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필자가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오전, 오후로 진행했던 날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회사의 임원분과 함께 식사하게 되었다. 식사 자리에서 그는 워낙 직장 내 괴롭힘을 강조하니 갑질 같은 건 눈에 띄게 사라졌고, 요즘은 오히려 역차별이 더 문제이고, '을질'이 심한데 왜 상급자들이란 이유만으로 이런 교육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식사 내내 이런 부류의 불만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불편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식사자리에 동석하게 된 직원이 수저를 놓고, 물잔을 따르고, 찌개를 끓이며 그 상사의 개인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고 있었다. 이러한 의전을 하기 위해 동행한 직원이었다. 직원이 쉴 새 없이 세팅을 하는 사이, 그 임원은 계속해서 갑질 교육은 더 이상 무용하다는 얘길 하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전혀 불편한 기색도 없었다. 갑질 문제가 조직 내에서 눈에 띄게 사라졌다는 그의 말을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하면서 이런 태도와 시각 차이를 자주 접한다. 특히 의전문화가 남아있는 조직에서 이런 모습들은 너무 흔하게 교육의 짧은 시간 내에서도 확인된다. "에이, 저런 사람은 간혹 있는 거지"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점심 식사나 회식 자리에서 내 물컵에 직접 물을 따르고 내 수저를 놓는 빈도가 얼마나 되는지 한번 돌아봤으면 한다. 한 감사팀 팀장은 이 얘길 듣고 필자에게 "그건 그냥 선배에 대한 존중과 예의 차원 아닌가요?"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물론 자기 수저를 자기가 놓지 않는 것 자체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런 단편적인 모습이 조직이 위계적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고, 그런 조직에서 갑질문제보다 역차별이나 소위 말하는 '을질'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진단은 매우 큰 가능성으로 틀린 것이다. 상급자의 수저와 물컵을 챙기는 것이 기본값인 조직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사팀 팀장이 했던 말처럼 위계적 문화는 단순한 '예의나 존중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조직 내에서 특정 구성원(대부분 연차나 직책이 낮은 직원)에게 더 많은 희생이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단순한 언어폭력이나 부당한 업무 지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소해 보이는 권력의 구조 속에서 더욱 강화된다. 이런 환경에서 '상사가 갑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대놓고 폭언하거나 불합리한 업무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조직 내에 존재하는 위계가 자연스럽게 부하직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부하직원들에게 '갑갑한' 조직의 고통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수저와 물은 자기가 놓자. 내 가까이 작은 것부터 변화시켜 보자는 의미다. 이제는 물잔을 따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먼저 식사를 시작하는지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조직 내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요소임을 인식해야 한다. 단순한 식사 자리에서도 위계가 작용한다면, 업무 환경에서는 더욱 강력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결국, 조직이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이러한 일상적인 문화부터 돌아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줄이기 위해서는 '갑질'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권력의 작용 방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은 대개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이를 수평적으로 조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려면 단순히 '나쁜 상사'를 색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희생해야만 유지되는 관행 자체를 바꿔야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