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올해 예산 얘기가 거의 없었어요. 국회 출입하면서 이런 적이 또 있었나 싶네요."
인사 발령으로 새롭게 꾸려진 2025년 12월 SBS 탐사기획팀 첫 회의. 인사 발령 전 국회를 출입했던 한 동료가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초유의 계엄 후폭풍, 그렇게 이어진 탄핵과 대선까지, 2025년은 치열한 정쟁으로 얼룩졌습니다. 입법과 더불어 국회의 가장 큰 임무인 '예산 심사'는 정치인들 입에서 별로 오르내리지 않았습니다. '728조 원' 역대 최대 슈퍼 예산인 만큼 치열한 토론과 심사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됐지만, 국회는 늘 안녕하지 못했고 예산 심사는 그렇게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여러 차례 예산 회의록 전수분석을 통해 국회를 감시해 왔던 SBS 취재팀. 그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내년도 예산안 분석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예산은 심사 감시 기능이 유독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지난해 정기 국회, 즉, 예산 국회 당시 347개, 1만 7,111쪽에 달하는 방대한 회의록을 전수분석했고, 꼬박 두 달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얻어진 탐사기획팀의 최종 결론은 이렇습니다.
"부실 심사, 졸속 심사,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올해 예산은 그 정점을 찍었다."
2025년 11월 21일. 올해 예산안을 심의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 마지막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날 예산안 심의는 통일부가 편성한 남북협력기금 사업, 그 가운데 민생협력지원 사업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 개선과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식량, 비료, 보건·의료, 영유아 지원 등 민생 관련 분야를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지금 어차피 쓰지도 못할 돈 편성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국민의힘 주장에, 그래도 유동적인 만큼 과거에 늘 편성해 왔다는 민주당 반박이 맞섰습니다.
의원 몇 명이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결론은 의외로 쉽게 나왔습니다.
일단 보류. 다음 회의로 넘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드린 대로, 이날 예산조정소위는 마지막 회의였습니다. 예산조정소위원회는 정부 예산안에서 무엇을 보태고 무엇을 깎을지 사실상 조정, 확정하는 회의체입니다. 최소한 결론이 나와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모든 회의에 결론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예산안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 탐사기획팀의 회의록을 분석해 보니, 올해 예산안은 심의 과정에서 유독 '보류'라는 말이 자주 나왔습니다.
이번 예산안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원회 회의 기준, '보류'라는 말이 얼마나 나왔는지 분석했습니다. 무려 537차례가 나왔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최근 10년 치를 모두 비교했습니다. 회의 시간당 평균으로 계산해 보니까, 올해 예산안은 23.5번, 다른 때보다 월등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날 회의는 분명 예산안을 조정하는 마지막 회의였습니다. 여기서 확정을 하고,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소속 위원들이 표결을 해야 본회의로 넘어가고, 다시 본회의에서 전체 표결을 통해 처리돼야 합니다.
이렇게 심의를 보류하고 나면 대체 어디서 예산안을 결정한다는 걸까요.
혹시, 언론에서 예산안 관련 보도를 할 때 '소소위'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예산안조정 '소위'가 아니라 '소소위'라는 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결정짓는 관행이 있습니다. 이 자리는 주로 여야 원내 지도부 등 극소수가 참석해 협의를 합니다.
문제는 이 '소소위'는 공식 회의가 아니라는 겁니다. 자연히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보류가 된 사업을 여야가 모여서 정치적 합의를 하는, 비공식적 협의체입니다. 우리가 이거 내줄 테니, 너희는 이거 받아라, 이런 식의 '예산 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매년 비판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국회라고 이 문제를 몰랐을까요. "보류한다", "소소위로 넘기자" 이런 말이 계속 나오다 보니, 이날 회의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나오기는 했습니다.
올해 유독 보류가 많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날 회의록을 보면, 마지막 심의까지 그 결론은 '보류'였습니다. 보류로 시작해 보류로 끝난 회의였습니다.
결국, 예산과 관련한 의사 결정은 앞서 말씀드린 소소위로 다 넘겨진 셈입니다.
예산조정소위에서 매듭을 짓지 못하고 소소위로 넘기는 관행은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올해는 절차상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정부가 예산안을 보내면 각 상임위별로 심의를 합니다. 하지만, 상임위는 결정권이 없습니다. 참고가 될 뿐입니다. 각 상임위의 바통을 이어 받은 예결위가 사실상 예산안의 결정권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결위 논의 절차를 좀 더 자세히 보실까요.
예결위가 종합심사를 거친 뒤, 이를 예산안조정소위에 넘깁니다. 여기서 깎고 더할 것을 결정합니다. 깎을 것은 '감액 심사'로, 더할 것이나 신설할 것은 '증액 심사'를 통해 결정합니다.
그리고 국회법 84조에 따라, 그 최종안을 예결위 전체회의의 '표결'를 통해 본회의로 넘기고, 최종적으로 본회의 표결을 통해 처리하는 게 원칙입니다.
지난해 12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2026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그런데, 올해에는 위 절차에서 2가지 과정이 없었습니다. 감액 논의는 했지만, 증액 논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결위 표결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감액 심사만 하고, 이 역시 대부분 보류시킨 채 소소위로 넘겨서, 정치적 결단을 한 겁니다. 여야 갈등으로 감액 예산만 통과시켰던 지지난해에는, 그래도 국회가 감액 심사와 증액 심사, 둘 다 하면서 구색은 맞췄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하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2편에서 설명한 대로, 올해 통과된 예산 수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국회는 예산안 처리의 성과를 이렇게 써 놓고 있습니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지원 사업 확대에 637억 원을 '증액'하고, 158억 원 규모의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지원 사업을 '신설'했으며, AI 모빌리티 시범도시 조성 사업에 618억 원도 새롭게 추가했습니다.
이번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증액, 신설 관련 공식 회의가 없었던 만큼, 국회가 자랑하는 이 사업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국회 예산안 전수 분석을 통해 국회의 정밀한 예산 심의를 촉구해 왔던 SBS 탐사기획팀. 과거 회의록 분석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다가 갑자기 증액되거나 신설된 부분을 지적하는 게 핵심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증액 심사' 자체가 공식적으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그 흔적을 찾아내는 게 더욱 어려웠습니다.
지난해 12월 2일, 김병기 민주당 당시 원내대표(오른쪽)과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26년도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비록 밀실 협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예결위 전체회의를 소집해서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국민과 예결위원에게 상세히 보고하고, 예결위 전체회의 통과 이후에 예결위 심의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이 헌법과 국회법의 절차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예결위가 아닌, 그 이전의 상임위 기록이라도 찾아보며, 증액과 신설 사업의 근거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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