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전범 개정 직후 지지율 급락…왜?
합의 깨고 '승계권'까지 졸속 처리
일부 진보적인 국민 여론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5월 15일 일본의 대표적인 중도 보수지 요미우리 신문의 특별 사설이 큰 파장을 낳은 적이 있는데요. 요미우리는 당시 옛 왕족 입양안을 비판하며 '차세대 남성 계승자가 히사히토 친왕 1명임을 감안할 때 부계 남성 고집에서 벗어나 여성 일왕 및 모계 일왕의 승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전향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적었습니다. 자민당 주류와 유사한 목소리를 내왔던 신문이었기 때문에 신문사 최고위에 사전 보고가 된 사설이었는지 의구심을 낳을 정도로 정계와 언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습니다. 정통 중도 보수 진영까지 등을 돌리게 할 수 있는 황실전범 개정을 왜 자민당은 밀어붙인 것일까요.
아소 다로의 그림자
아소파 수장이기도 한 아소 전 총리는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막판에 고이즈미 신지로 현 방위상과 경쟁하던 다카이치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면서 그를 총리로 앉힌 장본인입니다. 즉, 다카이치 내각의 후견인으로서 총리와 자민당에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아소 전 총리의 여동생은 노부코 왕비로 현재 왕족입니다. 노부코는 1980년 미카사노미야 도모히토 친왕과 결혼해 왕족이 됐습니다. 남편은 지난 2012년 사망했고 지난해 미카사노미야 계열 여성 왕족들로 구성된 '미카사노미야 히토시 친왕비가(家)'가 창설됐는데 노부코가 당주가 됐습니다. 왕족 중 고령자와 미혼자를 제외하면 양자를 입적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노부코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부코가 옛 왕족 아들을 입양할 경우 개정안에 따라 다음 세대인 그의 아들은 일왕 승계권을 갖습니다. 나루히토 현 일왕 가문이 아닌 아소 가문에서 새로운 일왕이 나올 수도 있는 겁니다. 아직도 권력을 놓지 않는 아소 전 총리의 실루엣이 소탈한 모습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나루히토 일왕의 외동딸인 25살 아이코 공주와 대비되면서 황실전범 개정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더 커졌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왕을…보수 우익의 속내
지난 4월 29일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쇼와 일왕의 생일을 기리는 '쇼와 100년 기념식'이 정부 주최로 열린 날이었습니다.
실제로 나루히토 일왕과 그 선대 왕인 아키히토 상왕은 자민당 주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발언을 내놓곤 했습니다. 아키히토의 경우 일본 왕실과 백제의 혈연 관계를 스스로 언급하거나(2001년) 학교에서 기미가요 가창 강요에 반대한다는 언급(2004년)을 하기도 했고요, 나루히토 일왕은 전쟁의 비참한 경험과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내놨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봤을 땐 애매하고 부족한 언급이지만, '전쟁 가능한 국가'로 회귀하려 하는 자민당 주류의 관점에서 봤을 땐 속이 뒤집어지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소 전 총리가 자기 가문에서 새 일왕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면, 실제로 왕을 만들 수 있을지는 차치하더라도 현 나루히토 일왕을 견제할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됩니다. 후쿠오카 재벌 출신이자 보수 우익 성향의 아소 가문이 현실 정치 권력과 왕실의 상징성을 모두 갖게 된다면 이후 일본 사회는 또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다카이치 지지 기반 흔들릴까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월 중의원 선거에서 단독 개헌선을 넘는 역사적인 압승을 거뒀습니다. 이후 안보 3문서 개정, 평화헌법 개정 추진, 국기손괴죄 처리, 황실전범 개정 등 보수 우익적인 정책 도입에 수적 우위를 앞세워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침묵하던 다수 국민들과의 괴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국회 앞에서 벌어진 집회 참가자는 "나프타 부족 문제도 있고 국민들 생활은 어려워지고 있는데, 왜 지금 황실전범 개정안 같은 것을 다루는 건가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실제로 이란 전쟁 이후 고유가, 고물가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습니다. 황실전범 개정 같은 사건이 없었어도 정권 인기가 점차 낮아질 수 있는 시기인 겁니다. 만일 이른 시일 안에 지지율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총리 교체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온다면 다카이치 총리로서는 또 다시 보수 우익을 집결시키는 행보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일 관계에서는 예를 들어 총리 취임 전 호언했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약속을 실행에 옮길 수도 있을 겁니다. 중국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국마저 등 돌리게 하진 않을 거라는 게 현 시점에서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향후 지지율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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