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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에 갇힌 유족…채상병 순직 2주기, 책임자 없는 비극

그날에 갇힌 유족…채상병 순직 2주기, 책임자 없는 비극
▲ 고 채상병 빈소

'눈물 나게 그리워도 볼 수 없는 너.'

2023년 7월 19일, 경북 예천 수해 현장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됐던 외아들 채수근 상병(당시 일병)을 잃은 부모는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날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날' 이후 채상병 부친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는 줄곧 아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아버지 채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속 아들의 모습은 부모 곁에서 활짝 웃는 젊은 군인이었다가,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있는 청년으로, 어린 시절 장보기 체험을 하던 채수근 어린이로 그 모습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채상병의 부모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일주일에 2∼3번씩 영원한 해병, 채수근 상병을 만납니다.

2023년 7월 19일 그날, 경북 예천군 호명면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집중호우·산사태 실종자 수색 작전에 동원된 채상병은 수심 3m, 모래펄 바닥인 내성천에 구명조끼조차 없이 투입됐다가 실종됐습니다.

해병대는 사고 당일 예천군 석관천에 388명을 보내 예천지역 수해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이었습니다.

채상병이 투입됐던 보문교 일대는 간방교∼고평대교 11km 구간 중 하나로 그는 해병대원 13명과 함께 현장에 배치됐습니다.

당시 해병대는 내성천 모랫바닥이 쉽게 무너지는 위험 지형인 것을 몰랐던 것으로 수사기관은 파악했습니다.

함께 현장에 있던 장병들은 필사적으로 빠져나왔지만, 채상병은 결국 급류에 휩쓸렸습니다.

그의 "살려주세요"라는 외침은 해병대 동료들이 들은 마지막 목소리가 됐습니다.

채상병은 실종 지점에서 약 6㎞가량 떨어진 내성천 고평대교 하류 400m 지점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실종 14시간 만이었습니다.

채상병 사망사고는 평탄치 않은 수사 과정을 거쳤습니다.

누구도 나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수사기관 역시 핵심 책임자나 잘못을 밝혀내지 못한 채 2년을 흘려보냈습니다.

2023년 7월 28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은 포항을 방문한 당시 해병대사령관에게 "사단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임 전 사단장은 이후 언론에 "현장을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도의상 책임을 다하겠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초동 수사를 맡았던 해병대수사단은 대통령실의 수사 외압 논란에 휘말리며 박정훈 대령을 비롯한 군 법무 라인이 대거 기소됐습니다.

외압에 항명했다는 이유로 보직 해임됐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법정 투쟁 끝에 최근에야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경북경찰청은 국방부조사본부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아 2023년 8월 24일 수사전담팀을 편성했습니다.

군·소방·지자체 관련자 67명을 조사했으며, 현장 감식과 해병대 압수수색 등을 통해 자료 190여 점을 확보했습니다.

이듬해 7월 8일 경찰은 해병대 1사단 7여단장과 제11·7포병 대대장 등 현장지휘관 6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임 전 사단장과 중간 간부인 중위 1명, 상사 1명은 현장 통제 감독 지휘권이 없다고 판단해 불송치했습니다.

업무상과실치사,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상태였던 임 전 사단장이 처벌 대상에서 빠지게 되자 일각에서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달 23일 유족이 경찰 수사에 이의를 제기함에 따라 임 전 사단장은 피의자로 전환돼 검찰로 송치됐습니다.

검찰 단계로 넘어간 수사는 지난해 10월 압수수색 이후 별다른 진척이 없다가, 이달 2일 순직해병특검 체제로 전환되며 급물살을 탔습니다.

유족은 언론 통화에서 "수사와 관련해서 들려오는 소식이 없는 상태로 2년째 답답했다"며 "수사가 지지부진해 힘들었지만, 특검으로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습니다.

채상병 순직 2주기를 맞는 오는 모레(19일) 유족과 친구들은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에 설치된 채상병 흉상 앞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이날 추모식은 해병대 1사단 주최로 열립니다.

유족 뜻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유족은 "오로지 채상병만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며 "어느덧 2년이 지났다. 수근이만 보고 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진상 규명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수사를 통해 그의 억울한 죽음이 반드시 규명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그간 말을 아껴왔던 유족은 "박정훈 대령이 명예를 회복하게 돼 다행"이라고도 했습니다.

채상병 사망사건 이후 군 병력 재난현장 동원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제대로 된 대응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군 당국은 사고 때마다 임무 수행 중 위험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조치를 강화하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그때뿐이라는 지적입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안전 대책 미흡보다도 무리하게 수중 수색을 시킨 것이 주된 원인"이라며 "군에 안전 규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관련 지침이 내려가고 안전도 강조한다.

집행하는 현장 군 지휘관들의 군인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인식을 바꿔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사무국장은 "군이 항상 문제가 터지면 재발 방지 대책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추고 규정과 지침을 많이 만들어서 사고 이후 한두 해는 문제가 안 난다"며 "그런데 그 후 4∼5년 주기로 한 번씩은 또 문제가 난다.

사망사건이 났을 때 책임자 처벌을 하지 않으면 재발 방지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채상병 사망 이후 군 병력이 대민 지원에 동원될 때 위험한 현장이 아닌 보조적인 지원 역할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도 있습니다.

지난 3월 경북 의성에서 난 초대형 산불 때 군 장병들은 등짐펌프를 등에이고 산에 오르기는 했으나 잔불을 진화하는 후발대 역할을 주로 맡았습니다.

채상병 사건을 수사했던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끝내 책임 없는 죽음으로 마무리되지 않도록 이번 사건이 군대 내 안전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며,

"사실 군은 이미 다 잘 알고 있다. 중간에서 임의로 지침을 변경하면 안 된다. 위험하면 건의해서라도 지침을 변경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그게 지휘관"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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