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실야구장
잠실야구장이 올해 프로야구 일정 종료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 호텔, 컨벤션센터, 문화·상업 시설 등을 짓는 잠실 스포츠·MICE 사업은 올해 안에 착공해 2032년 준공을 목표로 합니다.
잠실야구장을 대체할 새 돔구장은 3만 석 규모로 지어집니다.
잠실야구장, 줄여서 잠실을 홈으로 쓰는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오늘(1일) 현재 올해 배정된 홈 경기 73경기 중 29경기를, 또 다른 잠실의 주인 두산 베어스는 71경기 중 25경기를 각각 치렀습니다.
두 팀의 남은 홈 경기를 합하면 90경기입니다.
잠실에서 열리는 정규리그 경기가 90경기밖에 안 남았다는 얘기입니다.
LG와 두산은 잠실야구장 옆 잠실 주경기장에 마련될 2만 석 미만의 특설 야구장에서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간 임시로 머뭅니다.
▲ 잠실 스포츠·MICE 복합공간 조성 민간투자 사업 조감도
잠실야구장은 한국의 전통 악기 장구의 측면에서 영감을 받아 1, 3루 관중석이 넓고 좌우 외야로 갈수록 좁아지는 곡선 형태로 설계돼 우리의 아름다움을 강조했습니다.
홈에서 좌우 펜스까지 거리가 100m, 가운데 펜스까지는 125m로 우리나라 최대 크기를 자랑합니다.
1982년 7월 15일 공식 개장했으며 바로 다음 날 16일부터 이틀간 열린 우수 고교 초청대회가 첫 공식 경기였습니다.
류중일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경북고 소속으로 역사적인 잠실야구장 1호 홈런을 쳤습니다.
첫 프로야구 경기는 1982년 8월 1일 롯데 자이언츠와 LG의 전신인 MBC 청룡의 대결이었습니다.
서울 연고 팀 MBC는 동대문구장을 안방으로 사용하다가 잠실야구장 준공 후 홈을 바로 옮겼습니다.
두산 베어스의 전신 OB 베어스는 출범 당시 협약에 따라 대전을 3년간 홈으로 사용한 뒤 1985년 서울로 연고를 이전했습니다.
서울 연고 첫 해인 1985년에는 임시거처인 동대문야구장을 사용했고, 1986년부터 잠실에 입성해 MBC와 '한 지붕 라이벌 시대'를 열었습니다.
결국 잠실야구장의 주된 서사는 주인공인 MBC와 LG, OB와 두산의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막 첫발을 뗀 프로야구 흥행의 기폭제로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극적인 우승, 프로와 아마추어를 망라해 결성한 우리나라 '드림팀 2'의 1999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제패가 모두 드넓은 잠실벌에서 이룬 쾌거라는 점을 보면, 잠실야구장이 지닌 상징성은 특정팀과 서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또 잠실야구장은 오랜 기간 가을 야구의 백미를 연출한 무대여서 자연스럽게 '전국구' 구장이 됐습니다.
7전 4승제 한국시리즈에서 잠실야구장을 중립구장으로 지정해 5∼7차전을 치른 이력으로 호남을 연고로 한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시절 포함)는 12번의 우승 중 9번을, 대구·경북 대표팀 삼성 라이온즈는 7번 중 5번의 우승 트로피를 잠실에서 들어 올렸습니다.
고(故) 최동원이 위대한 '나 홀로 한국시리즈 4승 신화'의 마지막을 채운 곳도 잠실입니다.
잠실은 그래서 숱한 명장면을 간직한 한국 야구의 보고(寶庫)입니다.
전국에 새 야구장이 들어서면서 서울 팀이 없어도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지던 한국시리즈 중립 경기는 2016년 폐지됐습니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2루 주자' 임수혁의 마지막 숨결이 깃든 곳도 잠실입니다.
2000년 4월 LG와 방문 경기를 치르던 롯데 임수혁은 2루에서 심정지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가 2010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경기장에 상시 대기하는 전문 의료진과 구급차도 없던 열악한 현실이 낳은 한국 야구 최대의 비극은 잠실야구장을 깊은 어둠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잠실야구장 관중석 수는 프로야구 인기와 시대상을 반영해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3만 500석이던 관중석은 2010년 시작과 함께 2만 7천 석으로, 2022년부터는 2만 3천750석으로 감소했습니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던 야만의 시대를 지나 좀 더 넓고 쾌적하며 안전한 환경에서 야구를 즐기고 싶다는 관전 욕구가 끌어낸 변화입니다.
(사진=서울시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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