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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가족 간병인 50% '우울증'…간병하던 가족도 환자 되는 악순환 끊어야 - 간병살인 보고서 ④

[취재파일] 가족 간병인 50% '우울증'…간병하던 가족도 환자 되는 악순환 끊어야 - 간병살인 보고서 ④
"제 인생을 포기를 하고, 덕분에 어머니는 유지가 되는데…" 10년 전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 모두에게 찾아온 치매. 김창수 씨는 서울에서 경남 의령으로 귀향을 택했다.

"보통 2~3년,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렇게는 버틸 수 있지 않겠나 해서 시작했는데" 아픈 부모의 마지막이란 생각에 간병인의 삶을 선택한 김 씨, 그렇게 10년이 넘게 흘렀다.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녔던 김 씨는 간병 시간을 벌기 위해 틈틈이 강의를 하며 버텼다. 하지만, 6년 전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김 씨의 인생은 그때부터 어머니의 곁에서 단 한시도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농약 20병, 제초제라고 풀 죽이는 농약인데 아주 독해요."

어머니 간병 위해 귀향한 김창수 씨

벌이도 없이, 도와줄 가족도 없이, 긴 시간 어떻게 버티고 있느냐는 질문에 김 씨는 집 옆의 창고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직장을 다니며 꽤 많은 돈을 모았다고 했다. 강의를 하면서도 수입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씨의 경제활동은 6년 전 완전히 멈춰버렸다고 한다. "나중에 진짜 빌릴 데도 없고, 빌릴 데도 없으면 죽어야 되잖아요. 그렇죠? 엄마를 두고 또 제가 강의하러 가면 어머니는 또 혼자 죽는데…어머니랑 둘이 같이 죽어야 되나. 그런 고뇌 속에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건 요양보호사 하루 4시간. 요양보호사를 이용하면 정부가 200만 원 정도를 지원해  주는 구조다. "저희한테 주는 게 아니라 요양보호사가 와서 받는 급여가 200만 원이고 저희가 20만 원을 냅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건 솔직히 없습니다."

차가 없으면 접근도 힘든 경남 의령 시골 마을,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80대 노인을 돌볼 4시간짜리 요양보호사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없습니다. 창원에서 오셔야 되는데 여기까지 왕복 2시간이거든요." 민간 요양보호사도 구하려 노력해 봤지만, 급여 시세는 한 달에 400~500만 원. 경제활동이 모두 끊긴 그에겐, 닿을 수 없는 금액이다. 결국 간병은 오로지 김 씨 몫이 됐다. "발버둥을 쳐봤는데도 안 되더라고요."
 

간병인도 환자가 되는 굴레…가족 간병인 절반은 '우울증'

눈썹 한쪽이 다 바진 김 씨

김 씨의 한쪽 눈썹은 완전히 다 빠져 있었다. "눈썹도 빠지지, 수염도 빠지지. 염증도 생기고, 목을 제가 계속 이렇게 하는 게 목에 디스크죠." 오랜 간병은 김 씨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도 갉아먹고 있었다. "고립된 사람이 느끼는 그 외로움, 우울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전화 상담이라도 해준다, 너무 고맙겠지요."

간병 살인 실태 보고서에서도 간병인들의 우울증은 여실히 확인된다. 가족 간병인 348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 조사 결과, 50.3%가 우울증으로 평가됐다. 간병 부담이 증가할수록 우울 증상도 유의미하게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 살인 보고서는 간병 부담이 간병 살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회귀분석을 통해 들여다봤다. 그 결과, 우울 증상이 심해질수록 간병 살인 발생 가능성이 약 8배 증가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간병인, 또 하나의 간병을 받아야 될 사람"

간병 살인 보고서

우리보다 고령화가 빨리 찾아온 일본은 2000년대부터 간병을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준비해 왔다. 2007년부터 '개호(介護) 살인', 즉 간병 살인을 사회 범죄의 한 유형으로 분류해 통계를 집계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2006년부터는 '고령자 학대 방지, 양호자에 대한 지원법'도 시행 중이다. 늘어나는 노인 인구만큼 노인을 대상으로 한 학대 등을 막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한 건데, 특징적인 건 '양호자', 즉 간병인에 대한 지원법도 함께 다루고 있는 점이다. 즉, 노인 학대를 방지하기 위해선 간병인에 대한 부담 경감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법은 지자체가 간병인에 대해 상담, 지도 및 조언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간병 살인 보고서 작성자인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김성희 실장 역시 간병인의 정서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분석했다. 벗어날 수 없는 간병 지옥에 빠진 간병인들은, 자신의 삶이 사라졌다는 극도의 불안감, 사회적으로 고립됐다는 우울감 등을 극심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간병인이 마음의 환기를 할 수 있는 휴식 시간을 갖거나, 단순한 상담 지원을 받는 것만으로도 훨씬 나아질 수 있다면서, 간병인에 대한 빠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사람도 또 하나의 간병을 받아야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원 체계가 그에 맞춰져야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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