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해외 유수의 콩쿠르를 석권하며 '현의 귀공자'로 불렸던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씨 아시나요?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했던 그가 20년 전 고국에서 만든 음악축제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입니다. 솔리스트로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점점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실내악이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20년째 이 축제에 개근 중인 비올리스트 김상진 씨 역시 금호 현악4중주단, MIK 앙상블 등을 거친 '실내악 전도사'인데요, 실내악은 음악뿐 아니라 인간관계, 타협과 경청을 가르쳐준 '인생 학교'와도 같다고 하죠. '실내악 정신'이 왜 필요한가 역설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한국의 정치인들도 '실내악 정신'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스프링실내악페스티벌의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비올리스트 김상진, 이 두 사람이 출연한 커튼콜 261회 풀영상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김수현 기자 : 제가 예전에 인터뷰하신 거 보니까 '실내악을 좀 더 일찍부터 접하고 배웠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런 말씀 하신 걸 봤거든요.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제가 미국 갔을 때 한국에서는 실내악이라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미국 가서 처음 이반 갈라미안 선생의 여름 캠프에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조셉 깅골드 선생이 와서 실내악을 가르치는데, 제가 베토벤 현악 사중주 1번 Op.18 No. 1 했었는데 그게 처음 경험이죠.
제가 퍼스트 바이올린. 세컨드 바이올린이 저와 나이가 비슷한, 얼마 전까지 오리온 스트링 콰르텟의 퍼스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다니엘 필립스, 근데 다니엘 필립스는 경험이 많고 집안도 그랬고. 비올라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수석 비올리스트였던 버논, 그다음에 정명화 선생님이 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경험하고 느낀 게 '아, 진작 이렇게 했어야 되는데'. 열네 살이었는데 '너무 늦었다' 하는 느낌이(웃음).
김수현 기자 : 어떤 면에서요?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외국에서는 초보자들도 가르치면서 개방현만 긋고 있는 애들도 같이 붙여서 협주하고. 그런 실내악 음악회를 어려서부터 조금씩 듣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나이 들어서 하려면 벽이 있는 것같이 어렵게 느껴지고.
근데 음악을 진짜로 배우려면 실내악을 해야 되거든요. 그냥 솔로만 해서는 진짜 균형이 잡힌 음악가가 되기가 힘들죠. 그런 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어려서부터 실력 수준에 맞춰서 시작하면 좋죠.
김상진 비올리스트 : 실내악이라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자기 혼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몇 사람이 모여서 하는 게 실내악이잖아요. 그래서 남의 소리를 꼭 들어야 되고, 자기가 그 안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고. 음정처럼 기술적인 걸 봐도 사실 솔로의 음정은 웬만하면 혼자만 있기 때문에 음정이 좀 높다든지 이래도 크게 튀지 않는데, 실내악에서는 어떤 화성 안에 들어가야 되고, 이런 게 귀에도 굉장히 공부가 되고.
그다음에 저는 실내악을 하는 게 인성에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실내악이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인생도 똑같잖아요. 결국 대인 관계가 제일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이냐. 저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해보면 독단적인 사람도 있고 양보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연주가 잡혀 있으면 어쨌든 같이 연주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최선의 결과를 낼 것인가'.
저는 실내악을 통해서 세상을 많이 배웠어요. 어떤 사람은 사람 좋지만 음악적으로 리듬감이 좀 약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남의 소리를 잘 못 듣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럴 때 '어떻게 저 사람 마음 상하지 않게 잘 풀어 나갈 것인가' 이런 것도 공부가 되는 거고. 처음엔 다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정치인들이 진짜 실내악을 다 잘하면 정쟁이...(웃음)
김수현 기자 : 혹시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같은 거를 한번(웃음).
김상진 비올리스트 : 전반적으로 너무 문화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 같은데.
이병희 아나운서 : 실내악을 다 하게 하면 좋을 텐데.
김수현 기자 : 그러니까(웃음).
김상진 비올리스트 : 교육 과정에 집어넣어야 돼요.
김수현 기자 : 그러니까. 하나 만드시죠.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사실 이 실내악 페스티벌 한 이유 중에 하나가 사실 학생들을 위해서도... 안타까운 건 학생들이 음악회에 안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자주 보고 배워야 되는데.
