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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보다 무거운 '생각의 무게'…보이지 않는 돌봄, '기획노동'을 아십니까 [스프]

김희경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 스프 핵심요약

이름 없는 노동의 발견: 가사 및 돌봄에서 식단 짜기, 알림장 확인, 재활 병원 검색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과정인 '기획노동'이 여성과 가족 돌봄자에게 과중하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실행보다 큰 격차: 2024년 통계 기준 가사·돌봄의 실행 노동 격차는 여성이 남성의 2.9배이지만, 기획노동 격차는 3.4배로 훨씬 크게 나타났습니다.

사회적 대안 제시: 기획노동을 단순 개인·성별 문제나 '무기화된 무능력'으로 치부하지 않고, '가정 내 주간회의' 및 공적 돌봄 매니저 제도 도입 등 사회적 분담 체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1.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기획노동'이란 무엇인가
"기저귀 교체 시기를 제가 말해줘야 알아요. 칫솔 교체 때가 됐다고 말하면 호응은 하지만 본인 일처럼 찾아서 사지는 않죠." (맞벌이 가정 아내)

"여행 갈 때 남편이 계획을 짜도 짐은 제가 챙기죠. 아이 생기고 챙길 게 늘었는데 남편은 그 크기를 몰라요." (육아휴직 중인 남편을 둔 아내)

키즈노트, 파자마 파티 준비물 챙기기, 부모님 재활병원 예약 및 약 재고 확인, 요양보호사 일정 관리. 이처럼 집안일과 돌봄 과정에서 수반되는 '계획하고, 예측하고,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 과정'을 '기획노동'이라고 부릅니다.

전 여성가족부 차관이자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2026년 7월 출간)의 저자인 김희경 작가는 "그동안 살림과 돌봄을 단순 육체적 행동으로만 봐왔지만, 요리 이전에 식단을 짜고 장을 보는 식의 전략적 기획 과정이 존재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를 기업에 비유하면, 공장 가동(실행)만 평가하고 CEO의 리더십이나 전략기획실의 일(기획)은 전혀 평가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 갤럽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에서 가사·돌봄의 실행 노동은 여성이 남성보다 2.9배 많이 하지만, 기획노동은 여성이 3.4배나 더 많이 짊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행보다 기획에서 성별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입니다.

2. "당신이 잘하니까 해라?"…고정관념과 '무기화된 무능력'

작가는 남성들이 자기가 집안일을 많이 한다고 착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행위' 자체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설거지를 예로 들면, 세제가 떨어지는지, 수세미를 바꿀 때인지, 행주를 삶아야 하는지 등의 관리는 제외한 채 '그릇 씻기'라는 단순 실행만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큰 가전제품을 사거나 차를 바꾸는 등 가끔 발생하는 '이벤트성 기획'과, 매일 식단을 짜고 아이를 챙기는 '일상적 기획노동'의 피로도는 차원이 다릅니다. 일상적 기획노동이 사람에게 끼치는 정신적 부담과 피로도가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잘하는 사람이 기획을 몰아서 하고 상대는 다른 걸 챙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회사에서 협업 동료에게 "네가 잘하니까 다 해"라고 회피하는 것과 같습니다. 김희경 작가는 이를 심리학 및 사회학에서 다루는 '무기화된 무능력(Weaponized Incompet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자신이 서투르다는 이유를 앞세워 가사·돌봄 기획의 책임 자체를 회피하려는 태도입니다.

3. 부모와 장애아 돌봄…누가 이 이정표 없는 길을 설계하나

기획노동의 부담은 부모 돌봄과 장애아 돌봄으로 갈수록 치명적인 생존의 문제로 다가옵니다.

"뇌출혈 재활 골든타임을 몰라 2주나 지나서야 재활을 시작했다"는 자녀의 고백처럼, 부모가 쓰러지면 이정표 없는 돌봄 기획이 시작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2025년 통계에 따르면 가족 돌봄 제공자의 우울감 비율은 47.6%로 일반 성인의 4배 이상이며, 치매 노인 주 돌봄자의 82.4%가 여성(딸 42.4% 포함)에 달합니다. 가족 내에서 가장 약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돌봄 기획이 넘어가는 구조를 깨기 위해 일본의 '케어 매니저' 제도와 같은 공적 지원 체계가 절실합니다.

발달장애 진단을 받는 순간 부모(특히 엄마)들은 "엄마한테 달렸다"는 가혹한 전가를 받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2020년 조사 기준, 코로나19 당시 발달장애 부모 중 직장을 포기한 비율이 20.5%였으며, 그중 어머니 비율이 78.8%에 달했습니다. 정보와 길잡이가 없는 상태에서 교육과 재활 방법을 홀로 검색하고 판단해야 하는 불안감이 엄마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원인이 됩니다.

4. 경력단절과 저출생의 이면…당장 바꿀 수 있는 솔루션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경력단절 여성의 사유 중 육아(44.3%), 결혼(24.2%), 임신·출산(22.1%) 등 출산·양육·가사 부담이 90% 이상을 차지합니다. 또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조사에서도 여성들의 결혼 기피 주요 이유로 '임신·출산으로 인한 일상 역할 변화의 부담'이 꼽혔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부담을 풀기 위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요?

가정 내 '주간회의' 도입이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처럼 일주일에 한 번 가정 내 주간회의를 열어 학교 알림장, 이번 주 장보기, 집안일 스케줄을 공유하고 기획과 실행을 나누는 것입니다.

가사노동의 정확한 정의와 목록화. '설거지'를 단순 그릇 씻기가 아닌 '건조기 정리, 물기 제거, 행주 세탁'까지 포함한 개념으로 서로 합의하고, 각자 부담스럽지 않은 일과 싫어하는 일을 목록화해 분담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획노동' 자체를 인지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내가 느끼는 피로감이 '헛짓'이 아니라 실제 심각한 에너지 소모를 동반하는 '기획노동'이었음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부담을 줄이는 첫걸음이 됩니다.


Deep Dive Q&A
Q1. '기획노동'과 일반 '가사노동(실행)'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A1. 실행노동이 청소기 돌리기, 설거지하기, 요리하기 등 눈에 보이는 육체적 행위라면, 기획노동은 요리 전 식단 짜기, 장보기 목록 작성, 유치원 설명회 알아보기, 아이 신발 치수 확인 등 살림과 돌봄이 차질 없이 돌아가도록 예측하고 계획·결정하는 정신적 과정 전체를 의미합니다.

Q2. '무기화된 무능력(Weaponized Incompetence)'이란 무엇이며 왜 문제가 되나요?

A2. "난 집안일·육아 잘 못해", "네가 잘하니까 그냥 해"라며 자신의 서투름을 핑계로 책임과 기획 자체를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이는 가정 내 평등한 협업 관계를 깨뜨리고 한 사람에게 일상적 피로와 정신적 부담을 몰아주기 때문에 가사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Q3. 가정 내 기획노동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실천 방법은 무엇이 있나요?

A3. 일주일에 한 번 '가정 내 주간회의'를 통해 이번 주 챙겨야 할 알림장이나 일정을 함께 공유하고, 집안일 각 항목(예: 설거지, 빨래)의 시작과 끝을 함께 정의한 뒤 구체적으로 기획과 실행 단계를 나누어 담당자를 정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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