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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노인' 가해자 만드는 간병살인…"가족 책임 아닌 사회적 책임 전환 '경고 신호'" - 간병살인 보고서 ③

[취재파일] '노인' 가해자 만드는 간병살인…"가족 책임 아닌 사회적 책임 전환 '경고 신호'" - 간병살인 보고서 ③
20년 넘게 동고동락한 부부였다. 아내에게 찾아온 폐암, 그리고 파킨슨병과 섬망 증세. 남편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아내를 간병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5년 넘게 이어진 간병 끝에 남편은 아내를 살해했다. 본인도 따라 죽으려 했지만 살아남았다. 노부부의 삶은 간병 살인으로 끝을 맺었다.

간병 살인이 무엇보다 비극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평범하게 살아온 '노인'들을 한순간에 가족을 죽인 살인자로 만든다는 점이다. 17년 간 간병 살인 형사판결문으로 확인된 간병 살인 228건 가운데 가해자의 연령대가 확인된 93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의 26.9%는 80대였다. 70대가 21.5%, 90대가 16.1%로 뒤를 이었다. 60대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73.1%, 간병 살인 가해자의 10명 중 7명이 노인인 것이다.

'부부 간병 살인'만 놓고 보면, 사실상 가해자 전부가 노인이었다. 가해자 연령대가 확인된 49건의 부부 간병 살인을 살펴보면, 가해자의 38.8%가 80대로 가장 많았고, 이어서 90대가 26.5%, 70대가 24.5%였다. 60대 6.1%까지 포함해 가해자 중 60대 이상이 95.9%였다.

'노노 간병', 즉 고령화와 함께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간병 살인의 가해자와 피해자도 '노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생활비 딱 끊어지니까, 깜깜하죠"…경제적, 사회적 고립 부르는 '간병'

현옥이 씨
"제가 육십 셋인가, 그때 쓰러졌는데. 저도 일을 했고 저희 아저씨도 일을 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쓰러지니까 두 사람이 다 일을 못하고 이제 주저앉게 되면…깜깜하죠. 깜깜했어요. 생활비도 둘이서 벌다가 갑자기 딱 끊어지니까 어떻게 해야 되나."
- 현옥이 (70살) / 7년째 남편 간병 -

간병은 아픈 환자와 간병하는 가족의 생계를 한순간에 위협한다. 7년 전 남편이 쓰러지고 현옥이 씨 가정의 경제도 멈춰 섰다. 남편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환자가 된 남편을 돌보기 위해 현 씨 본인 역시, 생계 활동을 멈춰야 했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 갑자기 쓰러지거나, 가장이 환자가 된 가족을 돌보기 위해 경제 활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간병 살인 가해자 가운데 74.7%는 아무런 경제 활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특히 '노노 간병'이 대부분인 '부부 간병 살인'만 살펴보면, 경제 활동을 하고 있던 사람은 10.6%뿐이었다.

도움의 손길조차 닿지 않았다. 간병 살인 가해자 중 75.8%는 간병 중 '가족의 지지' 즉,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부부 간병 살인'의 경우, 81%가 가족의 도움이 없이 홀로 간병을 책임지는 상황에서 범행이 이뤄졌다. 다른 가족의 도움도 없이, 경제 활동도 하지 못한 채 환자를 돌보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결국 '살인'으로 끝내버리게 된 것이다.

보고서 저자인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김성희 실장은 환자와 가족 모두가 간병에 '고립'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간병에 고립된 가족이 결국 붕괴되고, 살인이란 비극적 결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경제적으로도 고립되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되는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간병 상황 자체가 간병인과 피간병인의 어떤 가족의 붕괴로 연결이 됩니다. 가족의 붕괴는 간병 살인의 비극적인 이런 결과로 비화하는 양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성희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실장 / 간병 살인 보고서 저자 -

간병인 10명 중 4명은 '노인'…35.2% "잠깐 돌봐줄 사람도 없다"

간병살인 실태

형사판결문에 드러난 간병 살인이 간병의 극단적 상황 속에서 벌어진 특이 범죄일까. 간병인들의 간병 실태 조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 준다.

간병인들의 간병 실태 조사 결과, 가족 간병인 10명 중 4명은 6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지역인 충남과 강원 지역을 중심으로 가족 간병인 348명을 조사한 결과, 가족 간병인의 연령대는 60대가 20.9%, 70대가 9.6%, 80대 이상이 9.9%를 차지했다. 간병 대상자인 환자의 경우엔 60대 이상이 71.8%로 조사됐다. 60대가 5.7%, 70대가 17.3%, 80대가 40.1%, 90대 이상이 9.7%였다.

가족 간병인들의 경제적, 사회적 고립도 실태 조사에서 쉽게 확인됐다. 가족 간병인 중 35.9%는 현재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일하지 않는 이유로는 가족을 돌봐야 하기 때문(35.4%)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일시적으로 대신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대답도 35.2%였다.

우리 사회에 보내는 '경고 신호', 간병 살인

이명희 씨
"너무 슬펐죠. 그때는 맨날 우는 게 반이었어요. 병 중에 제일 무섭다. 암보다 더 무서운 게 치매야. 오로지 가족 몫인 거지 이건. 이런 거는 나라가 해줘야 되지 가정은 못 본다고 생각해요."
- 이명희 (77살) / 7년째 치매 남편 간병 -

'노노 간병' 비중은 앞으로 더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간병의 대표적인 병으로 꼽히는 '치매'의 올해 환자 수는 97만 명에 달하고, 내년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됐다. 2044년엔 치매 환자 수가 2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간병 살인 보고서는 '간병 살인'이 더 이상 우리 사회가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간병'은 고령화 사회 속에서 개인, 가족이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 영역으로 사회와 국가가 돌봐야 하는 영역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앞으로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이 되지 않으면 제 생각에 (간병 살인의) 빈도 자체, 그리고 양상들은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간병 살인은 사실상 우리 사회에 던지는, 즉 간병에 대한 책임을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해야 된다는 경고 신호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 김성희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실장 / 간병 살인 보고서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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