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벌려놓은 트럼프는 자국의 금리인하를 갈수록 더 강하게 원한다. 미국의 막대한 쌍둥이 적자 중에 무역적자는 고율 관세로, 재정적자는 금리 인하를 통한 정부의 이자부담 축소로 줄여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집권 1기에 임명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자신의 집권 2기에 이 목적을 위해 협조해줄 것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파월은 지난해 5번 연속 금리를 동결하면서 트럼프의 노골적 요구를 거부했다. 화가 난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그를 '제롬 투 레이트(too late)'라고 불러댔다. 급기야 올해 초에는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이 과다 지출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사상 초유의 연준 의장 대상 수사를 밀어붙였다.
두 사람의 충돌은 행정부와 중앙은행의 갈등을 넘어 경제학자들을 비롯한 미국 학계의 지식인층과 '마가' 보수 세력의 대립 구도로 확대되는 흐름을 보였다. 아무리 다시 봐도 '트럼프의 사람'임이 분명한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 지명자가 5월에 취임하고, 파월이 연준에서 퇴장하면 상황은 정리될 것처럼 보였다. 역설적이게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트럼프의 유례없는 중앙은행 압박 행보를 흉보면서도, 속으로는 미국의 금리 인하가 빠르게 진행되기를 바라는 이중적 속내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금리 동결이 확실시되는 이번 4월 FOMC에 큰 관심이 쏠렸다.
퇴장하는 제롬 파월.."이사직 당분간 유지" 의미는?
결과적으로 파월은 연준을 나가지 않았다. 의장 임기 종료 후에도 일정 기간 '이사'로서 계속해서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연준 의장은 7명의 이사회 이사 중 한 명이지만, 의장 임기를 마치면 이사로서의 잔여 임기는 하지 않고 물러나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관행일 뿐 그는 2028년 1월까지 연준 이사로 있을 수 있다.
그의 잔류 결심의 큰 명분은 트럼프 행정부의 통화정책 독립성 위협이다. 파월은 "나의 우려는 연준에 가해지는 일련의 법적 공격"이라며 "이는 우리가 정치적 고려 없이 통화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위협 한다"고 말했다. 그 공격은 구체적으로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 관련한 법무부의 수사라고 적시했다.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이사회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파월은 최근 법무부로부터 수사 종결을 통보 받은 사실을 언급하며 "최근 상황 전개를 고무적으로 보고 있으며, 앞으로의 절차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지 언론은 트럼프의 정적 보복 욕구를 감안할 때, 파월이 퇴임하면 수사가 재개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 구도는 파월이 연준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어선을 펼친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그는 "연준의 독립성이 위험에 처해있다"고 다시 언급했다.
FRB 7명의 이사진..파월 남고 워시 들어오면 4대3?
미국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의결에는 12명의 멤버가 참여한다. 이 중 당연직 7명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이사들이며 파월은 의장이 아닐 뿐 이사 중 한 명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 여기에 뉴욕연방은행 총재 1명이 고정으로, 다른 지역연방은행 총재 11명 중의 4명이 매년 교대로 의결에 참여한다.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은 7명의 연준 이사들인데 파월 전 의장의 잔류는 묘한 구도를 만들어 낸다. 현재의 7명 중 '미란 보고서'로 알려진 스티븐 마이런, 크리스토퍼 월러, 미셀 보우먼은 친 트럼프 이사로 본다면, 나머지 리사 쿡, 마이클 바, 필립 제퍼슨 이사는 연준의 독립성을 중시하며 매파적 의견을 보여 왔다. 신임 의장이 될 케빈 워시는 임기가 이미 지난 상태인 스티븐 마이런의 이사 자리를 대체하기 때문에, 파월 의장이 이사로 남게 되면 매파 성향의 이사가 4명이 되면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갖추게 된다. 만약 파월이 이번에 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면 트럼프는 자신이 미는 인사를 새 이사로 지명할 참이었다.
