 그렇게 정몽규의 시대가 시작됐다. 정 회장은 자신의 성품과 당시 환경에 맞춰 시끄럽고 과감한 개혁보단 조용하고 안전한 개선을 추진했다. 그의 임기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시기가 이때, 1기 시절이다.
그럼에도 '3000억 시대'를 열겠다던 정몽규 회장의 포부는 공수표가 됐고, 한국 축구는 타락했던 '영광의 시대' 그 시절의 청구서를 참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협회에선 엑소더스가 진행 중이다. 우수하고 유능했던 젊은 직원 상당수가 이미 떠났거나 이직을 고민 중이다. 코로나19와 천안 이전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했다. 내부에선 '탈출은 능력순'이란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온다.
요즘 축구협회를 보면 '신이 버린 직장'이란 생각이 든다. 2002년 축구의 힘에 매료돼 청운의 꿈을 안고 협회에 입사한 이들은 이제 40~50대가 됐다. 책임이 적지 않지만 국회 청문회, 경찰의 압수수색, 과거 비위 논란까지 연일 계속되는 포화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대부분은 그동안 맡은 자리에서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온 이들이다. 그릇된 특권의식에 젖은 축구인, 이들과 공생한 이른바 '족쟁이'들과 도매금으로 묶인 이들에겐 형벌 같은 하루하루다.
이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을까.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기자는 축구를 마치 자기 일인 양 열정적으로 보도해 블라터(전 FIFA 회장 : 재임 기간 1998~2015)의 천국놀이를 더욱더 높이 끌어올릴 뿐이다"고 꼬집었던 독일의 저널리스트, 토마스 키스트너의 자기반성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불과 몇 달 전 인판티노의 천국놀이를 역사상 최고의 지구촌 축제로 띄우며 때론 거짓말까지 일삼다가 이제는 정치권, 사정기관과 손을 잡고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고 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