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현지 시각으로 지난 21일, 스위스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덴마크에 그린란드를 반환했다"면서 "이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덴마크와 즉각 협상을 추진하겠다. 미국 말고 어떤 나라도 그린란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왜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지는 앞서 노르웨이 총리에게 보낸 서한을 보면 자세히 써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서한에서 "나는 전 세계에서 8개 이상의 전쟁을 중단시켰는데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는) 나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것을 감안하면 나는 더 이상 평화만을 생각할 의무를 느끼지 않는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그린란드 얘기가 있습니다.
즉, 트럼프는 덴마크가 서면으로 된 문서 증거도 없는데 그린란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즉, 주인 없는 땅인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선의를 베풀어 -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 반환했을 뿐이라는 논리를 피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이런 주장, 사실일까요.
먼저, 트럼프가 말한 대로, 미국은 그린란드를 덴마크에 '반환'했을까요. 달리 말하면, 그린란드는 원래부터 미국 땅이었던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단 한번도 그린란드를 소유한 적 없습니다. 그린란드는 1814년부터 쭉 덴마크 왕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반환'이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 4월, 나치 독일은 덴마크를 점령했습니다. 이 때문에 덴마크 식민지였던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통제를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린란드에는 군대도, 민병대도, 심지어 경찰조차 없었습니다.
결국, 덴마크는 미국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미국 주재 덴마크대사인 헨리크 카우프만은 독자적으로 루즈벨트 행정부에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1941년 4월 9일, 미국과 그린란드 방어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나치 독일로부터 미국이 그린란드를 보호해 달라는 취지였는데, 카우프만 대사는 그 반대 급부로 그린란드의 미군 주둔을 약속했습니다.
이 협정문에는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 주권을 명시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 주권을 인정했다는 외교 문서인 셈입니다.
1945년 독일 항복 이후, 덴마크는 1941년 협정을 종료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미국은 그린란드에 대규모 공군 기지를 건설하며, 영구적인 주둔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과 덴마크는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린란드 매입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덴마크는 매물이 아니라며 거부했습니다.
결국, 1951년 4월, 협상이 타결됐습니다. 내용이 다소 복잡하지만, 핵심은 그린란드 영토 내에서 미국의 권리를 다시 정리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과도 맞물리면서, 기존 1941년 협정에 NATO 관련 조항이 덧붙여졌습니다.
이 협정 역시 1941년 협정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린란드 주권이 덴마크에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었습니다.
21세기에도 같은 내용의 협정이 있습니다. 2004년 8월, 조지 부시 정부 당시였습니다. 미국과 덴마크는 1951년 협정을 개정했는데, 그린란드의 지위가 '덴마크의 일부'라고 다시 강조했습니다.
미국과 덴마크 간의 그린란드 관련 과거의 외교 문서들을 보면,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규정들이 있긴 하지만, 주권은 덴마크에 있다고 명확히 적혔습니다. 이들 협정의 핵심은 주권 국가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미국은 군사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적어도 외교 공식 문서에서, 트럼프 이전의 미국은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 주권을 부인한 적이 없었습니다.
베네수엘라를 공격해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했던 것부터 그린란드 영유권 주장까지, 2026년 초강대국 미국의 행보는 좀처럼 예측이 어렵습니다. 미국 우선주의, 어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기조로 동맹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는 트럼프의 외교 노선은 현대 국제 질서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만큼, 그의 이름을 따 '트럼피즘'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국제법과 국제기구에 의해 어느 정도 규율됐던 국제 질서를 상기하면, 트럼프의 행보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트럼피즘의 등장과 함께 제도주의의 수명이 다했다는 비관론도 교차합니다. 미국의 그린란드 영유권 주장은 국제 질서 재편의 상징적 장면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원칙과 당위는 여전히 국제 질서 담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트럼피즘에 대한 반작용이 여전한 이유는 규범의 세례를 받은 20세기 후반의 국제 질서를 꽤 많은 사람들이 추억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어쨌든 미국과 덴마크, 여기에 유럽까지 나서 협상 정국이 만들어졌습니다. 덴마크 정부도 대화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협상 정국 속, 뭘 내주고 뭘 받을지에 대한 뉴스가 계속 나올 겁니다. 당장은 그럴 겁니다. 다만, 지금의 국제 질서가 트럼프식 뉴노멀을 얼마나 배겨낼 수 있을지, 그 불확실성에 대한 숙제는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자료조사 : 작가 김효진, 인턴 황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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