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진영에 따라 천양지차이지만 방산 관련 공약은 '지원 확대'로 대동단결입니다. 해외 방산 시장의 전망이 밝은 데다, 우리 방산업체들의 준비와 의지가 단단하고, 방산에 대한 여론도 좋기 때문에 대선 후보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 같습니다.
방산 공약을 실천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법. 누가 대선에서 이기든 방산 공약의 진정성을 바로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있습니다. 예비역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방산 요직의 정상화, 즉 방산 문민화의 실천입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항공우주산업 KAI의 차기 대표이사 선임 이슈에 어떻게 답하느냐입니다.
KAI는 K방산의 첨단 우주항공을 대표하는 방산기업이지만 수출입은행 지분이 많다는 이유로 그동안 구태의연하게 대선 캠프의 낙하산들이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항공우주산업을 모르는 낙하산들이 KAI를 좀먹었습니다. 현 대표이사도 김용현 전 장관과 친구지간의 예비역 장군이자, 대선 캠프 출신입니다. 방산을 키우겠다는 공약이 진심이라면 다음 정부는 KAI 낙하산 대표이사의 악습부터 끊어야 합니다. 이제는 항공우주 전문가를 KAI 대표이사 자리에 앉혀야 합니다. 방산도 국방처럼 문민화가 필요합니다.
악화되는 KAI 대표이사 리스크
윤석열 정부는 세계 방산 수출 빅4를 천명해 놓고 강구영 예비역 공군 중장을 KAI 대표이사에 임명했습니다. 강 사장이 아무리 공군 조종사 출신이라지만 전투기와 헬기, 무인기 등의 개발, 양산, 마케팅, 수출을 알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강 사장은 취임 사흘 만인 지난 2022년 9월 6일 고위 임원 5명을 전격 해임하고 공군 후배, 동갑의 국정원 출신 인사 등을 요직에 앉혔습니다. KAI의 한 고위직은 "경남 사천 KAI 본사의 지리도 모르는 시점에 고정익과 회전익 개발, 윤리경영의 핵심들을 날렸다", "이후 3년 내내 유례없는 '대표이사 리스크'에 시달렸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딱 부러지는 낙하산 경영 성과는 안 보이는 가운데 기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KAI 고정익의 대표 주자 FA-50의 미국화가 심해진 것입니다. FA-50의 에이사 레이더를 국산화할 기회와 기술, 정부의 지원 약속이 있었지만 KAI는 폴란드 수출형 FA-50PL에 미국 레이시온의 에이사 레이더를 장착하기로 한 것입니다. 국산화가 가능했던 전투기의 신경망인 임무컴퓨터의 소프트웨어도 미국 록히드마틴 제품을 답니다.
그나마 미국의 수출 허가를 받지 못해 폴란드 수출 납기는 최소 1년 반 연기됐습니다. K방산 수출 역사상 납기 지연은 이례적입니다. K방산 경쟁력과 신뢰의 근간인 납기 준수 신화에 흠집이 났습니다. 그런데도 강구영 대표는 어제(21일) 말레이시아 랑카위에서 열리는 방산전시회에 참석해 "K방산, 특히 항공우주 분야는 납기 준수가 강점"이라며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습니다. 말레이시아 수출용 FA-50M도 FA-50PL과 거의 동일 사양이라서 납기 지연이 우려됩니다.

KAI 차기 대표의 자격은?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개발 완료와 수출도 KAI의 당면 과제입니다. 2026~2028년 40대, 2028~2032년 80대 양산해 공군에 공급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여러 나라에 수출해야 KAI가 생존할 수 있습니다. KF-21에 언제면 지상을 공격하는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공대지미사일의 조기 획득 해법을 찾아야 수출을 꿈이라도 꿀 수 있습니다. 섣부른 낙하산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형 방산업체의 한 임원은 "항공우주, 그 중에서도 고정익의 초절정 전문가가 KAI 차기 대표이사로 나서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KAI 대표의 고액 연봉을 탐내며 대선 캠프에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예비역 장군들, 능력 부족으로 KAI에서 밀려난 퇴직자들입니다. 캠프에서 눈웃음치는 그들을 또 낙하산에 태워 KAI에 내려보내면 KAI의 제자리걸음은 무한 반복됩니다. 방산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공염불이 됩니다. KAI를 살릴 수 있는 전문가를 KAI 안팎에서 찾아야 합니다. 각 캠프들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