파월은 자신이 '그림자 의장'과 같은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시장에선 그가 연준 관련 수사에 대한 대응과 함께, 이런 이사회 구도를 염두에 뒀을 것이란 추측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너무 늦은' 제롬 파월은 어디에서도 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연준에 남고 싶어 하는 것"이라며 "아무도 그를 원치 않는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파월의 이사직 해임까지 나설지는 미지수다. 정치적 역풍과 함께 법원 판단에서 불리할 가능성 때문이다.
3인의 소수의견..'물가관리 vs 경기부양' 대결 예고
미 연준은 지난해 9, 10, 12월 3번 연속 금리를 내렸지만 올해는 1월, 3월에 이어 세 차례 연속 동결했다. 연준은 성명에서 "인플레이션은 높은 수준이며, 이는 부분적으로 최근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을 반영한 것"이라며 "중동 지역의 정세 변화는 경제 전망에 대한 높은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대 고용과 2%의 인플레이션의 목표를 언급하면서 이를 저해할 위험 요인이 나타나면 "적절히 통화정책 기조를 조정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런데 이 통화정책 결정 성명에는12명 중 4명이 '소수의견'을 냈다. 사실상 일부 표현에 반대한다는 의미이다. 공식적인 반대 의견이 4명이나 나온 것은 1992년 이후 34년 만이란 점에서 상당한 의견 차이가 표출된 셈이다. '트럼프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스티븐 마이런 이사는 혼자 0.25%p 금리인하를 주장했다. 반대로 올해 순회 투표권을 보유한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인 베스 해맥(클리블랜드), 닐 카시카리(미니애폴리스), 로리 로건(댈러스) 등 위원 3명은 향후 금리 인상보다 인하가 더 유력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완화적 기조'를 성명에 포함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들은 향후 조치가 반드시 금리 인하는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보다 명확히 시사하기를 원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들의 이례적인 '공개 반대결의'는 앞으로 FOMC의 내부 갈등을 예고한다. 케빈 워시 차기 연준 의장 지명자는 미 상원 은행위원회의 인준을 찬성 13, 반대 11로 가까스로 통과한데 이어 곧 상원 전체회의 표결을 거친다. 100석 중 공화당이 51석으로 아슬아슬하지만 이탈 표가 없다면 다음 6월 FOMC에서 회의를 주재한다. 이번에 매파적 의견을 표출한 지역연방은행 총재 3명과 파월 이사를 비롯한 FRB 이사 4명이 같은 방향성을 가지면 금리 인하에 반대하는 표는 이미 12표 중 7표로 예상된다. 물론 미국·이란 전쟁이 종전을 맞고 국제유가가 급속히 안정된다면 의견은 달라지겠지만, 에너지 비용이 생활물가에 반영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6월의 미국 물가지표가 크게 호전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전쟁에 따른 고유가 충격과 맞물려, 케빈 워시가 주도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연준 위원 간 내부 이견은, 미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연말까지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긴장하는 신현송의 한은, 고심의 행로 예상
이번 결정으로 한국(2.50%)과 미국의 금리 차는 상단 기준으로 1.25%p를 유지하게 됐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며 통화정책의 운신 폭을 확보하고 싶었던 한국은행의 고심도 계속될 전망이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오늘(30일) '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취임 이후 미국 통화정책 경로의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신현송 신임 한은 총재는 취임 직후부터 쉽지 않은 국면을 맞게 됐다. 중동 전쟁 영향에 따라 성장은 하방 압력을, 물가는 상방 압력을 받는다.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달보다 1.6% 올랐다. 석탄 및 석유제품이 31.9% 올라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크게 상승했다. 유가 상승이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주는 4월 이후 물가는 더 불안해진다. 또 다른 중심 환경은 적극적인 확장재정 정책을 펴는 현 정부의 기조일 것이다. 물가관리가 우선 목표인 중앙은행 총재로서는 가장 난감한 환경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긴축 통화정책으로 악역을 맡아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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