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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사이버 레커와의 전쟁

[주즐레]

주즐레
(SBS 연예뉴스 강경윤 기자)

2023년 10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은 예상치 못한 소란으로 가득했다. 유튜브 채널 ‘탈덕수용소’ 운영자 박 모 씨(36)가 법정에 출석했기 때문이다. 철저히 얼굴을 가린 채 카메라를 피하며 도망치는 그의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왜곡해 영상을 제작해 수익을 올린 혐의로 고소된 그가 두려워한 것은 구속도 벌금도 아닌 자신의 ‘신상 공개’인 것처럼 보였다. 

‘탈덕수용소’는 2021년 10월부터 약 8개월간 유명 연예인 및 인플루언서 7명을 비방하는 영상 23편을 제작·게시한 혐의를 받았다. AI 음성과 해외 서버를 활용해 자신을 숨긴 박 씨는, 장원영·강다니엘·방탄소년단 뷔·정국 등 유명인의 사생활을 가공해 콘텐츠화했다.

최대 피해자 중 한명이었던 장원영의 소속사 스타쉽 엔터테인먼트가 나섰지만 ‘운영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법적 대응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었다. 디스커버리 제도를 활용해 박 씨의 신상을 특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는 벌금 1,000만 원과 3,000만 원 손해배상, 총 7,600만 원에 이르는 민사 패소 판결을 받게 됐다.

이 사건이 잊히기도 전, 또 다른 사이버 레커 유튜버 ‘뻑가’도 법정에 섰다. 약 11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채널 ‘뻑가’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숨긴 채, 여성과 연예인, 유튜버에 대한 악의적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여성 유튜버 ‘과즙세연’의 민사 소송이 시작되며 또다시 디스커버리 제도가 사용됐고, 결국 ‘뻑가’가 경기도 거주 30대 박 씨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잃을 게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던 그는, 막상 재판을 앞두고 영상 재판 요청과 법원 서류의 외부 공개 제한을 신청하는 등 신상 노출에 불안감을 드러냈다. 

'탈덕수용소'와 '뻑가'의 사례는 사이버 레커들이 만들어낸 정보 생태계의 민낯을 드러냈다. 타인의 고통과 사생활을 소비하며 수익과 영향력을 키워온 이들이 '본인의 얼굴'도 드러내지 못하며 도망을 다니는 모습은, 그들이 이처럼 오랜 기간 사이버 레커를 운영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이 '익명성'이었다는 걸 확인시켜준 셈이었다. 

이들이 얼굴과 신상을 가리는 목적은 사생활 보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신원을 숨기는 것은 자신이 유포한 콘텐츠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앞서 사이버 레커의 피해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지만 그동안 국내 법으로는 이들에 대한 제제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많은 언론학자들이 '가짜뉴스' 논쟁에 대해서 '표현의 자유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기에 현재의 사법 체계에서 얼굴을 가린 사이버 레커들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즉시 조치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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