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조선
이란의 석유 수출량이 전쟁 중에도 작년과 큰 차이가 없다는 분석이 영미권 언론에서 잇따라 나옵니다.
유가 폭등을 억제하려는 미국이 현재로서는 이란 원유의 선적이나 운송을 봉쇄하지 않고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란뿐만 아니라 이란에 친화적인 국가의 유조선들도 호르무즈 해협을 공격받지 않고 통과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 유가의 변수로 주목됩니다.
미국 CNN 방송은 16일(현지시간) 지난주 중반까지의 분석업체들 추산을 인용해 이란의 하루 원유 수출 선적량이 하루에 약 100만 배럴 또는 그 이상으로 보이며 이는 케이플러 집계에 따른 작년 하루 평균치인 169만 배럴과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전혀 다른 실태입니다.
전쟁 시작 이래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등 선박의 수는 대폭 감소했고, 근방에서 드론이나 다른 무기에 타격당한 선박이 최소 16척에 이릅니다.
이 중에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봉쇄를 선언한 이란이 통행을 이유로 공격 표적으로 삼았다고 공개한 경우도 포함돼 있습니다.
호르무즈해협이 사실상 폐쇄되면서 페르시아만 국가들 대부분이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란은 전쟁 전과 비슷한 물량의 자국산 석유를 해협을 거쳐 운송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경제와 전쟁 수행에 필요한 현금을 계속 벌어들이고 있는 셈입니다.
CNN은 "만약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에 주요 석유 생산국인 이란이 자국의 석유 수출이 막힐까봐 호르무즈해협을 폐쇄하는 것을 꺼릴 것이라고 가정했다면, 미국은 잘못 계산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한 전문가 분석에서도 이란은 유가 폭등에 힘입어 원유 수출로 매일 평균 1억 4천만 달러(2천100억 원)를 벌어들이는 횡재를 누리고 있습니다.
FT가 전한 위성사진 기반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개전 이래 최근까지 이란의 원유 수출 물량 대부분을 책임지는 하르그 섬에서 원유를 선적한 초대형 유조선이 최소 13척에 이릅니다.
이 중 7척은 항로를 숨기고 서방 측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 국제 제재 대상인 이란·러시아산 원유를 실어 나르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의 일부라고 에너지 정보업체 '보텍사'에서 분석가로 일하는 클레어 융만은 FT에 설명했습니다.
FT는 또 원자재 거래 데이터 분석업체 '케이플러'의 분석을 인용해 이 기간에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이란산 석유의 물량을 약 2천400만 배럴로 추정했습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이란의 석유 수출 물량 중 90% 이상을 중국이 받고 있으며, 이 중에서는 제재 대상인 러시아산이나 이란산 원유를 정상 거래 원유의 시가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받아서 정제하는 소규모 정유소들이 사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란이 자유롭게 석유를 거래할 수 있는 배경에는 유가 상승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달 28일 전쟁 발발 이후 이란의 해군력을 파괴했다고 공언했지만 이란 유조선을 막으려는 시도는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란 수도 테헤란 주변의 석유 저장고를 공습으로 크게 파괴한 적은 있으나, 미국은 이란의 정유소, 파이프라인, 저장고 등 석유 인프라를 타격하는 일을 될 수 있는 한 피하려고 해 왔습니다.
미국은 이란 석유 수출 물량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하르그 섬의 군사 목표물을 지난 13일 집중 타격했으나 석유 인프라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해운정보업체 탱커트래커즈에 따르면 미군 공습 다음날인 14일 기준으로 하르그 섬의 석유 인프라는 가동 중인 상태였으며 위성사진 판독 결과 저장 탱크 55개 모두 이상이 없고 이란 유조선 2척이 원유 270만 배럴을 선적 중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16일 미국 CNBC 인터뷰에서 "이란 배들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해 페르시아만에서) 이미 나오고 있는데,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뒀다"며 그 이유가 세계에 원유가 공급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베선트 장관은 이란이 인도와 중국 선박도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도록 허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이란이 자연스럽게 열어주는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지금으로서는 우리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계에 (석유가) 잘 공급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는 정보업체들이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이란 유조선이 하르그 섬에서 석유를 싣고 출발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근 호르무즈해협 통과 선박들 중 상당수가 위치발신 장치를 꺼버리기 때문입니다.
해운정보업체 윈드워드는 이란의 초대형원유수송선(VLCC) 6척이 13일 저녁에 위치발신 장치를 끄거나 가짜 위치정보를 발신하고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게다가 전쟁 전에 이미 이란산 석유를 싣고 출항해 바다 위에 떠 있는 상태였던 유조선들에 실린 물량이 1억 7천만 배럴에 이른다는 게 에너지 정보업체 '보텍사'의 추정입니다.
이란은 올해 2월에 원유 수출에 박차를 가해 수출량을 평상시보다 많은 하루 평균 204만 배럴 수준으로 늘렸습니다.
이는 이란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을 예상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란의 반(半)관영 파르시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천연가스 수출도 늘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파르시통신은 이라크의 전력 부처 발표를 인용해 지난주에 이라크가 이란으로부터 수입한 천연가스의 양이 하루 평균 1천800만 세제곱미터 수준으로 늘었다고 전했습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간) 미국 CBS 방송 인터뷰에서 "호르무즈해협은 열려 있으며, 우리를 공격하는 적국과 그 동맹국의 유조선과 선박에만 통행이 제한된다. 그 외의 선박은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해운 담당 부처는 CNN에 13∼14일에 걸쳐 페르시아만산 액화석유가스를 실은 선박 2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CNN에 확인해줬습니다.
CNN이 전한 이란 신문 '샤르크'의 보도에 따르면 이는 인도가 지난달에 나포했던 이란 유조선 3척을 풀어주는 대가로 이란이 인도 선박 2척의 호르무즈해협 통과를 허가해준 데 따른 것입니다.
이란은 또 석유 대금이 미국 달러화가 아니라 중국 위안화로 거래되는 경우라면 제한된 수의 유조선을 통과시켜 주는 방안도 검토중입니다.
국제 석유 거래는 거의 모두 달러로 이뤄지며, 러시아 원유처럼 미국의 제재 대상인 경우만 러시아 루블화나 중국 위안화로 거래가 이뤄집니다.
호르무즈해협 통행이 어려워진 현 상황이 지속되면 다른 페르시아만 국가들뿐만 아니라 이란 역시 좋을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란은 하르그 섬과 호르무즈해협을 통하지 않으면 석유 수출길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만약 미국이 마음먹고 이란의 석유 수출길을 막으려고 나선다면 이란이 다른 페르시아만 국가들보다 더 불리한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홍해의 얀부항, 아랍에미리트(UAE)가 오만만의 푸자이라항 등 대체 항구가 있고 육로로도 일부 물량을 운송할 수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호르무즈해협은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길목이며, 작년 기준으로 이 해협을 통과한 페르시아만 국가들의 석유 수출 물량 중 80% 이상이 중국·인도·일본·한국 등 아시아로 갔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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