완벽한 음악가가 되려면, 자기 식으로만 하다가 다른 사람들하고 할 때 자기 스타일이 안 맞으면 조정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런 게 힘든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걸 하면서 배워야죠. 어떻게 하면 팀워크를 할 수가 있는지, 솔로 정신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게 많기 때문에.
이병희 아나운서 :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온 음악이어서 좀 힐링이 되는 건가?
김수현 기자 :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병희 아나운서 : 아까 '실내악을 해야 작곡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 하셨었는데 어떤 의미예요?
김상진 비올리스트 : 작곡가들이 곡을 쓸 때 가장 큰 꿈은 완벽한 심포니를 쓰는 것 같아요. 가장 큰 편성이고 자기 모든 게 들어가 있는, 완성된 것. 실내악 작품은 작곡가의 내면을 알기에 적합한. 작곡가가 어린 시절부터, 기본적으로 피아노를 배우면 그것도 어떻게 보면 오른손과 왼손의 조화고, 더 나아가서 삼중주로 다른 악기를 넣게 되면 가장 작은 규모의 작곡 실력을 보여주는 건데,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커지는 거죠.
근데 가장 작은 단위의, 가장 자기의 내면을 보일 수 있는 이런 것 때문에도 사실 현악 사중주가 가장 작은 단위의 가장 완벽한 편성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포니는 규모가 큰 만큼 같은 음을 내는 악기들도 있는데 실내악은 가장 작은 단위, 어떻게 보면 그 4개의 악기로 가장 완벽한 걸 만들려고 하면 작곡 공부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될 테고, 모차르트는 바이올린 콘체르토 5개, 피아노 콘체르토 물론 많이 썼지만 실내악곡을 정말 많이 썼거든요. 수백 개의 실내악곡을 쓰고. 레파토리 측면에서도 실내악을 알게 되면 너무 범위가 넓고, 아까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실내악 레퍼토리는 정말 무한대거든요.
사실 음악가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르가 실내악인데 대중적으로는 좀 어려울 수도 있죠. 그런데 모든 건 많이 접하면 익숙해지잖아요. 예를 들어 발효 음식 같은 게 처음 접하기는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한번 빠져들면 못 헤어 나오잖아요. 우리 김치도 처음에는 외국인들이 매워하고 어려워하다가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근데 뭐 실내악이 그렇게...
김상진 비올리스트 : 그 정도까지는 아닌가요(웃음). 대중들은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그게 잘못된 편견인지 모르니까. 사실 듣기 쉬운 곡들도 많고 재밌잖아요. 우선 팀워크를 보는 게. 사실 저는 정말 좋은 연주자면 몰라도 한 사람 나오는 독주회는 오히려 지루한데, 여러 팀이 나오니까 여러 가지 다양한 콤비네이션도 볼 수 있고, 재미있고.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첫 걸음이 중요한 거죠.
김수현 기자 : 그럼 선생님께 연주 기회가 들어오면, 물론 예전에 유명한 오케스트라, 유명한 지휘자와 다 해보셨지만 지금도 오케스트라랑 협연하는 솔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연주하는 것보다 실내악이 더 좋으세요?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실내악이라든지 독주회 같은 게 조금 더 어떻게 보면 이상적이라고 할까, 오케스트라는 사실 자신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컨트롤할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아요. 그리고 한두 번 연습해서 하니까 아쉬운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그러면 솔로 바이올린 리사이틀과 실내악(웃음).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근데 그것도 실내악이 더 재미있어요. 저는 피아니스트 동지를 보면 항상 혼자 외롭게 연습도 해야 되고, 여행도 혼자 해야 되고(웃음). 근데 바이올린 같은 경우는 독주를 하더라도 피아니스트가 같이 하니까 그런 면에서 훨씬 재미있고 쉬운데, 음악가들이 실내악을 좋아하는 게 그런 면이겠죠. 서로 주고받고 하는 게 재미있죠.
김수현 기자 : 한국이 그래도 클래식 음악 강국이라고 하잖아요. 맞나요(웃음)?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어떤 면에선 그렇고 요즘 나오는 젊은 연주자들 보면 그렇다고 할 수가 있겠지만, 사실 그것만 가지고 따질 수는 없죠. 관객들이 어느 정도 되느냐, 수준이 어떠냐. 외국에 비해서 아직 좀 아쉬운 게 그 두께가 아직도 좀 얇은 것 같아요.
