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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크 vs 스크류캡…와인병 마개로 뭐가 더 좋은 걸까 [스프]

[스프카세]

임승수 스프카세 썸네일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와인과 페어링>의 저자 임승수 작가가 와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와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코르크 마개일 것이다. 맨손으로 손쉽게 뚜껑을 열어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넘쳐나는 세상에, 그 옛적 장판교의 장비처럼 최전선에서 홀몸으로 와인병 입구를 틀어막고 있다. 와인을 마시려면 이 녀석을 제거해야 하는데, 무력이 장비 뺨치는지라 빼내는 데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다. 맨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장팔사모를 연상시키는 꼬불꼬불한 소용돌이 꼬챙이를 박아 넣어 힘껏 뽑아야 한다.

임승수 스프카세
알다시피 코르크 마개는 불에 잘 타지 않고 썩지도 않는 데다가 특유의 신축성과 탄력으로 병 입구에 꼭 밀착해 외부 공기의 유입을 차단한다. 덕분에 와인을 오랜 기간 보관하는 게 가능해졌고, 10년 이상 숙성된 고급 와인의 놀라운 매력을 즐길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 조합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2·30년씩 숙성해서 마시는 일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코르크 마개는 코르크나무의 껍질을 가공해 만들어진다. 주로 포르투갈, 스페인 등에서 생산되는 이 나무는 껍질을 벗겨도 다시 자라기 때문에 9~12년 주기로 채취가 가능하다. 제조 과정은 먼저 코르크나무의 껍질을 벗겨낸 후 6개월~1년간 자연 건조하며, 이후 뜨거운 물에 삶아 불순물을 제거하고 유연성을 높인다. 이렇게 처리된 코르크는 원하는 크기로 절단된 뒤,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된다. 고급 와인에는 천연 코르크(마개 크기로 절단한 것)가 사용되며, 저가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에는 압축 코르크(잘게 부순 코르크를 접착제로 압착한 것)가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소독 및 품질 검사를 거쳐 병에 사용될 준비를 마친다.

수백 년 동안 애용된 코르크 마개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어서 TCA(Trichloroanisole·트리클로로아니솔) 오염 문제는 꽤 심각한 문제다. TCA는 곰팡이와 염소 화합물이 반응하여 생성되는 물질로, 극미량만으로도 와인의 풍미를 망칠 수 있다. 코르크나무가 자라는 과정 혹은 작업장 환경을 통해 곰팡이가 자리 잡을 수 있으며, 이 곰팡이가 가공 과정에서 염소 화합물과 반응하면 TCA가 생성될 위험이 커진다. TCA에 오염된 와인은 특유의 퀴퀴한 냄새를 띠는데, 젖은 종이, 곰팡이 핀 지하실, 눅눅한 판자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 오염이 심한 경우 누구나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맛과 향이 변질된다.

다만 미세한 수준으로 오염된 경우는 과실 향이 다소 둔화하거나, 풍미가 살짝 밋밋하게 느껴지는 정도로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일반적인 소비자는 물론, 일부 전문가들도 감지하기 어렵다. 소비자가 단순히 '이 와인은 맛이 별로네?'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고, 심지어 와인 생산자조차 '올해 와인은 이런 스타일이구나'라고 판단한다. 심한 TCA 오염이 아니라면 마셔도 건강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와인이 원래 지닌 개성과 복합미가 손상되는 것이 문제다. 사실 TCA 오염은 코르크 마개뿐만 아니라 와이너리 내부의 나무 배럴이나 포장재, 저장고, 심지어는 와인을 담는 탱크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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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스크류캡이 급부상하며 코르크 마개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스크류캡은 코르크 마개와 비교해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개봉이 쉽다는 점이다. 코르크 마개는 반드시 와인 오프너가 필요하지만, 스크류캡은 손으로 돌려서 간단하게 열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TCA 오염으로 인한 와인 변질 위험이 없으며 보관과 유통 과정에서 코르크 마개보다 온도와 습도 영향을 덜 받는다. 코르크 마개는 건조한 환경에서는 수축해 외부 공기가 유입될 위험이 있다. 그런 이유로 코르크 마개 와인의 경우 코르크가 젖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병을 반드시 눕혀 보관해야 하지만, 스크류캡은 세워서 보관해도 문제없다.

게다가 스크류캡은 코르크 마개보다 생산 비용이 낮아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고품질의 천연 코르크 마개는 개당 수백 원에서 수천 원까지도 해, 수십만, 수백만 병을 생산하는 와이너리 입장에서는 상당한 비용 부담이 된다. 반면 스크류캡은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을 사용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며 단가가 훨씬 낮다. 일반적으로 스크류캡 비용은 천연 코르크의 절반 이하 수준이며, 일부 저가형 코르크(압축 코르크)와 비교해도 가격 경쟁력이 높다. 또한 코르크 마개는 제조 후 품질 검사를 거쳐야 하고, 오염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추가적인 관리가 필요하지만, 스크류캡은 이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아 전체적인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이러한 여러 장점 때문에 대량 생산이 필요한 대중적인 테이블 와인이나 가성비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에서 스크류캡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뉴질랜드와 호주 같은 지역에서는 고급 와인도 스크류캡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전통적인 와인 생산국에서도 점차 스크류캡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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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크류캡에도 약점이 있다. 아무래도 와인 특유의 전통적인 감성과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와인 애호가는 코르크 마개를 여는 의례적인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고급 와인은 여전히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스크류캡이 사용된 와인은 여전히 저렴한 테이블 와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스크류캡 와인을 열지 못해서 애먹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냥 돌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일단 들어보시라.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저렴이 호주 와인이 스크류캡이었다. 소주병 따듯이 윗부분을 잡고 돌리는데,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돌아가는 것 아닌가. 참이슬 딸 때는 쉽게 돌아가던 놈이 웬일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억지로 힘을 주면 병이 깨지겠다 싶어, 펜치와 니퍼를 사용해 스크류캡을 뜯어내고 씩씩대며 마셨는데 심지어 와인이 맛도 없었다. 알고 보니 소주병과는 여는 방식이 다른 것 아닌가. 스크류캡 구조물 전체를 감싸 쥐고 돌려야 열리는 구조였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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