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이종혁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늘은 미국의 정책보다도 이에 맞서 중국은 트럼프 시대에 어떤 외교 전략을 펴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과 관련해 늘 동일한 발언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을 대체하려는 생각도 없다"라는 언급으로, 방점은 미국과 대립하여 새로운 냉전 구도를 만들 의도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언뜻 의례적인 발언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시진핑과 중국 정부가 국제관계를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진핑은 중국이 '부상하는 강대국(Rising Power)'이기에, 미국이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서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와 연계해 해석해 보면, 중국이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분명한 태도를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아직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향후 충분한 힘을 갖추게 된다면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을 중국 지도부가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중국은 다른 국가와의 교류에서 철저하게 현실주의적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역이나 인프라 투자를 통해 상대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경제적 관점에서 외교에 접근하는 것으로, 중국이 개발도상국 단계에서 축적해 온 성장 경험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 상호 이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상대국의 이익과 긴밀하게 연결하고, 자국의 손해가 곧 상대국의 손해로 이어지도록 설정하여, 결과적으로 상대국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중국은 중남미 지역에서 대규모 인프라 및 건설 프로젝트에 조건 없이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로·철도·항만·에너지 시설 등 사회기반시설 분야에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하며, 이를 통해 현지 정부와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원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철저히 준수한다는 점에서, 해당 국가의 정치 체제나 권력 구조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략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제공하는 지원 방식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서방 국가들은 자금을 지원할 때 투명성 확보, 반부패법 도입, 민주주의 발전 등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중국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며, 정치·제도적 개혁 요구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는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하거나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국가의 엘리트층에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외부의 간섭 없이 대규모 자본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투자금이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거나 외부의 감시와 규제가 미흡해질 경우, 부정부패가 만연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됩니다. 정치·경제적 권력층이 중국의 자본을 사적으로 활용하거나 부당 이익을 취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동시에, 중국도 자기 입맛에 맞는 식으로 자원을 확보하고, 시장에 독점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투명하지 않은 거래를 통해 마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반면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선봉으로서, 중국에 비해 정치·가치적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미국이 오래도록 지켜온 민주주의, 국제 정의, 인권 보호 등은 외교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원칙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경제·외교적 제재를 가하더라도, 해당 국가의 정치·사회적 권리나 인권 침해 여부를 점검하는 등 가치 중심의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미국이 보유한 현실적인 힘에 비해 다른 나라를 강력하게 압박할 수단이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기 때문에 경제 논리에만 의존한 일방적 압박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미국 외교가 단순한 경제적 종속과는 달리, 국제 질서를 지키고자 한다는 이미지를 쌓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와 인권 보호라는 가치를 근간으로 형성된 미국의 외교 정책은 자국이 보유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국제사회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미국의 이미지는 짧은 기간 동안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이전에는 국제사회 안에서 '미국이 옹호하는 자유주의적 가치'와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다각적 경쟁 구도가 어느 정도 작동했으나, 트럼프 이후 이러한 구도가 옅어지고 "미국과 중국 중 어느 강대국 편에 설 것인가"라는 현실주의적인 이분법적 논리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민주주의·인권 같은 정치·사회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의 경우,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높은 리스크와 압박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이전에는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와 중국의 경제적 유인 사이에서 절충할 여지가 있었지만, 트럼프 시대 이후 강대국 경쟁이 직접적이고 단순한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선택의 폭이 한층 좁아진 겁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이러한 국가들에 '현실적인 타협'을 끌어내거나 자주성을 존중하는 대안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