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 한우 농가
"전쟁은 중동에서 났다는데 왜 우리 집 소들이 굶게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2일 전국 최대 축산 단지 중 하나인 충남 홍성군 갈산면의 한 한우 농가, 500두의 소를 키우는 김 모(58) 씨는 축사 앞에서 연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축사 내부가 사료와 분뇨 냄새가 뒤섞여 있는 건 여느 때와 다름없었지만, 농장 분위기는 왠지 전반적으로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한 달을 훌쩍 넘긴 중동 전쟁 여파로 고유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홍성 전역에는 번진 '기름값 공포' 때문입니다.
홍성은 한우와 돼지 사육 규모가 전국 상위권에 속하는 대표적인 축산 밀집 지역입니다.
현재 지역 축산 농가들은 고유가 상황이 불러온 '사룟값·연료비·물류비'라는 삼중고에 직면했습니다.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라 축산업 전반의 비용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축산업은 사료 원료 수입과 운송, 난방·전력 사용 비중이 높아 유가 변동에 특히 취약한 구조로 지목됩니다.
김 씨 농장의 경우 1년에 사용하는 경유만 3만L가 넘습니다.
조사료 생산기와 분뇨 처리용 기계, 포크레인, 트랙터 등 대형 농기계를 매일 가동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기름값만 1천만 원 이상 더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며 "유가가 오르면서 조사료 포장에 필요한 사일리지 비닐 가격도 30%나 뛰었는데 그나마도 물량이 없어 구할 수조차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사룟값 상승세 역시 농가 운영에 커다란 부담입니다.
사료 원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상 유가 상승에 따른 해상 운임 증가 등이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사룟값이 전쟁 전 상황과 비교해 ㎏당 20원 정도 올랐다"며 "문제는 상승 폭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출하 과정에 드는 물류비도 기존 45만 원에서 55만 원으로 22%나 급등했습니다.
농업용 전기료 역시 가파르게 올라 한 달 전기요금만 200만 원에 달합니다.
이는 1∼2년 전과 비교하면 30%가량 오른 것이라 농장 운영에 부담이 크다는 게 김 씨 설명입니다.
그는 "우리는 가격 결정권이 없는데 고유가로 소비까지 얼어붙으니 가축 값은 계속 내려가는 실정"이라며 "내 노동력은 차치하고 이자와 사룟값을 감당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털어놨습니다.
축산물 가격 하락세 속에 맞닥뜨린 고유가 파동이 농가 경영에 치명타가 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홍성에서 돼지 3천 두를 키우는 박 모(64) 씨 사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박 씨는 "돼지는 온도에 민감해 돈사 내부를 섭씨 23∼24도로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면서 "24시간 온도를 맞춰야 하는 양돈 농가는 (고유가 사태에) 사실상 직격탄을 맞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매달 보일러 가동에 들어가는 비용만 예년보다 30%가량 올랐다"며 "면세유 지원을 받아도 치솟는 기름값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하소연했습니다.
박 씨 농가에서 한 달에 소비하는 사료량은 약 100t에 달합니다.
최근 돼지 사룟값이 ㎏당 10원가량 인상되면서 매달 수백만 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룟값에 일반 자재비, 부속품 가격까지 전반적인 경영비가 모두 올라 농장을 운영할수록 부담만 커진다"며 "이대로 고유가가 계속된다면 지역 양돈 농가 전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사료를 줄이거나 가동을 멈추는 선택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농가들의 공통된 설명입니다.
한 농장주는 "이미 시설 투자와 설비를 갖추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간 상황에서 생업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료를 줄이면 소나 돼지의 영양 상태가 부실해지는 이유도 있다"고 했습니다.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은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현재 정부는 사료 구매 자금 지원 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기존 정책의 연장선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최근 중동 사태 이후 농가 경영난이 악화했지만, 이를 해소할 추가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일시적 지원보다 수입 의존 구조를 개선하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며 "농가 도산을 막을 장기적인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고유가 파도'는 이역만리 중동에서 시작됐지만, 그 충격파는 우리 축산 농가들의 축사를 쓰나미처럼 거세게 때리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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