외국은 서울 같은 큰 도시에서는 적어도 오케스트라 하나는 있어서 회원제로 일주일에 네 번씩 똑같은 프로그램 되풀이하니까 한 프로그램만 해도 몇만 명이, 특히 이스라엘 같은 데는 똑같은 프로그램을 열몇 번을 하니까요. 삼천 명씩 열몇 번 하면 한 프로그램을 몇만 명이 듣는다는 얘기인데, 아직 그런 단계까지는 안 온 것 같아서.
외국에는 진짜 음악을 좋아해서 들으러 가는 사람들, 회원권으로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유명한 사람이 온다고 하면 호기심으로 들으러 가고 이런 게 아직도 좀 아쉬운 것 같은데.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콩쿠르 우승하는 솔리스트들은 많아졌지만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나 음악 수준을 보려면 우리나라가 그런 유명한 솔리스트들에 비해서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오케스트라가 아직은... 이 정도로 많은 솔리스트가 나오는 나라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한두 개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어렸을 때부터 실내악 교육을 통해서, 왜냐하면 오케스트라도 이렇게 남하고 맞추는 거잖아요.
김수현 기자 : 그렇죠, 그게 확장된.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오케스트라가 핵심 그룹이 있어서 그게 확장된 거고, 지휘자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좋은 오케스트라 보면 단원들끼리 서로 눈 맞추고 같이 해야 정확하게 맞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런 게 다 실내악에서 배우는 거지.
김상진 비올리스트 : 실내악이 거창한 게 아니라 어렸을 때 리코더 혼자 안 불고 둘이 화음을 맞추는 것부터가 실내악이거든요. 그런 식으로 남과 같이 하는,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하는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하면 좋겠는데 지금은 아예 수능과 관련 없는 음악은 배우지도 않으니까 점점 더 세상은 삭막해지고(웃음).
이병희 아나운서 : 진짜 걱정... 저희 아이들이 학교에서 음악 시간에, 갑자기 교육 얘기로 넘어가는데(웃음). 우리 때는 리코더도 같이 불고 합창도 하고 돌림 노래도 하잖아요.
김수현 기자 : 맞아요, 그런 거 있었죠. 이제 하나도 없대요?
이병희 아나운서 : 그런 걸 거의 안 하더라고요. 의식이 있는 선생님이 있으면 하고 아니면 그냥 다 넘어가는 것 같더라고요.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그래서 옛날에는 웬만하면 음악 모르는 사람들도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이 어떻고' 뭐 이런 것들, 기본적인 상식이 조금씩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게 없어지다 보니까 좀.
김수현 기자 : 오늘 결론은 '가장 필요한 것은 실내악 교육이다'(웃음). 우리나라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실내악이 필요하다.
이병희 아나운서 : 아이들에게도 젊은이에게도, 모두에게(웃음).
김수현 기자 : 진짜 맞는 것 같아요.
이병희 아나운서 :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까 실내악이 진짜 필수 교육이 돼야겠는데요.
김수현 기자 : 관객으로 오는 정치인들이 없나요?
김상진 비올리스트 : 사실 많이 있죠.
김수현 기자 : 아, 있나요?
김상진 비올리스트 : 많이 있는데 그분들이 그런 법안 발의 같은 건 안 하시더라고요.
김수현 기자 : 실내악의 정신을 배워야 될 것 같아요.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네, 그렇죠. 그건 진짜 음악가들한테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인데요.
김수현 기자 : 서로 음악을 맞추는데, 딱 처음에 맞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맞춰서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거를 하는 과정.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 : 네. 제가 프로그램을 짜다 보면 '가능하면 누구하고는 하기 싫다' 이런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것도 사회생활인데 아까 얘기한 것처럼 싫어하는 사람이더라도 연주할 때는 프로페셔널하게, 그런 걸 생각하지 말고 진짜 음악만 생각해서 서로 타협하는 게 필요한데 그런 걸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실내악이 힘들죠.
이병희 아나운서 : 오늘의 핵심 멘트 '실내악 정신이 필요하다'.
김수현 기자 : 실내악 정신이 필요하다. 정말 맞아요, 요즘 합창 대회 이런 것도 없더라고요. 저희 학교 다닐 때는 합창대회 진짜 큰 행사였거든요.
이병희 아나운서 : 지휘하고 맞춰보고 방과 후에 남아서.
김수현 기자 : 그때는 또 귀찮고 '아, 이런 거 왜 해' 이러면서.
이병희 아나운서 : 그러면서 또 배우는 거니까.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