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문역 지하도에 놓인 짐가방
19일 오후 7시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지하도 한편에는 주인 없는 짐가방과 납작하게 접힌 종이상자들이 놓여있었습니다.
평소 이곳에서는 노숙인 여럿이 모여 종이상자를 '가림막' 삼아 잠을 청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이날은 한 명만이 침낭 속에서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오는 21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을 앞두고 서울시의 '이사 요청'에 노숙인 대부분이 '보금자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오늘(20일) 언론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공연을 열흘 앞둔 지난 11일부터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의 노숙인들에게 거처를 옮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광화문 일대는 시내 노숙인들의 주요 집결지로 꼽힙니다.
볕이 있는 낮에는 광장으로 나왔다가 밤이 되면 지하도로 내려가 잠을 자는 식인데, 한겨울 20여 명까지 불었던 노숙인들은 최근 날이 풀리면서 10명 남짓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서울시는 시립 노숙인 복지시설인 브릿지종합센터와 함께 '거리 상담'에 나서 광화문의 노숙인들에게 공연 당일 안전사고 우려가 있으니 다른 장소로 이동해달라고 안내했다고 밝혔습니다.
수년 동안 광화문광장에서 기거하던 80대 여성 노숙인이 지난 18일 경기 용인의 한 보호시설에 입소한 것을 끝으로 '설득'도 마무리됐다는 설명입니다.
거처를 옮긴 노숙인 중 두어 명은 현재 브릿지종합센터에서 숙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다만 나머지 노숙인들의 행방은 추적되지 않아 다른 역사 등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찰도 기동순찰대 인력을 투입해 광장과 역사 순찰을 강화하는 한편 노숙인들에게 서울시 요청에 따라 복지시설로 이동해달라고 재차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연 당일 밀집된 인파로 인해 노숙인들이 발에 치이는 등 안전사고를 당할 우려가 있어 거처를 옮겨달라고 요청했다"며 "노숙인들을 강제로 옮길 수는 없기 때문에 지금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신 분들이 스스로 옮겨가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의 철도 관문으로 외국인 '아미'(BTS 팬)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역에서는 관할 구청 직원들과 경찰이 노숙인 집결지를 청소하는 등 '미화 작업'에 나섰습니다.
일각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이번 공연이 국가유산청과 서울시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열리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국이 노숙인 지원 정책을 보완하기보다 혹여 '불편한 모습'이 잠시 도심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눈 가리고 아웅'식 대책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옵니다.
시민단체 홈리스행동은 전날 밤 광화문역과 서울역 일대 노숙인들이 거처를 옮기는 과정에서 강압 등 인권침해는 없었는지 현장 점검을 벌였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서울에서 치러진 대규모 국제 행사가 '노숙인 단속'의 명분으로 이용됐던 기억 때문입니다.
주장욱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당국의) 주거 지원 체계에 녹아들지 못하신 분들이 결국 광화문광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잘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현장에서는 '계도'라는 이름으로 (이사 요청이) 이뤄졌겠지만 공권력을 맞닥뜨린 이들은 압박으로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시 관계자는 "노숙인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드린 뒤 본인의 의사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며 "인권 침해 가능성이 없도록 신중하게 접근 중"이라고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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